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말, 고운 말.
파란 빛이 방을 메우기 시작한다. 이전보다 차갑지 않은 새벽 공기에 제자리를 몇 번 뒹굴거리며 보다 편한 자세를 찾는다. 자야 하는데, 쉽게 잠들지 못한 새벽. 결국 햇빛을 받으며 늦게서야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두시간 남짓 자고 일어나니, 몸상태가 말이 아니다. 컨디션이 0으로 수렴하는 듯, 일났다-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오전에 부모님을 모시고 외출을 해야 하는데, 다시 잠들었다간 졸음운전으로 이어질까 걱정이 먼저 튀어나온다. 차라리 외출 후에 낮잠을 자자- 커피 한 잔을 내려마시며 남은 잠기운을 몰아낸다.
우리 집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골목 안의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야 한다. 1층 대문이 큰 골목에 나 있다면, 작은 골목을 통해 2층으로 드나들 수 있다. 부스스한 머리를 몇 번 쓸어넘기며 집을 나선다. 빨리 다녀온 다음에 좀 자야지- 작은 소망을 품으며 작은 골목을 걷던 그때, 우체국 오토바이 한 대가 내 앞으로 달려들었다.
작은 골목, 더 안쪽에 있는 집으로 우편물을 배달하려는 것이었을까. 갑작스레 달려든 오토바이에 놀라 뒤로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 벽을 짚으며, 한 두걸음만 뒷걸음질을 했을 뿐.
"으아, 깜짝 놀랐네."
그 상태로 잠시의 정적이 흐르다 오토바이가 옆으로 비켜 선다. 그 사이로 지나가며 다시 작은 한숨이 새어나온다. 이래서 내가 조심한다고 사고가 안 나는 게 아니구나- 큰 골목으로 나서며 사고가 날 뻔 한거라면 모를까, 도로가 아닌, 막혀있는 골목에서 맞닥뜨릴 줄은 몰랐다. 덕분에 머리를 짓누르던 잠이 그대로 날아갔다. 부모님을 모시고 운전을 하며, 사고가 날 뻔 했다는 이야기를 전하다 문득 기분이 나빠진다.
생각해보니, 오토바이 운전사는 괜찮냐는 질문 하나 없었다. 서로 마주친 상태에서 의미 모를 잠시의 대치 상황만 이어졌을 뿐, 오히려 그쪽에서 더 불만이 가득했던거 아냐? 부정적인 나쁜 생각이 먼저 스멀스멀 올라온다. 생각하지 말자, 지나간 일 뒤늦게 화내봐야 내 감정만 소모되는데. 대신에 나를 칭찬한다. 그 순간, 욕이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놀랐다'라는 말만 튀어나온 내가 조금은 좋아졌다.
'욕'이라는 것이 싫다. 물론 화가 났을 때, 나 역시도 사용하긴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욕설로 점철된 대화를 많이 불편해 한다. 아마 일상대화 속에서도 욕을 많이 사용하시는 아버지의 영향이 크겠지만. 그럼에도 욕을 사용하지 않으려 노력했었는데, 오늘같은 상황에서도 욕이 먼저 튀어나오지 않은 내가 조금은 좋아졌다.
입에 욕을 달고 사는 듯한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다보면, 언제나 비슷한 핑계가 돌아온다.
"아빠가/형이 욕을 써서, 저는 그대로 배웠어요."
그러면 나도 똑같이 돌려준다.
"우리 아부지가 욕을 그렇게 많이 쓰셔. 나한테도 많이 쓰셨는데, 나는 그때마다 딸내미한테 무슨 말을 하냐고 엄청 싸우고 그랬거든. 근데, 쌤은 안 쓰잖아. 듣다보니 싫어져서 안 쓰려고 하다보니 안 쓰게 되던데?"
애들이 욕을 쓰지 않게 하려면, 내가 먼저 쓰지 말아야지. 한때는, 내가 욕을 쓰면 피자를 쏘겠다는 큰 약속을 하기도 했었다. 결국 애들은 한 번도 못 얻어먹었지만 말이다.
집으로 돌아와 짧은 낮잠을 청한다. 덕분에 낮잠에서 깨어난 뒤부터 두통과 허리통증이 이어진다. 낮잠의 대가로 두통은 언제나 찾아오는 친구인데, 허리는....잠을 잘못 잔 탓일까, 아니면 아침의 사고에서 근육이 놀란 걸까. 천천히 허리를 펴 주면서, 남은 하루를 마무리한다. 통증과 잠기운에만 취한 하루. 아- 하루가 아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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