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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그만 녀석이 쪼그만 녀석을 안아주던 날

by 연하일휘

밝은 웃음소리를 터트리며 바라보다 이내 방향을 돌려 버린다. 이모 품으로 안겨들 줄 알았건만, 조카가 향한 곳은 할아버지의 품 안이다. 이모가 못하는 효도를 대신 해 주려는 듯,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잔뜩 애교를 부리는 요즘, 아버지의 웃음이 많아졌다. 대신 이모를 향한 애정이 쭈욱 바닥으로 떨어진 것 같지만, 그래도 할아버지와 손자의 웃음을 보는 것만으로도 꽤 만족스럽다.


조카의 열이 내렸다. 병원에서도 '돌 치레인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원인불명의 고열이 호전되었다. 점이라던가 사주, 민간신앙과 같은 것을 믿지 않는 제부도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믿어야 하나- 종종 두돌치레를 하는 아이들이 있다던데, 딱 두돌 되기 직전에 원인 불명으로 호되게 앓은 덕분이다.


지병이 많은 아버지에게 혹여 옮을까 한동안 못 찾아올 줄 알았건만, 호전되자마자 여동생은 둘째까지 품에 안고 부모님 댁을 찾았다. 손주 사랑에 푹 빠져 있는 아버지가 아픈 손주 얘기를 들으며 했을 속앓이를 풀어주기 위함이다. 그 마음을 아는지 조카는 이모는 본체 만 체 하며 할아버지 사랑에 여념이 없다.


둘째가 칭얼대기 시작한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엄마 품에서 칭얼거리다 이내 '응애-' 울음소리를 내어 버린다. 한동안 동생의 울음소리를 필사적으로 무시하던 조카의 시선이 돌아간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치 '왜 울지?'라는 표정이다.


"동생 울지 말라고 오빠가 쓰담쓰담해 줄까?"


두 손을 번쩍 뻗더니 동생의 배를 조심스럽게 쓰다듬는다. 오빠 손길이 좋았는지, 동생도 딱 울음을 그친다. 이건 찍어야 해- 급하게 핸드폰을 들고 '동생이 좋은가 봐. 또 예쁘다~ 해 줄까?'라는 말을 건네니 자세를 고쳐 잡는다.


"어머, 아기 안아 줄 거야?"


그 자그마한 몸으로, 더 작은 동생을 안아 든다. 엄마가 조심스레 머리를 받쳐 주지만, 아직은 무거운 듯 엄마에게 구조 요청을 보낸다. '엄마! 아기 안아! 아기 안아!' 오빠 품에 안겼던 동생은 다시 엄마 품으로 가 방긋방긋 웃기 시작한다. 동생에게 은근한 질투를 보내던 녀석이 처음으로 아기를 안아 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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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동생이 생긴다는 것은, 마치 남편이 '두 번째 부인이야.'라는 말을 하며 새 여자를 데려오는 것과 같은 질투와 배신감이 생긴다는 말을 들었었다. 아이들이 느끼는 배신감이 적지 않기에, 어른들은 여러 가지 조언을 잔뜩 건네기도 했었다. 아이 낳고 첫 끼니에 나오는 미역국을 첫째에게 먼저 먹이면 질투를 안 한다더라. 동생을 집에 데려갈 때 선물과 케이크를 사 들고 동생이 사 주는 거라며 축하를 해 주면 좋다더라. 여동생네도 조카가 동생을 처음 보는 날, 작은 파티를 해 주었단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첫째가 있을 때는 모두 다 첫째에게 집중해 주기. 너무 작아 품에 안지도 못하기에 이모는 첫째랑만 놀았지만, 사돈어른은 쉽지 않았나 보다. 간간이 둘째를 품에 안아주던 할머니에게 한동안 잔뜩 삐져있기도 했던 조카다. 그리고 아빠가 동생을 안고 있으면 도끼눈을 뜨고 쳐다보다 이내 울음을 터트리던, 그랬던 조카가 동생을 안아 줬다. 그새 또 커 버린 걸까.


아이들은 아프면서 큰다지만, 아플 때마다 속상한 건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아픈 이후에 훌쩍 큰 모습을 보면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무엇보다도 볼 때마다 쑥쑥 커버린 모습에 아쉬움마저 찾아올 지경이다. 분명 잘 크는 모습이 예쁘긴 한데, 이모가 볼 때 크면 안 될까. 그리고 조금만 덜 아프면서 크면 안 될까.


며칠 새 훌쩍 자란 모습을 핸드폰에 담고, 어여쁜 녀석의 이마에 쪽- 뽀뽀를 해 준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너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방긋거리는 웃음에 화답한다. 어릴 적 여동생을 꼭 닮은, 그래서 더 사랑스러운 내 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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