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엽고도 사랑스러운
"쌤, 지금은 출입 금지예요."
교실 문 앞에서 한 학생이 나를 막아선다. 창 너머로 흘긋 살펴보니, 아이들이 칠판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아아, 그렇구나. 웃으며 휴게실 의자에 앉아 통과 신호를 기다린다. 중학교 2, 3학년 아이들은 스리슬쩍 지나갔던 스승의 날,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이 작은 선물을 준비한다.
새까만, 짙은 색의 커피가 달게만 느껴진다. 작은 종이 하나에 빽빽이 적은 편지와 커피 하나를 준비한 아이의 마음 덕분이다.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사탕과 작은 쪽지들이 사랑스럽다. 적혀있는 글귀들에 웃음이 새어 나온다.
"스승의 날 축하드려요."
스승의 날은 축하하는 날이 아니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날이었던 것 같은데. "쌤은 편지 받고 싶어! 카톡 프사 할 거야."라는 말에 다급히 종이 한 귀퉁이에 글을 적던 아이들은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나 보다. 스승의 날에 아이들에게서 작은 선물을 받은 것은 오랜만이다. 오랫동안 함께 한 아이들에게 손 편지를 받고 싶다 졸라대서 받아본 적은 있었지만, 먼저 다가온 아이들은 정말 오랜만이다. 그래서일까, 작은 정성들이 고맙고 또 고맙다.
교실로 들어서니 칠판 한가득, 롤링 페이퍼를 한 것마냥 아이들의 글귀와 그림들이 수놓아져 있다. 남학생들이 가득한 교실에서 고군분투한 흔적들이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으으음~~"
첫 소절까지는 신이 나 불렀건만, 그 뒤로는 가사가 기억나지 않는 모양이다. 허밍으로 한 두 소절을 더 이어가다 웃음이 터져 나오며 노래 시간이 끝이 났다. 이럴 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지? 함께 웃음을 터트리며 고맙다는 말을 반복한다. 야, 쌤은 이거 아까워서 못 지우겠어- 결국 수업은 칠판 없이, 말로만 조용조용 흘러간다.
다른 1학년 교실에서도 출입 금지 선언을 받는다. 이 애들은 어떠려나. OK 사인이 떨어지니, 쭈뼛거리며 노래를 시작한다. 옆 반 아이들보다는 한 소절 더, '우러러볼수록'까지는 나왔다. 귀여워라. 웃음을 참지 못하니, 아이들도 멋쩍어하다 함께 웃음을 터트린다. 그리고 칠판에 저마다 적은 글귀와 그림들을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한 구절, '사랑합니다'. 교무실에 있던 나에게 찾아와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전하고 간 학생의 글귀였다.
연습장 한 장을 칼을 이용해 야무지게 자르고, 봉투까지 쓱쓱 접어놓은 한 학생의 편지를 혼자 읽어 내려간다. '제가 시를 썼어요.'라는 문장 뒤에 이어지는 시는 여러 번 읽어 내려가게 된다.
그때 국어가 말했어
내가 좋다고
응
그럼 날 잘 다뤄줘
그럼 날 좋아하는 거야
응
- 학생의 시 中
언제는 힘들지만, 언제는 재미있고, 너무 좋다면서 '사랑하고 감사해요'라는 문장으로 편지가 끝을 맺는다. 편지를 건네며 선생님 이름 이거 맞죠? 라며 확인 한 번까지 하더니만. 귀엽다. 귀엽고도 사랑스럽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언제나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과 다투기도, 혼을 내기도, 때론 서로 냉랭한 분위기를 지니고 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럴 때마다 튀어나오는 저 순수한 애정들에 나는 다시금 아이들을 향한 사랑에 빠져들고 만다.
"저 정말 오랜만에 스승의 날 선물 받은 것 같아요."
영어 선생님도 오랜만이라며 웃음으로 화답한다. 작은 사탕 하나, 혹은 짧은 쪽지 하나. 별거 아닌 것일지라도, 아이들이 건네주는 그 마음은 언제나 기쁘다. 열심히 하자. 조금 더 아이들을 위하는 선생님이 되자. 그런 다짐을 하게 되는, 오랜만에 맞이하는 행복한 스승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