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 집에 애기가 둘이야, 둘."
공간에 은근하게 가득 찬 비릿한 냄새가 오다니는 사람들에게 묻어나는 듯, 천천히 흩어진다. 예전이었다면 해산물에서 풍기는 냄새들에 미간을 잔뜩 찌푸렸을 테지만, 이젠 꽤 익숙해졌다. 간간이 젖어있는 바닥, 크게 미끄럽지 않아 다행이라 여기며 매대들을 둘러본다. 묘제때 잠깐 제주에 내려온다는 셋아빠와 셋엄마에게 성게를 챙겨주고 싶다는 어머니와 함께 나선 시장이다.
보냉봉투에 아이스팩과 함께 담아준 성게를 한 손에 들고, 어머니가 시장 구경을 제안한다. 손주를 돌보는 언니에게, 혹은 여동생에게 여러 음식들을 해 주기 위해 자주 찾는 시장이지만, 늘 다니던 골목만을 돌아다녔기에 다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기념품을 판매하는 곳, 과일을 판매하는 곳, 점차 길을 걷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걸음마다 부딪히기도 일쑤, 사람 많은 곳을 다닐 때마다 '사람 멀미'를 하는 나로서는 반기지 않는 공간이다. 크고 작은 목소리들이 공간을 메워가며 벌써부터 머리가 멍해진다.
"활기차. 사람들 참 많다. 마치 사람 구경 하러 온 것 같지 않아?"
나와는 달리 외향적인 어머니는 시장에서 느껴지는 활기에 조금 더 밝아진 얼굴이다. 그러게- 화답하듯 웃어 보이며 어머니의 뒤를 따라 걷는다. 먹거리가 몰려 있는 곳은,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빽빽하다. 시장에서 사는 먹거리는 단골집의 빙떡 하나. 그 외에는 다들 잘 즐기지 않기에 지나치는 공간이다. 하지만 오늘은 익숙하지만 꽤 낯선 음식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어? 엄마, 여기 깅이튀김 판다."
메뉴판에는 "베이비 크랩"이라 적혀 있지만, 제주도 토박이의 입에서는 '깅이'라는 단어가 먼저 튀어나온다. 오랜만에 보는 음식이다. 어릴 적, 집에서 어머니가 튀겨주던 깅이. 오랜만에 보는 음식에 어머니의 발걸음도 멈춰 선다. 소자 하나를 구입한다. 너희 어렸을 때, 깅이 죽 해주려다 믹서기 고장 났었는데- 어머니와 내가 같은 시절을 떠올린다.
낚시를 좋아하던 아버지에 의해 늘 가족 나들이는 바다였다. 검은 돌들이 제멋대로 박혀있는 바닷가를 걸을 때면 요령이 필요하다. 잘못 발을 디딜 때면, 바닷물에 흠뻑 젖어버릴 운동화를 대신한 얇은 샌들은 뾰족한 바위로부터의 통증을 그대로 전해준다. 파도가 돌틈 사이로 스며들었다가 멀어진다. 젖은 발이 마를 때쯤, 끈적거리는 감각이 싫어 조심스레 돌 위를 걸어 다닌다.
아버지의 낚싯대가 드리워지는 것을 기다리며, 작은 즐거움들을 찾아 나선다. 돌 틈 사이로 숨어있는 작은 녀석들을 낚아챈다. 숨어있는 동글 뾰족한 보말들을 하나씩 떼어 내거나, 몸을 말리는 작은 게, 깅이들이 주된 사냥감이다. 그 작은 집게에 물릴까, 조심스럽게 잡아채면 다시 종종거리며 돌 위를 뛰어 어머니에게 돌아간다. 바다가 소리를 삼킨다. 넓은 공간에 묻힌 목소리들 대신 파도가 스며들었다 다시 달아나는 소리만이 귓가에 배어든다. 바다는 그런 곳이다. 어린 나이에도 평온함 속에 물든 지루함과 작은 즐거움을 찾는 법을 가르쳐 주곤 했었다.
이미 양손 가득 장을 보았지만, 어머니는 딸기 앞에서 발을 멈춘다. 마트보다 더 비싼 것 같아- 딸기를 좋아하는 손자를 떠올리는 모양이다. 그럼 마트도 들를까? 끄덕이는 어머니와 함께 시장을 빠져나간다.
"너희 아빠가 먹으려나. 맨날 '안 먹어!' 이래 놓고는 먹긴 하더라만."
"안 먹으면 우리가 먹으면 되지."
"어휴, 집에 애기가 둘이야, 둘."
얼마 안 있으면 두 돌이 될 손주와 인지장애가 온 아버지, 어머니는 둘 다 애기라고 푸념하듯 이야기를 하지만, 웃음이 섞여있다. 처음 아버지의 인지장애 앞에서 어머니는 눈물을 터트리곤 했었다. 눈물 사이마다 표출되던 분노가 어느샌가 웃음으로 바뀌었다. 좋아지지 못하리라는, 인정하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어머니가 변해가며 부모님 사이의 관계가 조율된 덕분일터다. 이것도 복덩이 덕분일까. 손주를 품에 안으며 웃음이 많아진 어머니이기에, 바뀐 변화일지도 모른다.
"아빠, 깅이 튀김 사 왔어. 오랜만에 보지?"
여느 때처럼 '안 먹어'를 외칠 줄 알았던 아버지의 손길이 이어진다. 옆에 앉아 한두 개씩 집어 먹으며, 어릴 적 먹던 그 맛이 함께 떠오른다.
"어렸을 때, 깅이로 죽 끓이려다가 우리 믹서기 망가졌었잖아. 기억나?"
"응."
아버지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가족들과 음식에 대한 추억이 많지 않다 생각했었건만, 과거를 묻어둔 탓이었나 보다. 하나의 추억이 다시 새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