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이불의 두툼함이 지닌 온기가 버겁게 느껴져, 살짝 걷어내고 만다. 꿈지럭거리는 누나의 움직임에 발치에서 웅크렸던 강아지가 다가온다. 슬쩍 걷어올린 이불 틈새로 들어선 녀석을 쓰다듬으며 하루가 시작된다. 몸을 일으켜야 하건만, 지끈거리는 두통이 움직임을 제한해 버린다. 한 주의 시작이 버거운, 월요일의 아침을 깨운 것은 언니의 전화 한 통.
"정말 미안한데, 오늘 와 줄 수 있을까?"
얼마 전 다리를 다쳐 병원에 다녀온 언니가 통증을 호소한다. 다시 병원에 다녀와야 하는데, 형부가 반차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끝으로 짓누르며 밝은 목소리로 답을 한다. 언니에게 도움을 주면서도, 손주들 사랑에 푹 빠진 어머니를 위한 일이기도 한 까닭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다.
어머니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밝다.
"이따 오후에는 첫째 오기로 했어."
여동생네와 오후 나들이를 예약했다는 어머니는 하루 종일 손주들을 볼 생각에 입가의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나들이라기보다는 손주에게 장난감을 사 주고 싶은 할아버지의 소망이 반영된, 장난감 가게를 가는 날이다. 작은 손주가 셋이나 있지만, 요즘 아버지는 첫째 손자에게 푹 빠져 들었다.
"아이구, 그새 또 훌쩍 컸네."
언니네 조카를 안아 드는 어머니는 작은 움직임 하나 놓치기 싫다는 듯, 손주 곁을 떠나지 못한다. 제법 먼 거리라 자주 오다니지 못하기에 쑥쑥 자라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기특하다. 예민하다던 녀석은 할머니를 알아보는 듯 방싯거리며 웃음을 자주 터트린다. 자주 보지 못하는 애틋함에 손주의 웃음이 더해지니, 어머니는 손주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너희 아빠, 영상 보면서 '할부지' 단어 계속 말해."
손주 사랑은 어머니뿐만이 아니다. 아버지 역시도 언니와 여동생이 올려주는 영상과 사진들을 몇 번이나 돌려본다고 한다. 영상 속 꼬물이들을 보며 마치 눈앞에 있는 양, '할부지' 단어를 외치며 시선이 고정된다. 인지장애와 언어장애가 왔다 하더라도, 당신 손주들에 대한 애정만큼은 사라지지 않은 아버지다.
그중에서도 아버지는 첫째 손자 이야기를 더 자주 꺼낸다. 늘 멍하니, 흐렸던 초점의 눈동자가 빛을 발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여동생이 가져다준 손주 앨범을 들쳐보고, 차에 탈 때면 조카 얼굴이 새겨진 방향제를 가리키며 웃음을 터트린다. 편애와 다름없는 손주 사랑에도 이유가 있다.
"하부지! 안아죠요!"
신발을 벗겨 주자 마자 조카는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팔을 벌린다. 좌반신 마비로 왼 손이 불편한 아버지가 팔을 내밀어 엉거주춤 안아 들어도, 조카는 야무진 두 손으로 할아버지의 옷자락을 잡아 쥐며 품에 폭 안긴다. 할머니가 양손에 쥐어준 과자도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하부지, 아-'하며 입에 먹여준다.
"손에 힘이 없어서, 다른 손주들은 아예 못 안잖아."
아직 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다른 손주들은 아버지 품에 안기지 못한다. 그런 어머니의 추측이 더해지지만, 아버지의 손주 편애는 첫째의 애교가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것이 분명하다. 예쁜 손주를 바라보던 눈빛에 점점 더 반짝이는 생기가 더해지는 것은, 조카의 애교가 늘어난 이후였다.
"아니, 아니. 장난감 사야 해."
이제는 장난감을 누가 사 줬는지 아는 조카이기에, 아버지는 용돈 주는 것을 거부했다. 같이 고른 장난감을 품에 쥐어주고 싶은 마음에 지갑이 열린다.
첫째에게 넘치는 사랑을 전해주려는 아버지의 얼굴에 웃음이 늘어난다. 그저 시간을 흘려보낼 뿐이던 아버지의 생활 속에 사랑이 자리 잡았다. 지금은 첫째에게 집중되었지만 다른 손주들도 조금 더 커 할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드러낼 쯤이면, 아마 편애가 사라지겠지.
그때까지는 할아버지의 편애는 정당하다.
[대문사진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