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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제 첫사랑이었어요.

그립습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by 연하일휘

아이들 여럿이 저마다의 자리에 모여 앉아 있다. 한창 유행하던 드라마에 대한 저마다의 감상평이 끝나고, 새로운 대화거리를 찾지 못한 채, 짧은 모임이 끝이 났다. 서랍에 담아 두었던 책 한 권을 펼친다. 조용히 책장을 넘기며 혼자만의 즐거움으로 빠져든다.


친구들과 어울리기는 하지만, 조금은 한 발 물러서 있는. 소심하고 조용한, 교실 한 구석에 앉아 있는 학생이었다. 별다른 말썽을 부리지도 않고, 떠들썩하게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으니 교실에서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그다지 상관은 없었다. 같이 밥 먹을 친구가 있고, 소풍을 가서 함께 어울릴 친구도 있으면 되었다. 간간이 친구들과 짧은 대화 속에서 웃음을 나누는 시간 외에는 나는 늘 혼자 책 속으로 빠져들곤 했었다.


"이대로면 인문계는 걱정이 없네. 선생님이 아슬아슬한 친구들을 신경 쓰느라 자주 상담을 못 해 줄지도 몰라. 그래도 이대로만 잘하자. 믿을게."


중학교 3학년이 되며, 학기 초에 담임 선생님과 나누었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1학년과 2학년, 그 시절과 비슷하게 조용히 흘러가리라 생각했던 3학년. 젊은 남자 선생님이 부임하였다. 바로 옆반 담임선생님이던 그 선생님은 임용고시에 합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국어 선생님이었다. 다른 선생님들과 달리 조금은 미숙한 모습이 보이던 선생님의 교과서에는 빽빽하게 글씨가 잔뜩 새겨져 있었다. 어리숙한 선생님의 반응이 재미있어 장난을 치기 일쑤던 아이들이 점차 하나 둘, 그 선생님을 따르기 시작했다.


"그 책 좋지. 다 읽으면 그 작가 다른 작품도 읽어봐."


어느 날부터인가 국어 선생님이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에 책을 읽고 있으면, 책에 대한 대화를 함께 나누기도 하고. 수업 중에도 일부러 나에게 잦은 질문을 하며 대답을 이끌어내고. 청소 시간에는 괜히 옆 교실의 나에게 장난을 치곤 했었다. 낯설었다. 나에게 선생님이란 존재는 "이대로만 하자."거나, 간간이 칭찬을 건네주는 존재일 뿐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선생님을 찾아 교무실을 찾아가는 내가 되어 있었다.


"쌤, 이 문장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해요?"


"이건 또 무슨.... 야. 넌 무슨 이런 책만 읽냐?"


"아빠가 읽으라고 줬는데 그럼 어떻게 해요....."


"어...... 음. 그래, 자, 이 문장 앞뒤를 보면 말야."


아버지가 감명 깊게 읽은 책이라며 건네준 그 책은 중학생이 읽기에는 어려웠다. 그저 읽는 척만 해도 되었을 그 책을 굳이 가방에 담고 들고 다닌 것은, 선생님과의 대화 때문이었다. 툭툭 던지는 장난과도 같은 말을 주고받는 그 시간이 즐겁다. 공부하다 궁금한 것을 질문한 뒤에 듣는 칭찬이 소중하다. 나의 첫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쌤, 어깨가 넓어서 칠판이 안 보여요!"


"내가 어깨를 줄일 수도 없잖아!"


판서를 할 때마다 치던 장난을 선생님은 억울하다는 듯, 하지만 만면에 미소를 띤 채 받아주곤 하였다. 무미건조하던 중학교 생활 속에서 작은 빛을 찾아냈다. 국어를 가장 좋아하게 된 것, 국어를 전공하게 된 것은 첫사랑이던 선생님의 영향 덕분일지도 모른다.


선생님이 나만을 신경 써 준 것은 아니었다. 나 외에도 교실에서 조용히 있는 아이들을 볼 때면, 다가가 장난을 치거나 말을 건네곤 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첫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동경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선생님의 그 모습이 너무나도 좋았기에. 조용히 책에만 고개를 파묻던 내가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늘어난다. 조금 더 웃음이 넘쳐나는 학창생활이 지나간다.


고등학생이 되었다. 같은 중학교를 나온 친구들과 함께 스승의 날에 찾아갈 계획을 세운다. 편지를 쓰자, 돈을 조금씩 모아 작은 선물을 사자. 야자를 모두 다 뺄 수는 없으니, 대표로 누구누구만 가자.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던 어느 날. 부고 하나를 듣는다.


뇌출혈이었다. 수업 중 선생님이 쓰러지며 머리를 잘못 부딪혔다는 이야기를 함께 전해 듣는다. 대표로 뽑혔던 친구 몇 명이 나서서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다녀온 친구들은 이야기를 꺼내다 말을 채 다 있지 못했다. 우리 졸업사진에 있던, 환하게 웃던 그 사진이 영정사진이었다고. 아직 두 돌도 되지 않은 아기가 있었다고.


며칠간 친구들과 함께 울음을 터트리는 일이 잦았다. 다행히도 고등학교에서는 좋은 선생님들이 많았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선생님들이 위로를 건네주고, 상담을 해 주면서 우리는 천천히 첫 이별을 받아들였다.


여전히 나는 국어가 좋았다. 함께 작품을 분석하고, 질문에 답하며 주고받던 그 시간들이 남긴 즐거움이 계속 이어졌다. 묻어둔 그리움은 다른 애정으로 샘솟았다. 하늘색 셔츠가 잘 어울리던 선생님, 여전히 옅은 하늘빛을 볼 때면 선생님의 빳빳하게 다림질되어 있던 셔츠가 떠오르곤 한다. 보고 싶어요.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보고 싶습니다, 선생님.


그립습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carnation-7212585_1280.jpg Pixabay



[메인 이미지 출처 : Pixab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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