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하게 콘도 입구에 앉아 하교하는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지인에게 같은 콘도에 사는 이웃이 물어왔다. 오며 가며 인사 정도만 하고 지냈던 이웃의 “너 괜찮아?” 말에 그간 참아왔던 눈물이 터졌다고 한다.
잘 나가던 자신의 커리어를 접고, 남편의 주재원 파견으로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싱가포르로 이사 오게 되었다. 남편의 긴 출장 중 두 아이들을 혼자 케어하며,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싱가포르 부동산 시장 상황에 야속하게 렌트비를 잔뜩 올려버린 집주인을 상대하고, 새로운 집을 알아보던 중이었다. 이사라는 큰일을 혼자 치러야 하는 상황에, 이웃이 지인의 얼굴 표정을 보고 물어왔던 것이었다.
그 눈물에는 혼자 전전긍긍해 왔던 시간의 어려움과 좌절도 있었겠지만, 이웃이 나의 힘든 마음을 알아주고 걱정해 주는 따스한 마음에 그간 쌓여왔던 감정이 눈 녹듯 녹아버리며 흘러나왔을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진심 어린 관심과 걱정을 보여줄 때 철옹성같이 견고하게 지켜왔던 내 감정의 벽이 무너져 버리며 감정이 울컥하고 터져버리는 경험을 다들 해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부푼 꿈을 가지고 청년취업으로 온 사회 초년생들. 순수하고 싱가포르의 물정과 법을 잘 모르는 젊은 청년들에게 비자를 빌미로 협박을 하거나, 교묘하게 비자를 주지 않고 일을 부려먹는 일, 밤낮, 주말 없이 일을 시키며 추가 수당은 전혀 받지 못하는 등, 여러 상황에 어쩔 줄을 모르는 자신의 미래를 담보 잡힌 청년들.
주재원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더 탄탄히 하고 본사로 돌아가서 진급을 하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온 개인에게 직급과 파워를 이용한 은근한 왕따와 불이익을 주는 회사 사람들을 겪어 내는 개인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나의 커리어를 희생해서 왔지만, 계획처럼 흘러가지 않고 가족들이 어려움만 지속적으로 겪는 개인들. 그 외에도 감히 우리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들로 모르게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두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당신 괜찮냐고… 힘들면 울어도 된다고 말이다.
우리 모두 각자만의 이유를 가진 채 싱가포르에 와서 살고 있다. 학업을 위해, 대학 졸업 후 해외 취업을 위해, 대학교 과정 중 교환학생으로, 커리어를 단단히 하기 위해 큰 결심을 하고 오거나, 주재원, 자녀의 학업, 이민, 등 여러 가지 개인적인 이유로 싱가포르에 오게 된다. 각각의 이유는 모두가 다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나와 내 가족에게 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희망’이다. 하지만 삶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었던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지속적으로 좌절되고, 어려움들만 있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을 다 감내해 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특히 나에게 컨트롤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외부 상황이 문제가 된다면 굉장한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당신의 희망은 무엇인가요?
코로나 기간 동안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거리 두기와 마스크 쓰기뿐이었던, 그 이외에는 우리 개인이 할 수 없었던 공통적인 상황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수월해진다. 외부 상황은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다. 하지만 개인이 통제 가능한 영역은 결국 ‘나’ 자신이다. 길고 끝이 보일 것 같지 않던 답답한 코로나 기간 동안,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영역은 내려놓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나’ 자신을 돌봄으로써 살도 빼고 건강을 되찾은 지인들을 봐왔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에 살면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외부 변수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나’, 이 상황을 견디는 ‘나’, 이 상황을 바라보는 ‘나’는 변화시킬 수 있다.
요리를 좋아하고 자주 하는 사람이라면 날카롭게 잘 갈려진 칼이 요리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무딘 칼은 재료가 잘 잘리지도 않아서 손질하는 것도 힘들고 재료들이 잘리는 과정에서 단면에 손상을 입어 요리의 맛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반면 날카로운 칼은 요리 과정에서 식재료 손질을 쉽게 하고, 영양분의 보존율도 높일 수 있다. 만약 손가락이 다치거나 잘리는 사고나 나더라도 날카로운 칼로 다쳤을 때는 무딘 칼로 다친 것보다 훨씬 봉합 과정이 쉽다고 한다.
삶에서 우리는 칼이 되어 도마 위에 올라오는 다양한 식재료인 삶의 도전들을 준비해서 요리해 내야 한다. 이사, 이별, 죽음, 좌절, 합격의 기쁨, 졸업, 출산, 사고, 사소한 인생의 기쁨들 등을 겪어 나가는 과정에서 칼인 ‘내’가 무디다면 삶의 재료들을 다루는 과정이 어려워지고 흥미가 줄어들 수 있다. 반면 항상 날카롭게 갈려 요리에 준비가 된 ‘칼’이라면 요리 과정이 수월하고 재미있어진다. 더불어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조금 더 쉽고, 빠른 회복 과정을 기대할 수 있다.
인생에서 우리를 날카로운 칼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각자만의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강력한 효과를 내는 것은 내 몸과 마음을 매일매일 잘 관찰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내 신체를 건강하게 돌보는 일, 내 마음을 잘 알아차리고 관찰해 나가는 일.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 나의 마음과 신체를 적극적으로 잘 돌보면서, 나에게 필요한 욕구를 잘 알아차리는 것. 내 몸과 마음이 잘 단련되어 있다면, 자신의 능력을 잘 이용하여, 외부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잘 처리할 수 있게 된다. 그때그때 몸과 마음이 필요로 하는 것을 잘 채워 나가는 것이야말로 ‘나’를 돌보는 최고의 방법이 아닐까?
제가 당신의 손을 잡아드릴게요!
현재 당신의 삶은 어떤 가요? 괜찮은 가요? 괜찮다면 참 다행입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힘들면 힘든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화나면 화나는 대로, 당신이 느끼는 지금, 현재의 감정을 케어해 주세요.
인생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모두 지속적으로 겪어 나가는 삶의 연속입니다. 지금의 삶이 당신에겐 겨울과 같다면 곧 봄이 온다는 희망이 있으니 절대 포기하기 마세요. 사회가 원하는 대로, 주변에서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당신만의 속도로, 당신의 행복을 위한 인생을 살아가세요. 잘 살자고 온 낯선 싱가포르 땅에서, 연중 따뜻한 싱가포르의 온도처럼, 따듯한 사랑이 흘러넘치는 2023년이 되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