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꽃샘추위
싱가포르는 설날 즈음부터 시작해서 끝없는 폭우와 흐린 날씨가 지속되며 최대 24도까지 떨어지는 이상기후를 보이고 있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올 예정이라고 했다. 비가 소강상태를 보이다가도 다시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폭우가 쏟아지는 것을 반복했다.
휴대폰 일기예보를 아무리 새로고침 해도 일주일 내도록 비가 온다는 우울한 소식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일기예보를 비웃기라도 하듯, 어제 아침부터 땅이 마르면서 해가 나오기 시작했다. 정말 반가운 해였다. 일기예보 때문에 해가 날 것이라는 기대가 전혀 없었기에 더욱 반가웠다. 기쁜 마음에 얼른 자전거를 꺼내 밖으로 나갔다. 꽤 긴 시간 비가 온 뒤라 땅이 미끄러울 것 같아 조금 망설였지만, 조심히 타자고 다짐하고 출발했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도로는 바짝 말라있었고, 푸르른 풀잎 향기와 꽃향기들이 내 코를 통해 가슴 깊숙이 들어왔다.
그래 이거지! 습한 공기와 향긋한 풀냄새. 싱가포르 냄새
대학을 졸업하고 나의 취업 전선에도 끝날 것 같지 않던 겨울이 찾아온 적이 있었다. 지원한 회사마다 탈락하면서 자존감이 바닥을 뚫고 저 멀리 어딘가로 떨어졌던 기억이 있다. 내가 과연 직업을 가질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희망의 불씨가 아주 조그맣게 남아 있던 어느 날, 특별히 다를 것 없던 평소 같은 날에 최종 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그 당시 힘든 마음에 존경하고 나를 잘 아는 교수님께 투정 어린 메일을 보냈었다. 교수님께서는 나에 대한 진심 어린 걱정과 당신이 살아왔던 연륜의 경험치까지 더해 따듯한 답장을 주셨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듯 너의 취업도 꽃샘추위에 시달린다만,
봄은 어김없이 온다네.
인생은 성공과 행복보다는 실망과 좌절이 더 많다네.
인생이란 어쩌면 실망과 좌절을 잘 견뎌 내는 것('극복'이 아닐세)만으로도 성공이라고 생각하네.
항상 자존감을 잃지 않고, 서두르지 않으며, 꾸준히 노력하면 길이 나타난다네.
그 기간을 같이 동행해 줄 mate가 있다면 정말 축복이겠지"
이만하면 그치겠지 했던 비가 그치지 않고 오일, 일주일, 열흘이 지나면서, 해가 언젠가는 뜨겠지 하고 희망이 사라진 듯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폭우가 온다던 일기예보를 뒤집어엎어 버리고 따듯한 해가 반짝 나타난 것처럼, 당신과 나의 삶에도 반짝이는 해가 하늘높이 뜨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