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등 떠밀어주기
"엄마, 가도 되려나~?"
짐짓 장난스러운 듯, 하지만 기대를 잔뜩 품은 질문이다. 흔쾌히, '당연하지. 잘 놀고 와-'라는 답이 돌아오자 밝은 얼굴로 계획을 이야기한다. 같이 일하던 이모들과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맛집을 탐방하는 모임이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5명의 아줌마들끼리 1박 2일, 혹은 2박 3일로 일 년에 한 번씩 놀러 가기로 계획을 짰단다. 어머니가 부재하는 동안 아버지를 케어하는 것은 나이기에, 어머니는 늘 나에게 먼저 말을 꺼낸다. 처음 1박 2일의 짧은 외출엔 어머니의 표정에 작은 긴장감마저 돌고 있었다.
"다른 엄마들은 해외여행도 막 다녀오더만. 엄마도 걱정 말고 그냥 놀러 다녀."
어머니가 짧게 다녀오는 여행에도 잔뜩 긴장을 하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다. 아픈 아버지를 두고 먼 곳으로 가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은 것도 한몫을 하겠지만, 그동안 놀러 다니지 못했던 답답한 일상들이 어머니를 일상 속에만 매어 둔 탓이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외출을 좋아하지 않았다. 만약 친구들과 만난다면 아버지도 함께, 부부동반으로만. 혹은 집으로 초대를 하는 것만을 허락했다. '하늘 같은 남편, 하늘 같은 아버지'라는 가부장적인 면모가 강했기에, 어머니는 묵묵히 아버지의 뜻을 따랐었다. 그때의 일들이 어머니의 발목을 매어둔다. 가고 싶지만, '내가 가도 될까.', 자식으로서는 슬픈 의문이 어머니를 늘 따라다녔다.
어머니가 처음 친구들과 1박 2일간 펜션에서 놀고 올 계획을 세웠을 때, 아버지의 흔쾌한 대답에 어머니는 놀라면서도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없으면, 잔소리할 사람 없어서 그럴 거야."
아버지의 대소변 실수가 잦던 시기였다. 어머니는 위태로웠다. 작은 일들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스스로도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아버지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오지 못하리란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그 과도기에서 어머니는 힘겨워했다.
남동생이 건넨, 작은 상자 안에 담긴 병 안에는 고급스러운 글자들이 새겨져 있다. 친구들이랑 놀러 가는데, 양주도 한 번 까 봐야지- 센스 있는 남동생의 선물에 어머니는 무겁다며 툴툴거리면서도 올라가는 입꼬리는 숨기지 못했다. 그리고 가족톡에 올라오는 여러 사진들에는 어머니의 밝은 웃음들이 새겨졌다. 어머니의 예민함이 가라앉았다. 어머니가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것은, 친구들과 여러 곳을 다니며 작은 일탈을 즐긴 후였다. 어쩌면, 아버지가 변했기에 드디어 어머니가 스스로의 삶을 즐길 수 있게 되었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동창회에서 수학여행을 간대. 그 이모가 엄마가 가면 자기도 갈 수 있다며 계속 꼬시네."
다녀오라며 등을 떠밀지만, 어머니는 고민이 많다. 그동안은 제주도 여행을 했었지만, 비행기를 타고 다녀오는 일정은 부담이 되는 모양이다. 너희 아빠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해- 여차하면 집으로 달려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라는 사실이 문제였다.
"엄마, 핸드폰 확인해 봐."
"어머. 돈도 없으면서 이게 뭐야?"
"놀러 갔다 오라고."
어머니 통장으로 용돈을 입금해 준 뒤에야, 어머니는 마음을 굳혔다. 짧은 여행에도 어머니는 만족스러웠던 듯, 표정이 밝았다. 그리고 올해는 조금 더 이른 시기에 동창회에서의 수학여행이 잡혔다.
엄마 동창회에서 1박 2일로 놀러 간대- 나 그래서 용돈 조금 챙겨 주려구.
4남매가 모여있는 단톡방에 카톡을 남긴다. 용돈을 준다는 생색 조금과 자식들이 용돈을 쥐어주며 등 떠밀어 보냈다는, 어머니의 너스레가 친구들 사이에서 자랑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언니나 동생이 용돈을 보내주며 잘 놀러 오라는 이야기를 꺼냈다며, 어머니는 행복한 미소를 보인다.
"나도 이따가 보내줄게. 잘 놀다 와."
"야, 너는 식기세척기 사줬잖아. 그거면 되지."
"그럼 나 진짜 용돈 안 보낸다?"
"지금도 많이 받았어."
어머니는 미소를 띄운 채, 입으로는 툴툴거리는 푸념을 쏟아낸다. 피곤해서 좀 쉬고 싶은데, 그 이모때문에도 가야 하고. 너네가 용돈 주는데 안 갈 수도 없고. 말로는 등 떠밀려 억지로 간다는 표현이지만, 이젠 안다. 이 불만들이 어머니 나름의 고마움의 표현이자, 행복함의 표현이라는 사실을.
잠시 고민을 하다 결국 용돈을 보내지 않았다. 가을쯤에 또 친구분들과 제주도 일주하며 여행을 갈 텐데, 그때 챙겨줄 용돈으로 담아둔다. 뒤늦게서야 어머니가 작은 즐거움들을 누리기 시작한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고립된 삶을 살아가던 어머니의 세상이 점차 넓어진다. 가족들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어머니 마음속의 겹핍들이 채워져 가는 과정을 바라보는 것이 행복하다.
대문 사진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