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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부지는 실패, 함무니는 성공!

할머니와 손자의 첫 나들이.

by 연하일휘

"당신도 갈래?"


어머니가 건넨 말에 돌아온 끄덕임은 놀라움으로 이어진다. 허리 통증에 고생하는 아버지는 외출을 즐기지 않는다. 가까운 곳을 차량으로 이동하는 것 외에는 늘 거부하던 아버지가 손자와의 나들이에 가겠다는 의견을 내비친다. 너희 아빠가 요즘 애기한테 푹 빠졌어- 얼마 전 부모님 댁을 들른 조카는 침대에 누운 할아버지에게 달려가며 소리쳤다. 하부지- 안아죠요- 웃음을 터트리며 손자를 안아 드는 아버지는 더욱더 깊은 손자 사랑에 빠져들었다.


아버지도 함께 나들이를 나가게 되며, 장소를 새로 물색한다. 그러다 '휠체어 대여'라는 글자가 적힌, 아쿠아플라넷을 선택한다. 먼 곳으로 나가야 하기에, 조금 더 이른 출발시간을 잡는다. 첫 손자와의 나들이. 어머니도 가까운 곳을 함께 다녀보기는 했었지만, 먼 곳으로 가는 것은 처음이다. 평일에 쉬는 어머니와 주말에 어린이집을 가지 않는 조카와의 시간이 맞지 않았던 탓이다.


"너희 아빠, 이젠 또 안 가겠다네."


출발 시간이 되어서야, 아버지는 포기를 선언한다. 성산까지, 긴 이동거리를 포함하여 휠체어를 타더라도 오래 돌아다녀야 하는 일정이 부담된 것은 아닐까, 어머니의 추측이 이어진다. 인지장애와 언어장애로 단편적인 의사소통만 가능하기에 결국 추측만을 남겨둔 채, 소수의 인원으로 첫나들이를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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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에 깨어나, 새벽 3시에서야 다시 잠들었다는 조카는 잔뜩 신이 난 상태다. 피곤할 법도 한데, 할머니와 나가는 첫 먼 나들이는 조카의 흥을 불러일으켰다. 차에서 잠들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끊임없이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며 아쿠아 플라넷에 도착했다. 할머니 손을 꼭 잡은 채, 수많은 인파 속을 거닐며 두 눈을 반짝인다.


요즘 상어에 푹 빠져있는 조카는 여러 종류의 상어를 바라보며 단어들을 외친다. 큰 상어를 보며 '아빠상어', 작은 상어를 보며 '애기상어', 아기 상어 노래에 푹 빠져든 만큼 상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캐릭터와 실물 사이의 차이가 꽤 클 텐데도, 단어카드와 책에 실린 사진들을 보며 익숙해진 모양이다.


상어 인형 하나가 조카의 품에 안겨진다. 고른 것은 아빠, 구입은 할머니, 안는 것은 조카. 할머니가 좋아하는 인형을 사줬다며, 조카는 자랑을 시작한다. 함무니가 사죠써- 함무니가 상어! 지느러미와 꼬리를 만지작거리며 짓는 그 만족스러운 표정에 어머니의 얼굴에도 웃음이 전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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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의 손을 잡고 한참을 돌아다니던 어머니는 피곤한지, 공연 관람을 포기한다. 먼저 차에 가서 좀 쉬겠다며 떠나는 할머니를 몇 번이나 돌아보던 조카는 바다사자 치코를 만나기 위해 두 다리를 폴짝인다. 이미 얼굴에는 피곤이 가득하건만,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라 못 보면 많이 아쉬워한다는 말에 조카를 품에 안는다. 졸리면 품에서 자도 돼- 머리를 쓰다듬으며 공연을 관람하는 시간, 피곤보다도 물보라가 일으키는 향연에 조카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공연이 끝난 후, 그제야 조카는 할머니를 찾는다. 함무니한테. 함무니한테. 두 다리를 동동거리다, 할머니를 마주하자마자 안으라며 잔뜩 어리광을 부린다.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건만, 할머니 품에서 잔뜩 얼굴을 부비는 조카의 모습에 식사를 포기한다. 여러 간식들도 먹었으니, 차라리 한숨 푹 재우고 조금 늦은 식사를 먹이는 것이 낫겠다는 선택이다. 카시트에 앉은 조카는 할머니 품에서 떨어지니 칭얼거리다가도 금세 잠이 든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어머니의 눈도 천천히 감겨간다. 뒷좌석에서 작은 숨소리들이 전해진다.


아버지는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어머니는 피곤함 위로 밝은 미소가 지어진다. 손자와의 먼 곳으로 나가는 첫나들이, 할아버지에게는 실패했지만 할머니에게는 행복한 추억으로 남는다. 조금 더 많은 추억들을 쌓아갈 시간들을 기대하게 되는 날, 다음에는 둘째도 함께 갈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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