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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영호 Sep 14. 2016

어느 고3 교사의 9월의 하루

수시 상담의 고충

이번은 저번부터 썼던 <자기주도학습>편을 잠시 휴재하고(다음 3편을 기대해주세요~)

한창 수시 상담으로 바쁜 고3의 교사의 하루를 적어볼까 합니다.

물론 바쁜 와중에 지금 글을 쓰는 것도 아이러니하지만 지금이야말로 그 바쁘고 정신없는 상황을 잊지 않고 제대로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고3교사가 9월을 어떻게 보내는지 그 하루 생활을 일기 형태로 보여드릴게요~

(이 모습은 전국의 고3교사가 똑같지는 않습니다. 지역마다, 학교마다, 선생님마다, 학생마다 그 환경이 다르니까요. 그러므로 지극히 개인적일 수도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띠리링~!!

아침 6시를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요즘따라 점점 일어나는 것이 부쩍 힘이 든다. 비록 갓 40대에 접어들기는 했으나 여전히 아침잠도 많은 편이고 더군다나 지금은 한창 대학 수시상담을 해야할 시기라 매일 야근이어서 잠을 푹잔지 꽤 된 듯하다. 일단 아직도 잠이 든 아내와 아이들을 뒤로 하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세수를 한다. 그럴 때면 이내 아내가 일어나 애들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정신없이 챙기고 나갈 때 쯤에 애들은 일어나 아침을 먹을 준비를 한다. 하루 중 유일하게 아이들을 볼 때이다.

"아빠 ~ 잘 다녀와~"

"니네도 학교 잘 다녀오고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다."

큰 아들 왈.......


"아빠는 왜 맨날 늦게 와~?"

".......음...."

아내가 거든다. " 아빠는 학교에서 고등학생들 공부 도와줘야 해서 늦게 오는거란다."

큰 아들이 말하길


" 근데, 왜 고등학생들은 혼자 공부 못 해? 고등학생 쯤 되면 혼자 해도 되는거 아냐?"


".....하하..글쎄.....우리 아들 똑똑하네"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의 눈에도 지금의 고등학교 현실은 말이 안되는 듯하다. 간단히 인사하고 학교로 나아간다.

통근거리가 지금 나가야 차가 막히지 않으니 서둘러야 한다. 7시를 넘기면 평소보다 5~10분 더 걸리니 말이다.


7:50 도착~~


간단히 학년회의를 준비하고 속속 출근하시는 학년 선생님들과 인사후 8시에 학년회의를 하며 오늘 전달사항 및 주의사항을 전달한다.


"상담시 0000 체크 바라구요. 잘 모르면 서로 물어보며 하죠."


9월 둘째주부터 보통 수시 접수가 시작되므로 지금은 수업도 하는둥 마는둥하고 낮에도 상담을 많이 해야 한다.

반당 약 30명이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래도 상담해야할 학생이 여전히 많다.

특히 나는 부장으로서 우리반뿐만 아니라 다른 반애들 중 상위권이나 상담에 좀 신경써야 할 학생들도 맡아서 해야한다.


근데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이러한 전투분위기에는 아랑곳 않하고 오늘의 시간표 및 급식 메뉴에만 더 신경을 쓰는 듯 하다.


이윽고 1교시 시작을 알린다. 수업을 간단히 하고 자습을 한다. 그리고 상담을 시작한다. 지금부터는 상담 유형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A학생 

"엄마가 선생님하고 상담한 부분 다 무시하고 그냥 제주도 있으래요."


"아니...음.....나도 니가 제주도에 있으면 좋겠지만 니가 제주대학교에 갈만한 실력이 아니잖니...

그리고 언제까지 평생 이 제주에만 있을래?

죽기전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육지 대학 중에는 특성화 대학, 특성화 학과들이 많단다.

하지만 제주에 있는 대학을 졸업할 경우 취업이 그리 쉽지는 않을거야."

(솔직히 수시 지원 6회를 할 수 있는데 제주도만 지원할 경우 2회뿐 사용을 못한다.

그러다가 떨어질 수도 있으므로 왠만하면 육지대학까지 지원을 권유하는 편이다.)


