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영호 Jul 21. 2021

제주의 고등학교 입시와 제주문화

'제주 토박이는 제주가 싫습니다'를 읽고

우연히 접했던 '브런치'의 '제주 토박이는 제주가 싫습니다(현요아)'라는 제목에 이끌려 그 강렬한 인상만을 간직하고 있다가 지난달 서귀포의 어느 한 허름한 서점에서 작가의 책을 발견하자마자 바로 사서 읽게 되었다.


전반부는 제주 특유의 폐쇄적 문화, 고입 등의 학교문화, 그리고 작가 개인의 가정사 등을 통해 작가의 슬프고 고달팠던 성장기를 다룬다. 이어서 서울의 한 대학 입학을 시작으로 제주 탈출을 성공했지만 생소하면서도 힘들었던 서울 생활에 대한 소회를 보여준다. 그리고 대한민국 20대 청년이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독립생활 및 취업 분투기 속에서 '나'를 알아가고, 발견하고, 마침내 사랑하게 되는 여정을 담담하고, 때로는 경쾌하게, 표현하지만, 그래서 더 슬프게 작가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던 에세이였다.


읽으면서 똑같은 제주 토박이로서 그리고 20년째 중고등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특히 저자의 남모를 고입 도전기와 그에 따른 좌절과 슬픔에 적극 동감하였다. 아니, 오히려 외면하고자 했던 현실을 잠시나마 마주할 수 있게 해 주어서 부끄러웠고, 그래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전에 제주의 고입제도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제주는 오래전부터 '연합고사'라는 고입 선발 고사가 있어 왔다. 중학교 내신과 연합고사 시험 점수를 합산하여 그 점수로 고등학교를 지원하고 합격여부를 가린다. (하지만 3년 전에 연합고사제는 폐지되었고 지금은 순수하게 내신 100%로만 선발한다.)

문제는 시험제도가 아니라, 제주시내 고등학교(동지역이라고 한다), 서귀포시 고등학교처럼 시에 있는 고등학교를 가기 위한 경쟁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보통 제주시는 - 점차 확대되기는 했지만- 제주시 중학교 기준 50-60% 이내에 들어야만 갈 수 있으며 그 외 지역인 경우는 해당 중학교마다 다르지만 보통 20-40% 이내의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야만 입학이 가능하다. 즉, 시내보다는 시외지역에서 고입 경쟁률 및 압박감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간단하게 내신대별로 지원을 희망하는 고등학교 유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기준은 제주시내 중학교이다.)


1) 내신 5% 이내(시내 인문계, 혹은 육지 전국단위 모집 자사고, 제주 과학고)
2) 내신 50% ~ 60% 이내(시내 인문계)
3) 내신 60% ~ 80%(시내 전문계고 및 시외 인문계- 시외 인문계고는 비평준화 지역이라 합격여부를 장담 못 한다.)
4) 내신 80%~100%(시외 전문계고)


* 물론 위 내용은 알기 쉽게 단순화시켜서 정리한 것일 뿐, 보다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유의해주길 바란다.


왜 이런 경쟁이 있는지는 제주 특유의 고등학교 문화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척박한 제주 지역에서 성공의 발판을 삼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예전부터 교육밖에 없었다.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면 지역 사회에는 마치 내 일처럼 좋아해 주었는데 이는 보잘것없었던 제주의 자부심을 한껏 드높여주었기 때문이었다. 동네 사람들도, 친척들도 같이 축하의 행렬에 동참한다.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도내 고등학교 수는 한정되어 있었고 전통의 고등학교들이 우수한 인재를 휩쓸었기에 그 결과 (당연히) 좋은 대학을 많이 배출했으며 그 고등학교 출신들은 마치 자신이 그 대학에 입학한 것 마냥 동문으로서 지금까지도 술 안주거리로 삼을 정도로 깊은 자긍심을 지니고 있다. 자연스럽게 제주도민들은 좋은 대학교를 보낸 고등학교를 선호할 수밖에 없었으며 지금은 그 수가 확대되어 제주시내 기준 8개의 인문계고가 중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서귀포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서귀포는 일명 서고(서귀포고) 출신이냐 아니냐로 지역 사람을 판가름할 정도이다.)

그러나 수시 위주의 대입제도의 변화와 함께 시외 고등학교에 대한 교육청 차원의 지원이 강화되면서(표선고는 올해부터 IB 교육과정을 도입했으며 함덕고는 음악 중점, 애월고는 미술 중점학교로 변모했다.) 점차 시외 인문계고등학교로 지원하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즉, 지금의 대입제도는 제주 시내로의 유입 흐름을 다소 유연화시켜서 지나친 경쟁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기성세대인 학부모들의 관점은 여전히 8-90년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3년 전에 시내 모 남자 고등학교에서 1학년 부장으로 있을 때이다. 한 학생이 계속 잠만 자길래 물어봤더니 '우리 아빠가 여기 고등학교에만 들어오면 최소한 제주대학교는 들어갈 수 있다고 그랬어요.'라는 학생의 말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언제 적 대입 상황 이야기인가?(지금은 시내 인문계고 고등학교 입학=최소 제주 국립대 입학이라는 등식이 깨진 지 오래다.) 그 후 다른 학생들에게도 관련 이야기를 꺼내보면 비슷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즉, 부모님들이 대학은 어떻게든 좋으니 제주시내 인문계 고등학교만 들어갈 수 있도록 중학교 때 공부 안 하는 자식들에게 권유와 협밥(?)을 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제주도에서는 어느 대학교 출신인가 보다도 여전히 어느 고등학교 출신이냐가 도내 사람들의 관념을 지배하고 있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후배가  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형님! 형님네 아들은 시외 인문계고에 적극 추천할 수 있수과(있어요)?'
'......'


잠시 망설였다.
'형! 잠시 망설인 순간, 형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수다(똑같아요)!'


그렇다. 겉으론 이상적인 교육, 바람직한 제주 교육문화 정착을 주장하지만, 내 자식, 내 아들은 기존 제도권, 문화권 속에서 수혜를 받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들켜버린 순간이었다. 말 그대로 '내로남불'이었다.

그만큼 제주의 고입 문화는 여전히 그 가치와 상징성이 남아 있다. 저자의 말 대로, 변변한 대학이 없어서 고등학교 교복과 교가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요즘 시대 화두는 '공정'과 '혁신'인 것 같은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개인의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회적 구조보다는 개인의 노력을 강조하는 '능력주의'로 이 모든 사회문화적 악습을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을까? 


'너는 공부를 못 했으니 당연히 시외 고등학교에 가야 해!', '그리고 교복에 따른 차별과 설움은 네가 견디어야 할 시련이야.'

'그러니 시내 인문계 고등학교를 못 가는 너는 개인의 능력이 부족한 거란다. 제도는 문제가 없어'라고 외치는 것은 정당한 걸까?


 이런 사고와 문화는 누가 만들어낸 걸까? 제주 특유의 괸당 문화, 즉 작은 섬 속에서 옆집 사람들에게, 그리고 가깝고 먼 친척들 모두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속 좁은 섬 특유의 패거리 문화로 우리와 우리 자식들 모두를 병들게 하는 것은 아까?


작가의 이전글 왜 우리는 계속 달려야 하는 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