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위로 닿는 감촉마저 뜨겁다. 작은 몸을 토닥이니, 품 안으로 고개를 부비며 파고든다. 이내 칭얼거리며 아빠를 찾는 조카를 안고 제부의 뒤를 따라 걷는다. 이모 품에 안겨 해열제 하나를 먹은 뒤, 아빠 품으로 옮겨가 눈물을 글썽인다. 며칠간 열이 내리지 않아 병원을 오다니며 조카도 많이 지쳐버렸다.
"열이 내리거나, 아니면 차라리 수포라도 올라오면 속이 편하겠다."
"수포는 안 돼요......지금 다리에 있는 흉터들도 속상한데....."
작년 이맘때쯤, 고생했던 수족구와 증상이 유사하다. 원인불명의 고열로 병원에서 해열주사를 맞고, 받아온 해열제를 먹이다 열이 내릴때쯤, 수포가 올라왔다. 그때도 약 3일간 열을 내리느라 고생했었는데, 이제 슬슬 3일차에 접어드는 시점이다. 차라리 원인이라도 알면 마음이라도 편할 것 같으련만. 작은 녀석이 낑낑대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해열제를 먹고 얼마되지 않아, 조카는 다시 방긋거리며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 시작한다. 아직 열이 다 내리지는 않았지만 아이의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기저귀 하나만 차고 에어컨으로 실내온도를 낮춘 채로 열이 더 오르지 않는지를 계속해서 살핀다. 미지근한 물을 적신 물수건으로 겨드랑이와 같은, 열이 오르는 부위를 적셔주며 조카의 곁을 지킨다. 밤새 칭얼거리는 조카를 돌보던 제부는 피곤함이 잔뜩 배어있는 얼굴 위로 걱정을 드리운다.
졸린지 눈을 부비다 다시 아빠 품으로 파고든다. 조카를 안아든 제부는 방으로 들어가 짧은 낮잠을 재우기 시작한다. 그제야 조심스럽게 여동생이 둘째를 안아들고 밖으로 나선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 속상함이 가득하다.
"수족구면, 둘째한테 옮기면 안 되니까. 우리 둘이 격리중이야."
요즘 아빠바라기인 조카라서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아픈 아이를 품에 안고 달래주지 못하는 여동생의 마음이 편치 않다. 칭얼거리는 둘째를 토닥이며, 여동생은 조카 방에 설치된 베이비캠을 계속 들여다본다. 한참을 칭얼거리다 잠이 드는 모습을 보고 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다. 열 오르면 깨서 울더라고- 잠을 잔다는 것이 청신호가 되어 엄마아빠는 잠시 걱정을 내려놓는다. 안쓰러움만은 내려놓지 못하지만 말이다.
여동생과 함께 둘째의 젖병 꼭지를 사러 외출을 한다. 여동생의 모유가 배앓이를 잘 하는 성분이 있는 것인지, 혹은 남매가 모두 위장이 약한 것인지. 배앓이 덕에 둘째도 이른 단유를 준비중이다. 하지만 젖병 꼭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잘 빨지 못해, 다른 종류들을 구입하기 위해 아기 물건들을 판매하는 매장을 찾는다.
첫째가 이맘때쯤, 치발기와 딸랑이를 사 줬었다. 딸랑이는 여전히 첫째의 장난감 통에 담겨 종종 가지고 놀고 있으니, 둘째를 위한 치발기 하나를 선물로 구입한다. 그러다 한 장난감에 유독 시선이 간다.
"이거 사고 싶다고 눈물 글썽이다 울 뻔 했었어."
시선이 가는 이유가 있었다. 이미 첫째와 함께 매장에 들렀을 때, 사고 싶어 했던 장난감이란다. 다음달이 두돌이 되는 조카의 생일을 핑계로 장난감도 함께 구입한다. 둘째를 위한 선물을 살 겸 같이 온 것인데, 아무래도 아픈 첫째 조카에게 작은 웃음을 주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난 탓이다.
"제부는 수족구는 아니면 좋겠다더라. 다리 흉터만 봐도 여전히 속상하대."
"아, 그거. 처음 수포 올라왔을 때 몰라줬던거 미안해서 그럴거야."
작년, 열이 내린 조카가 자기 싫다며 한참을 칭얼거리다 울음이 터져버렸었다. 아픈 직후라 어리광을 부리는 줄 알았건만, 수포가 올라오는 통증때문이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울면서 다시 열이 올라 수포가 더 많이 올라온 것 같다며, 제부가 속앓이를 꽤 오랫동안 했었다. 그 덕분에 옅게 남은 흉터를 보면서도 여전히 그때의 미안함이 이어지고 있단다.
"흉지는건 속상하긴 한데, 나는 그래도 원인이라도 알면 좀 걱정이 덜어질 것 같아."
뽀얀 피부 위로 생긴 흉터들이 속상하지만, 원인불명의 고열이 더 걱정스럽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어리광이 심해졌지만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는 점. 그리고 밥을 잘 먹어준다는 점일까.
"이모가 선물 사왔는데~ 뭐 사왔게?"
집으로 들어서니 조카가 깨어 있다. 슬쩍 장난감을 등 뒤로 숨기니 신이 나 발을 동동 구른다. 핑크퐁이 앉아 있는 지게차. 조카가 가장 좋아하는 중장비 차 중의 하나다. 조카는 기쁨의 함성을 지르며 장난감을 받아든다. 그리고 아빠에게 달려가 '아빠 까주세요!'를 외친다.
"이모 고마워요- 뽀뽀해줘."
아빠가 장난감 까 주는 것을 기다리다 다시 내게로 와 뽀뽀 한 번을 해 주고 간다. 평소에는 해달라고 해도 안 해주던 녀석이 많이 기쁘긴 한 모양이다. 자고 일어난 후, 열이 꽤 많이 내렸다. 등과 겨드랑이, 오금쪽으로 느껴지던 뜨끈한 열기가 따스한 온기로 바뀌었다. 더이상 열이 오르지 않으면 좋으련만. 일어나서 밥도 야무지게 잘 먹었다는 조카가 기특하다.
조카가 태어나면 예뻐하게 되리라는 것은 예상했었다. 하지만 이토록 깊게 사랑에 빠지게 될 줄은 몰랐다.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는 나날이다. 너희 엄마와 아빠처럼, 이모도 사랑하기에 오는 속상함과 같은 아픔들조차 감내하는 것을 배워가는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