A학생

"몰라요.....그냥 제주에 있으래요. 저도 답답해요. 어쩔 수 없어요...ㅠㅠ

"알았어...방법이 없네. 그말은 그냥 전문대에 간다는 얘기로 알아들을게."


A학생

"네? 제주대 못 가요? 안되는데......"


이런 유형이 제주도는 여전히 많다. 즉, 부모들은 공부 잘 하면 육지도 보내고 싶어하나 대학 네임밸류가 떨어지는 경우는 별로 탐탁치 않으신다. 내가 아는 선배는 심지어 자기 아들이 3류 대학의 들어보지도 못한 학과에 간다고 나한테 하소연 하신 적이 있었다. 그 대학 및 학과는 바로....!!!!


'성균관대 글로벌 경영!!!'



뭐하자는거지?


이게 제주의 현실이다.

서울의 소위 15개 대학 정도 밑에는 갈 생각말아라. 국립대 아니면 안된다. 부산대 아니면 안된다. 경기도는 안된다. 전라도는 안된다. 경상도도 안된다.


분명 그 부모님들 세대가 나랑 몇 살 차이 안 나는데 80년대 분들과 대화하는 듯 한 이 기분은 뭘까?


 B학생(또는 부모)

"전 절대 IN 서울 아니면 안되요!!" " 점수 올릴 수 있어요!"

" 니 점수로 서울을 못 가니 하는 말이지. 나라도 너를 서울로 보내고 싶다. 근데 서울은 왜?"

 B학생(또는 부모)

"제주보다는 크니까요."

"그럼 경기권은 어떠니? 용인(한국외대 글로벌)이나 수원쪽은?

 B학생(또는 부모)

"거기가 어디예요? 서울 아니잖아요!!! 제주랑 다를바가 없잖아요!!!"

얘는 도대체 어디서 살다 온 아이일까? 그리고 점수도 안되는데 무슨 근거없는 자신감(근자감)으로 저따위 소릴 하는 걸까?

서울 외에는 촌동네라고 생각하는 애들이 더러 있다. 그리고 지금이 9월인데 남은 2개월 동안 점수를 올릴 수 있다라고 큰 소리치는 애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통계상 3월 모의고사 점수가 수능 점수로 이어질 확률은 50%가 넘으며 떨어질 확률 역시 30-40%가깝다. 반면 1등급 상승 가능성은 한자리 수 가능성이다.(반면 탐구는 그나마 10% 가까이 상승 가능성이 좀 더 높다.)

"점수 올릴 수 있어요!" 라고 주장하는 애들한테는 이렇게 얘기한다.

"그럼 진작 올리지. 왜 이제야?"

"제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너만 마음만 먹는 시기가 아니란다. 다 열심히 하는 시기이고 더군다나 지금 너는 그들보다 덜 열심히 하고 대학 검색만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C학생

"저 추천전형으로 갈게요."

"누구 맘대로?"

C학생

"과는 무조건 제일 센 과요!"


C학생

"몰라요! 엄마가 그래야 친척들 앞에서 할 말이 있대요! 곧 추석이잖아요!"



막 때리고 싶다......

이런 경우 어떤 학생은 엄마를 무조건 거부해서 아예 수시를 안 보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겨우 대다수는 떨어진다.


왜 엄마 아빠들은 그렇게 명예를 중요시하는 걸까?

아이의 적성, 흥미 따위는 어디로 던진걸까?

부모의 과욕으로 인해 아이들의 미래가 무너지는 것은 누구 책임일까?

부모들은 내 새끼니깐 내가 책임진다고 하시겠지만 책임진다는 의미를 알고 있는걸까?


제가 계속 강조하는 <자기주도학습>의 의미 차원에서 봤을 때 걔네들은 평생 부모님의 관리(과잉보호) 속에서 살 것이며 취직 및 결혼, 육아 역시 부모님의 지시 속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좋은 것만을 경험시키고 행복해지길 원한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린다는 서로 상반되는 결정을 하신다.


누구 말이 맞는 걸까?

<자기주도>의 개념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듯 하다.

