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가 남긴 아픔
머금었다 내뱉은 물에 핏기가 서려있다. 주먹 꽉 쥐세요, 입천장은 아픕니다- 사랑니 발치를 위해 마취 주사를 놓은 후, 입을 헹군다. 통증에 손에 힘이 들어갔지만, 출혈은 느껴지지 않았었다. 이미 마취 주사의 효과가 돌기 시작했던 것일까. 입 안으로 여러 기구들이 드나들다 우득-하는 느낌과 함께 거즈가 물린다. 마취 덕분에 뽑힌 자리의 통증은 없지만, 삐죽 튀어나온 거즈가 찌르는 뺨이 아프다.
"지난번 약은 괜찮으셨어요?"
새로 생긴 약국의 약사님이 친절하다. 지난 진료에서 약을 받으며, 여러 가지를 질문했었는데 그 대화를 기억하고 먼저 말을 꺼내준다. 시간 맞춰 밥을 먹고 약을 먹는 것이 귀찮은 탓에, '빈 속에 먹으면 안 돼요?'라는 질문을 던졌었다. 약효에는 영향이 없지만, 속이 많이 아플 수 있단다. 이번에도 똑같은 약을 받아가는 것을 보며, '사랑니 뽑으셨나 봐요'라며 약사님이 다시 말을 꺼낸다.
"저는 사랑니 뽑으려고 결제도 다 해 놓고는 안 뽑았어요."
"왜요?"
"먼저 3개를 뽑고 하나만 남았는데, 너무 아파서 못 가겠더라고요. 마저 뽑을 생각 하니 무서워서요."
"와.... 저 마취 풀리면 어쩌죠."
"힘내세요. 그래도 하나 안 뽑고 시간이 오래 흘렀는데도 괜찮네요. 꼭 다 뽑지 않아도 되긴 하나 봐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약값이 얼마인지도 듣질 못했다. '사람을 참 좋아하는구나.' 온화하게 생긴 얼굴도 있지만, 목소리나 말투에서는 다정함과 친절함이 묻어난다.
동네에는 오래된 약국들이 많다. 딱딱하고 퉁명스러운 약사들이 있는 곳은, 멀리까지 가기 힘든 날에나 들르게 된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굳이 기분 상할만한 공간을 찾을 필요성을 느끼질 못한다. 기존에 있던 약국이 사라지고, 새로 연 약국은 이전보다 크기는 줄어들었지만, 조금 더 화사하고 포근한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도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약사님 덕분에 새 약국이 더 반가워진다.
얼음팩 하나를 꺼내 얇은 수건으로 감싸 뺨 위로 올린다. 저릿하듯 마취가 되었던 뺨과 입안에서 천천히 감각이 돌아온다. 두 시간이 지나 거즈를 빼내니 한차례 울컥, 입 안에 피맛이 감돈다. 아직 피가 채 멎지 않았나. 더 이상의 출혈이 없어 걱정을 내려놓는다.
욱신거림이 뺨까지 올라온다. 치통이 심할 때면, 차라리 치아를 뽑아버리면 안 아플 것 같은데. 그때와 비슷하게 잇몸이 욱신거린다. 이미 뽑은 치아가 이렇게 아픈 거면, 대체 어떻게 해야 안 아플 수 있지? 추가로 구입한 타이레놀을 털어놓으며 자리에 누워버린다. 산책을 나가자며 꼬리를 살랑대는 강아지에게 간식 하나를 던져주며 사과를 건넨다. 미안, 누나 도저히 못 일어나겠어- 출근도 해야 하는데. 진통제 하나를 믿고 밖을 나서야 하는 현실이 서럽다.
약의 효과 덕분인지, 말을 하며 간간이 몰려오는 통증 외에는 수업이 무리 없이 진행된다. 하지만 중간중간 입안으로 침과 피가 뒤섞인다. 물로 입을 헹구듯, 적셔가며 수업을 진행한다. 평소라면 별 일 없이 진행했을 수업들이 힘겹다. 뽑기 전에도 아프고, 뽑은 후에도 아프고. 사랑니가 나는 것은 진화가 덜 된 것이라던데. 요즘 아이들은 사랑니가 없는 아이들이 더 많을까. 그거 하나는 너무나도 부럽다.
고작 사랑니 하나가 사라졌을 뿐인데, 몸이 천근만근으로 늘어진다. 춘곤증이 함께 찾아오나 보다. 나른함과 통증 속에서 천천히 잠의 기운이 스며든다. 작은 알약 없이도 통증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시간. 그래도 따스한 날씨가 위로가 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