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도 뽀뽀 해줘!!
"이모 뽀뽀 해줘."
무심하게 뺨을 쓱 내민다. 쪽- 뺨에 입을 맞추고 다시 뽀뽀 요청을 해본다. 그제야 입을 내밀지만 톡 하고 닿자마자 고개를 돌리고는 장난감에 집중한다. 애교도 많고 따스한 조카인데, 이럴 때는 또 쿨하다. 네가 안 해주면 이모가 해야지. 동그란 머리통과 뺨에 몇 번 쪽-소리가 나게 입을 맞춘다. 요리조리,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조카가 문장 하나를 내뱉는다.
"칭구 보고 시포요."
아직은 부정확한 발음이지만, 또박또박 문장을 내뱉은 조카가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그랬구나-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토요일,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날이다. 아빠와 오전부터 먼 곳까지 함께 나들이를 다녀왔다지만, 친구들이 보고싶어진 모양이다. 어느새 훌쩍 커버려서는, 엄마와 아빠도 좋지만, 친구와 노는 즐거움도 아는 나이가 되었다.
어라, 그런데 너 말야. 그러면서 어린이집 갈 때는, 왜 그리 떼를 쓰는 거야?
얼마 전, 육아휴직 중이지만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들에 제부가 출근을 한 날이었다. 아직 100일도 안 된 둘째를 돌봐야 하는 여동생을 대신해 조카의 등원을 맡기로 했다. 아침부터 꼬물거리며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조카의 옷을 갈아입힌다. 아빠가 없는 아침인 덕분일까, 평소보다 짜증이 잦은 찡찡이 모드 조카다.
"나 등원시켜 주면서 커피나 한 잔 사 마실까 하는데, 너도 사다 줄까?"
조카의 어린이집 부근에 단골 커피숍이 있다. 좋아하는 조카와 좋아하는 커피로 시작하는 하루라니. 상상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아침이다.
"커피-? 이모! 커피!"
장난감에 집중한 줄 알았던 조카가 용케 내 말을 이해하고, '이모 커피'라는 말을 반복한다. 그리고 내 얼굴을 바라보며 눈이 반짝인다. 음, 너도 뭔가 이모랑 같이 먹고 싶은 거구나? 이모가 카페에 갈 때면, 뽀로로 보리차를 하나씩 사 주곤 했었는데. 저 눈망울에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결국 조금 더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서며 빵집으로 향한다.
엄마, 아빠와 자주 왔다더니, 빵집에 들어서자마자 자기가 좋아하는 빵이 있는 매대로 직행한다. 어린이용 치즈 케이크 하나, 그리고 식빵도 하나.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오물거리는 녀석의 뺨이 토실하다. 한두 입 먹더니만, 빵을 건네준다.
"이모, 먹어."
"고맙습니다."
인사를 배우는 녀석을 위해 빵을 받으며 고개까지 꾸벅 숙여준다. 먹던 빵은 이모에게 주고 새 빵 하나를 손에 잡은 채 만지작거리며 창밖을 내다본다. 지나가는 자동차를 바라보며, 여러 단어들을 내뱉지만. 미안하다. '빵빵'이랑 '부릉' 말고는 이모가 못 알아듣겠어. 아침식사를 든든히 했다는 녀석은 배가 부른 지 손으로 장난만 치다 결국 빵을 내려놓는다. 자아, 다시 이모 차 타자- 이모와의 아침나들이가 기분 좋은 듯, 조카의 입에서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아니. 아니. 저쪽! 저쪽!"
어린이집 골목에 들어서니 조카가 다급하게 소리를 지른다. 아냐- 어린이집 가야 해. 이모의 말에 '아니'를 외치며 울음이 터지기 직전까지 다다른다. 요즘 어린이집 갈 때마다 가기 싫다고 떼를 쓴다더니만, 이모와의 등원도 예외는 없나 보다.
"왜애~? 어린이집 가서 ○○이랑 △△랑 놀아야지~"
울음을 터트리려던 조카는 친구들의 이름이 나오자 뚝 그친다. 평소에 여동생이 말해주던 조카의 친구들 이름을 기억해 두기를 잘했지. 차에서 내릴 때도, 작은 칭얼거림이 있었다만 친구들의 이름을 읊어주며 어떤 놀이를 할 거야? 질문에 배시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이모 빠빠- 선생님의 손을 잡고 인사하며 어린이집에 들어서는 조카를 보니 기분이 묘하다. 예전에는 이모 가지 말라며 울며 붙잡았었는데, 언제 이리 쑥 커버린 건지. 두 돌도 되지 않은 조카가 친구와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지금의 네 세상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을까.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이모로만 가득했던 네 세상 속에 들어선 친구들은 어떤 모습으로 네 기억에 남아있게 될까. 여동생이 보여준 사진 한 장에는, 가장 친한 친구의 뺨에 뽀뽀를 해 주는 조카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너, 이모한테는 제대로 해 주지도 않으면서. 치사하다, 정말.
사랑이 넘치는 조카가 제 주변 이들에게도 사랑을 전해주나 보다. 그래서 또 그립고 보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지. 보고 또 봐도, 이모도 네가 보고 싶다. 보들한 뺨이 그리워지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