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도 말썽쯤이야.
검은 바탕에 작은 빛들이 어른거린다. 창문 바로 앞에 설치된 가로등 불빛이 창 너머로 흔들거리듯 천장을 물들인다. 눈을 깜빡거리다 눈꺼풀을 닫아도, 잠이 오지 않는 밤.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보지만, 으레 만져지던 보드라운 털이 없다. 조로야- 아가 이름을 불러보지만, 귀가 어두워진 녀석에게 닿지 않는 소리다. 늘 누나 옆자리에서 잠이 들던 녀석이 웬일로 자기 쿠션에서 자리를 잡았다. 허전함에 몸을 뒤척이다 베개를 껴안는다.
베개가 축축하다. 피부 위로 젖은 섬유의 촉감이 묻어난다. 혹시...?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니 지린내가 폴폴 풍긴다. 아이고. 여기에 쉬야를 했구나. 다행스럽게도 베개 윗면에만 묻은 소변이 다른 곳에는 묻어나지 않았다. 웬일로 네가 옆에 안 온다 싶더니만, 말썽을 부려 슬쩍 도망간 거였네. 베개를 빼내고 몸을 한 번 헹궈낸다. 모른 척 누워있는 녀석을 쓰다듬으니 조심스레 꼬리를 흔든다. 괜찮아, 쉬야만 잘해줘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데.
아버지의 두 번째 뇌졸중 이후, 꽤 평탄한 일상이 이어졌었다. 그러다 아가의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배변패드 위에서도 빙글빙글 돌기만 할 뿐, 소변을 보지 못했었다. 요로결석인가? 일요일 오후 2시. 쉬는 날인 것은 알지만, 동물병원 원장님에게 전화를 건다.
"선생님, 저 조로 보호자인데요. 애가 소변을 아예 못 봐요."
"나 지금 잔치 먹으러 와신디, 4시까지 갈 테니까. 이따 보자."
끙끙거리는 아가를 쓰다듬다 시간에 맞춰 병원으로 달려간다. 시간이 길다. 아가를 안고 병원 문 앞, 계단에 앉아 선생님을 기다린다. 차가운 타일에서 올라오는 냉기 때문일까. 몸이 떨려온다.
평소라면 사모님이나 다른 원장님이 있었을 테지만, 홀로 급히 달려와주신 선생님과 함께 X-ray 방검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다. 방광 안에 작은 돌조각들이 보인다. 수술 날짜를 잡는다. 약이 효과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소변을 보지 못해 괴로운지 아가는 베개나 쿠션에 배를 문지르며 한두 방울씩 소변을 배출한다. 수술 전 날, 배를 문지르던 녀석이 자세를 잡는다. 다급히 손을 내미니, 쪼르륵- 소량이지만 드디어 소변을 본다.
그래, 그랬던 옛날이다. 수술도 무사히 마쳤고, 재발률이 80%라는 말에 사료와 간식들을 모두 바꿔버렸다. 그 덕분일까. 재발도 하지 않고, 병원에서도 '건강한 장수견'이라는 말을 듣는 아가가 되었다. 그랬던 너인데, 소변 실수 좀 했다고 누나가 화낼 리가 없잖아. 쓰다듬는 손길이 좋은 듯, 몸을 비틀며 애교를 부린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에는 마당에서 키우다, 자취를 시작하며 내가 데리고 온 녀석이다. 누나와 함께 있다는 것이 행복한 듯, 환한 미소를 짓던 아가였는데, 가장 큰 문제는 배변훈련이었다. 도통 배변판 위에 올라서지를 않으니 하루에도 여러 번 산책을 나가곤 했었다. 혹시 흙바닥처럼 폭신폭신한 곳에서는 볼 일을 보지 않을까. 추측으로 시작했던 시도가 성공했다. 두툼한 러그 위에 배변패드를 깔아 주니, 그 뒤로는 실수 없이 볼일을 잘 보기 시작했다. 다만, 그 러그를 빠는 일이 꽤나 귀찮은 것만 빼면 완벽했을 텐데.
배변패드를 깐다 해도 러그에 소변이 묻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문제는 세탁기에 한 번 돌리는 것으로는 냄새가 안 빠진다. 구연산을 넣으라거나, 세제를 바꾸라거나. 여러 팁들을 동원해도 결국은 세탁기를 두 번 돌려야만 사라지는 냄새. 그 덕에 러그의 수명이 짧다. 금세 뒷면이 터지며 스펀지가 빼꼼, 제 얼굴을 내밀고 만다. 요즘 실리콘 러그도 잘 나오던데, 바꿨다고 소변을 참아버릴까 봐 또 걱정이다. 괜히 돈만 쓰게 될까 걱정하던 찰나, 여동생에게 실리콘 배변판 하나를 선물 받았다.
"하도 현관 앞에 볼일 보길래 샀는데, 애가 안 쓴다."
잠들기 전, 러그를 치우고 실리콘 배변패드를 깔아 놓는다. 잠들기 전, 그리고 아침에 일어난 후. 주로 이 시간대에 볼일을 보는 녀석이다. 만약 볼일을 안 보면 산책을 다녀오며 치워버리고 볼일을 보면 잘 사용하면 되고. 자고 일어나 보니 배변패드에 노란색 동그란 무늬가 남아 있다. 잠든 아가를 안고 정수리에 뽀뽀를 해주며 칭찬을 해 준다. 자다 깨서는, 무슨 일인지 모르면서도 누나의 칭찬에 꼬리를 흔들며 화답을 해 준다.
반려견을 키우며 배변 실수로 인한 전쟁을 참 많이 목격했었는데, 요 녀석은 실수를 해도 고마운 마음이 먼저 든다. 요로결석이 재발하지 않아서, 그리고 실수를 하면 실수한 티를 내줘서 금세 뒤처리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품으로 파고드는 아가를 꼭 껴안는다. 팔뚝으로 콩콩거리는 심장의 두근거림이 전해진다. 이 감촉이, 온기가 오래가기를 바라며. 실수해도 괜찮아. 쉬야만 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