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이 반복되니, 나도 학습이 되어버렸나보다. '제주도는 맑아?'라는 말을 듣고 하늘을 바라보고, 그제서야 맑은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며칠간 흐렸던 마음에 덩달아 흐린 하늘을 고정시켜 놓은 채 흘려보내는 시간이 드디어 멈춘 기분이다.
묵혀두었던 빨래들을 꺼내 세탁기를 돌렸다. 화장실과 부엌을 청소하다 어리광 부리는 강아지를 몇 번 껴안아주다보니 하루가 지나간다. 무기력하게 흘려보낸 시간이 아닌, 오랜만에 해야할 일을 했다는 뿌듯함이 찾아왔다. 또 무엇을 할까. 한동안 제대로 진도를 빼지 못했던 책을 꺼내 공부를 시작했다. 집중력이 떨어진건지, 머리가 나빠진건지. 절로 한숨이 새어나온다.
'만족'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하루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마음에 드는' 하루였다. 정돈되지 않았던 물건들을 정리하며, 그리고 미루어지던 생각들을 정돈할 수 있었다. 괜찮은 하루였어. 스스로 하루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은 꽤나 기분 좋은 일이다.
해가 길어지며 밤이 늦게 찾아온다. 아마 점점 더 밤이 짧아지며, 밝은 시간이 더 늘어나겠지. 에너지가 풍만한 한 낮의 시간도 좋지만, 어둠이 모든 것을 덮어주는 밤의 시간이 짧아지는 것이 때때로 아쉬워진다. 자연의 섭리이기에 낮과 밤의 지분은 주거니 받거니 바뀌어가지만, 늘 '변화의 길목'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매년 경험하는 일이지만 말이다.
저녁 식사를 하고, 그제서야 쓰레기들을 버리러 집 밖으로 나섰다. 플라스틱은 월.수.금.일, 종이는 화.목.토. 비닐은 목.일. '아, 귀찮아.' 이 짧은 문장 하나가 튀어나와 버리면, 며칠을 그대로 집안에 쌓아두게 된다. 클린 하우스가 그리 먼 것도 아닌데, 귀차니즘은 예고도 없이 툭툭 해야할 일들을 미뤄버린다. 그래도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니까. 귀찮음을 이기고 밖을 나서니, 기분 좋은 정경을 맞이하게 되었다.
구름이 옅게 깔려있지만, 오랜만에 별들이 한가득 눈에 들어온다. 별이 뜬 밤하늘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더라, 적어도 한동안은 별을 구경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달 구경, 별 구경을 해 볼 심산으로 옥상으로 올라갔다.
https://youtu.be/_ChCm1b2T_Y?si=RDfvIzePhmKG6iHy
오늘 밤은 어둡기에 당신이 쓴 시가 별이 돼
광장 위를 비추는 빛이 돼 비추는 빛이 돼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별이 바람에 스치는 밤 내가 길을 잃은 밤
기억할게 하늘의 별을 헤던 당신의 밤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작게 입안으로만 노래를 흥얼거린다. 한동안 좋아했던 노래였는데, '별'을 보다보니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시를 읽을 줄 모르는 아이인데도, 한때 윤동주의 시집을 구입했을 만큼, 윤동주의 시를 좋아한다. 절망적이고 어두운 시대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부끄러움을 노래했던 시인. 그리고 그러한 시인의 생애를 노래한 '당신의 밤'이란 노래 역시 애청곡이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별 하나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하나씩을 불러보는. 그리고 흙 위에 내 이름 석자를 써내려가다 이내 지워버리는.
사진을 몇 장 남겨본다. 렌즈 너머로 보이는 별들이 더 아름다울 때가 있기에, 작은 기대를 품어보지만. 오늘 하루만은 눈으로 보는 별들이 더 예쁘게 빛이 난다. 옥상에 앉아 멍하니 밤하늘을 즐긴다. 여유가 없었던 것은 아닌데. 적당히 시원한 바람과, 예쁜 밤하늘과, 고요한 시간들. 일상 속에서 나만의 여유를 찾는 시간일까. 혹은 작은 행복을 찾는 시간인걸까.
괜찮은 하루였다. 그리고 괜찮은 하루의 마무리였다. 일요일이 지나갈 때마다 내뱉던 한숨을 오늘만은 다시 담아둔다. 내일도 괜찮은 하루가, 괜찮은 한 주의 시작이 될 것만 같다. 오늘의 기분좋음을 그대로 이어나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