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도독- 주사기 끝부분을 돌려 숫자를 맞춘다. 알코올솜이 닿자 차가운 감촉에 아버지가 움찔거린다. 살갗에 대고 꾸욱 버튼을 누르자 톡, 톡-하는 감각이 손으로 전해진다. 천천히 속으로 숫자를 센 뒤 바늘을 뽑아낸다. 살짝 찡그린 아버지의 얼굴에 그리운 웃음이 새어 나온다.
"엄마보다는 내가 놓는 게 아프긴 하지?"
"응"
아버지가 옷을 추스르는 사이 바늘과 주사기를 정리한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손길에 바늘에도 찔렸었지만, 이젠 꽤 요령껏 정리한다. 매일 아침마다 아버지는 인슐린을 주사한다. 어머니가 1박 2일의 짧은 나들이를 가며 내가 아버지의 약을 담당하는 중이다.
찡그린 아버지의 얼굴에 대한 웃음은 고통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아버지의 얼굴이 할머니의 얼굴과 똑같아 그리움이 몰려온 탓이다. 골다공증을 진단받았던 할머니는 매일 아침마다 뼈 주사라고 하는, 마치 인슐린 주사와 비슷하게 생긴 것을 맞았었다. 어머니와 내가 교육을 받고 번갈아가며 주사를 할 때마다, 할머니는 불평을 토했었다.
"무사 느만 하믄 영 아팜시니."
어머니가 주사를 놔줄 때와는 달리, 내가 놓을 때마다 아프다며 불평을 하던 할머니였다. 함께 그 원인을 생각해 보려, 너무 꾹 누르는 것인지. 놓는 위치가 잘못된 것인지. 여러 가지를 고민하며 대화를 나눠 보았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었다. 결국은 손재주가 없는 손녀라서 주사도 잘 못 놓는다며 할머니가 놀리곤 했었다. 아버지에게 인슐린을 주사할 때마다 그때 그 장면이 떠오른다. 이미 긴 시간이 지나 잊어버릴 법도 하지만, 할머니의 하얀 속살 위로 작은 바늘이 박히던 순간이, 찡그리며 불평을 토하다가도 함께 웃던 그 순간이 지워지지 않은 것에 감사해진다.
"나 집에 좀 갔다 오려는데, 뭐 필요한 거 있어요?"
"어제 그거."
아버지가 손으로 가리키는 끝에는 꼬치를 먹고 남은 흔적이 남아 있다. 종종 새벽에 깬다는 아버지가 출출할까, 어제저녁에 사다 준 편의점표 닭꼬치가 맛있었던 모양이다.
"후라이드로? 아니면 양념으로?"
"후라이드."
2개를 사다 달라는 주문까지 완벽하게 받고 부모님 댁을 나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온다. 내 모습이 보이지 않자 걸려온 전화다.
어머니가 거실에 베이비캠 설치를 해 달라는 요청을 했었다. 제부가 아기 방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모델을 구입해 거실에 설치하고 어머니 핸드폰에 영상까지 연결해 준 뒤로 어머니도 불안감이 많이 줄어들었다. 예전의 아버지라면 기함을 토하며 싫어했을 테지만, 이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아버지의 상태를 간간이 살필 수 있게 되니, 1박 2일의 짧은 나들이도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오는 어머니다.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이불 위로 쓰러지듯 드러눕고 만다. 조카의 감기가 옮아오려는 것인지 코도 막히고, 머리도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분명 잘 자고 일어난 것 같은데, 누가 올라타기라도 한 듯 몸이 무겁다. 멍하니 누워 있다 몸을 일으킨다. 간단하게 집정리를 하고, 아버지 간식을 사다 드려야지. 인지장애로 힘겹게 하던 아버지를 원망하던 시기가 지나가며, 이제는 안쓰러움이 더 크게 몰려온다. 멍하니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그리고 어머니가 없는 시간 동안 아버지 홀로 있을 그 시간이 안쓰럽다.
그 안쓰러움에 이것저것 간단한 먹거리들을 구입했었다. 평소에 좋아하던 음식들 위주였지만, 이번에 아버지 마음에 든 것은 편의점표 닭꼬치였다. 비싸지 않은 것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좋다. 자주 사다주기에 부담이 없으니까. 다행히도 날이 좋다. 비도 안 오고, 바람도 강하지 않은 날. 아마 어머니도 비행기 연착 없이 무사히 짧은 여행을 다녀오는 날이겠지. 조용하게 주말이 지나간다. 내 한 몸이 편치는 않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주말이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