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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게 문제라고요?

이제는 정말 인정해야 하나, 노화가 진행 중인 것을.

by 연하일휘

얼굴을 간질이는 살구빛 털이 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돌려 털뭉치로 얼굴을 폭 파묻으니 꼼지락거리며 강아지도 품으로 파고든다. 사랑스러운 기상 신호에 미소를 지으며 잠에서 깨어난다. 조금은 서늘한 아침 기온, 아직 다 풀리지 않은 피로에 게으름을 피운다. 뒤척임 속에서 작은 불편함이 느껴진다. 귓속으로 느껴지는 그 감각에 미뤄두었던 고민이 다시 시작된다.


아이들의 시험 기간이 시작되었다. 평소보다 늦은 시간까지 보충 수업을 진행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애매한 각성 상태가 지속된다. 늦은 퇴근에 졸음이 오는 시간을 계속해서 놓치고 만다. 그 덕분일까, 무너진 생활패턴에 옅은 감기 기운이 지속된다. 말을 하며 목에서 오는 통증은 덤. 그러다 수업 중 찌릿- 귀에서 통증이 느껴진다. 심한 정도는 아니지만, 충분히 거슬리는, 그리고 작은 불편함을 주는 감각이다. 목때문인 걸까, 단순히 귀의 문제인 걸까. 병원에 가느냐, 마느냐에 대한 고민을 아침으로 미뤄둔다. 아침에도 아프면 병원 가지 뭐.


눈을 뜬 뒤에는 큰 통증은 없지만, 계속해서 거슬리는 감각이 남아있다. 단순히 예민한 반응이려나. 슬쩍 내일까지 고민을 미뤄둘까 하던 찰나, 주말 동안 출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오늘 아니면 며칠이나 더 미뤄질 텐데. 병원을 늦게 갈수록 고생한다는 사실을 이미 깨달았기에 귀찮음을 털어내며 몸을 일으킨다.


내비게이션에 찍힌 숫자가 점점 늘어난다. 출근시간이 겹치며 예상 도착 시간이 늦춰진다. 도로 위에 가득한 차들 사이에서, 간간이 클락션 소리들이 울린다. 늦게 출근하고 싶은 마음과,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들이 교차하며 내는 소리는 아닐까. 불만이 가득 담긴 소리들은 모순되는 마음들이 담긴 탓인지, 더 날카롭게 들린다. 아마 이 도로 위에서 여유로운 것은 나 혼자밖에 없을지도 몰라. 실없는 생각을 이어가며 병원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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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살펴보며 선생님이 허- 한숨을 내쉰다. 귓속 사진을 보니 깨끗하다.


"깨끗한 게 문제네요. 원래는 귀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어야 건강한 귀인데."


깨끗한 게 문제였다. 붉은 기가 감도는 사진을 보며 급성 외이도염 진단을 받았다. 귀는 절대 건드리면 안 됩니다. 이렇게 문지르는 것도 안 좋아요. 계속 손을 대다 만성으로 가면 평생을 고생한다며, 단단히 주의를 준다. 외이도염이라니. 내 몸이 염증들이 살기 좋은 상태가 되어버린 건가.


요 며칠간 과할 정도로 귀에서 간지럼을 느꼈었다. 나도 모르게 귀에 가던 손길 덕분에 감염이 된 걸까. 손대면 안 된다는 말 덕분인지, 평소보다 더 귀가 예민하게 느껴진다. 참자, 참아. 3일 치 약을 받으며 짧은 비명을 내지른다. 아, 약은 정말 더 먹기 싫은데. 부비동염이 나은지 얼마나 되었다고, 사랑니를 뽑으며 먹던 약이 끝난 것도 불과 며칠 전이다. 이제는 또 외이도염이라니. 쑥쑥 자라기를 바라는 근육은 저 구석에서 잠이 들고, 염증들만 빼꼼 고개를 내민다. 이제는 정말 인정해야 하나, 노화가 진행 중인 것을.


"건조해서 그럴 수도 있고, 미세먼지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이불 같은 곳에서의 먼지들도 원인은 될 수 있어요."


귀와 더불어 목도 함께 살펴보았지만, 목은 괜찮다는 진단을 받는다. 요즘 수업을 하며 아픈 건 목이었는데. 읊어주는 여러 가지 원인들이 거의 다 들어맞는다. 워낙 집을 어지르며 사는 아이라서, 집먼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 뜨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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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한동안은 꽤 깨끗하게 정리하며 지냈었는데. 집청소에 재미를 느껴 날마다 정리정돈과 쓸고 닦기를 반복하던 시기가 있었다. 부지런히 청소를 하다 깨달은 점은, 털을 뿜뿜 뿜어내는 아가와 지내면, 매일 쓸고 닦아도 끊임없이 개털이 나온다는 것일까.


다급히 외출 준비를 하려던 날, 바퀴벌레 한 마리를 발견했다. 구석에 설치해 두었던 바퀴벌레 약을 먹은 것인지 뒤집혀 있는 그 녀석을 치우지 못하고 달려 나갔었다. 금방 돌아올 거니까, 빨리 갔다 와서 치우자- 그런데 집에 돌아와 보니 사라져 있다. 저 구석에 누워있는 것을 분명히 봤는데. 그러다 강아지에게 시선이 간다. 분명 아가가 마당에서 지낼 적에는, 바퀴벌레를 야무지게 잡아왔었는데? 놀라서 강아지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갔었다.


다행히도 별다른 이상이 없어 가슴을 쓸어내리던 날, 여동생이 그럴듯한 추측을 건넨다.


"요즘 집이 깨끗하니까, 더러운 게 싫어서 먹어서 치워버린 거 아냐?"


의외로 깔끔쟁이 개들은 그런 경향이 있다 한다. 음, 그동안은 워낙 어지럽히며 지내왔었으니, 갑작스레 집이 깨끗해지니 그럴 수도 있겠네. 너무 깨끗한 것도 문제인 건가.


실없이 이어지는 생각들 끝에서 시답잖은 핑계가 이어진다. 청소를 게을리하는 요즘의 내가 내세우는 핑계에, 스스로도 웃음이 나온다. 깨끗한 게 문제인 건 아마 귀밖에 없을 거야. 오늘부터 조금 더 부지런해져야겠다. 우선 침구 청소기로 이불도 한 번 털어내고, 구석구석 숨어있을 아가의 털과 내 머리카락을 치워보자.


귀 말고 다른 곳이 깨끗해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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