19살때까지는 엄마 말만 들어라. 하고 싶은 것은 20살, 즉 대학생이 되면 해라.

그렇게 해서 20살이 된 대학 새내기들은 어떻게 되는지 아시는가?

대부분 학교 생활만족도가 떨어진다. 그 이유는 바로!!!


그렇게 말한 부모들(또는 선생님들) 때문이다.


20살 전까지는 관리 속에서 살다가 갑자기 20살때 자율적으로 살라고요?

그 방법을 가르쳐 주셨는지요? 어떻게 하면 맘대로 사는 것인데요?

그걸 미리 조금씩 가르쳐 주셨어야지요!!!


다시 고3교사의 일상으로 돌아오자!!


어느 덧 식사 시간....이지만 점심을 빨리 먹어야 한다. 그래야 또 밀린 상담을 할 수 있으니깐....

이미 교실은 개판된지 오래다.

수시 검색하는 아이들

정시에 올인하는 아이들

논술 준비하는 아이들

자소서(자기소개서)에 올인하는 아이들

서로 울며불며 대학 상담 뒷담화하는 아이들


1학기까지는 서로가 같은 방향으로 갔으나 방학을 기점으로 서로의 목표가 다르듯 길도 갈라지기 시작하며 교실은 혼돈의 장소로 바뀐지 오래다.

수업도 겨우 겨우 이끌어 간다.

더욱 지치다. 목도 아프다.

아프지만 병원간지 오래다.(그냥 유자차 먹고 버틴다.)


오후 상담 역시 같다.

쉬는 시간에는 틈나는대로 애들 자기소개서 첨삭을 해준다.

책상 앞에는 벌써 5개 정도의 자소서가 놓여 있다.

이걸 언제 다봐?


저녁 시간이다.

여전히 똑같다.

퇴근시간(?)이다. 저녁 9시......

다들 망부석처럼 책상에 앉아 일하고 있다.

먼저 가는(?) 사람이 민망해질 정도이다.

10시......

아직도 8명의 담임 중 5명이 남아 있다.

(부장으로서 너무 미안할 따름이다.)

하지만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안쓰럽다.

안되겠다. 집까지 가는데 최소 40분 걸리니 졸음운전이라도 안 할려면 지금 가야겠다.

어차피 내일 또 일찍 출근해야 하니깐.....


눈을 가까스로 비비며 겨우 집에 간다.

이 시간에 가면 아파트인 경우 주차할 장소도 없다.

멀리 세우고 걸어온다.

오늘따라 별들이 크게 보인다.


갑자기 모든 사물은 빨리 흘러가는데 나만 느려지는 경험을 해 본적이 있는가?

지난 4일간 이런 기시감을 느꼈다.

육체적 피로로 인한 현상인가?

아니면 여유로워 보이는 남들의 생활 속에서 나만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인가?


이상한 경험이었다.

허약해지고 있음이 틀림없다.


애들 깰까봐 조용히 들어온다.

이미 조용하다.

간단히 씻고 잠자리에 조용히 눕는다.

"이제 왔어?"

와이프가 눈만 감은채 묻는다. 그리곤 이내 잔다.

.......


얼른 자야 한다. 내일도 쳇바퀴같은 삶이 시작되니깐....내일은 더 힘들수도 있으니깐...


이 생활을 최근 10년 중 8년을 했다. 물론 남들은 연속 10년도 있겠지......


그래도 이 고3 생활을 하는 이유는 뭘까?


사설업체에서는 말도 안되는 컨설팅으로 시간당 15만원 이상 받는다.


우리가 해주는 상담 수준이면 시간당 50만원 이상도 받을 수 있을텐데......


옆에서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교사 때려치고 컨설팅업체 차리고 사업하라는데......


ㅋㅋㅋ


잠시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하지만 다시 이내 현실로 돌아온다.


공교육에서 시작했으니 공교육에서 끝장을 봐야 한다.


더 이상 이런 고3교사의 현실이 확대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더 나은 학생이 아닌 더 나은 교사들의 세상이 온다면 저절로 교육의 질은 높아질 것이다.


그 꿈을 꾸며 오늘도 피곤 속에서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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