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걱정들의 잔향
하얀 관이 하나 둘, 붉게 물들어 간다. 천천히 달궈지는 공기를 재촉하듯 몸을 가까이 가져가지만, 온기는 제 속도를 내지 못한다. 하얀 입김이 새어 나오는 아침의 강의실에 가득 찬 냉기 덕분이다. 발을 동동거리다 찌릿한 통증이 스쳐 지나간다. 넘어진 충격이 허리에 남아 있는가 보다.
잠긴 목을 열어 목소리를 내어 보지만, 마스크 한 겹에 걸러져 버리고 만다. 억지로 열듯 목에 힘을 주지만, 마음 먹은대로 시원스레 소리가 퍼져나가질 않는다. 결국 무리하기보다는, 평소보다 나긋한 목소리로 수업을 이어 나가는 것을 선택한다. 추위에 잔뜩 움츠러들며 성대도 웅크려 추위를 이겨내려는 모양이다.
두 반의 수업을 마친 후부터 허리와 골반으로 찌릿한 통증이 머무른다. 서 있는 자세가 좋지 않았던 것인지, 천천히 몸을 펴 보지만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남은 수업 시간 동안 의자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쌤이 어제 계단에서 미끄러져서 허리를 좀 삐끗했어. 서 있는 게 너무 아파서 좀 앉아 있을게."
빙판이 되어버린 계단 이야기와 넘어진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꺼내자 고개를 끄덕거린다. 몇몇 아이들은 집으로 올라가는 골목길이 얼었다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무서웠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의자에 앉아 허리를 좀 쉬어 준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오후 수업이 시작되며 통증이 사라졌다. 근육이 뭉쳐 고생할까 걱정이 많았는데, 이 정도면 그래도 다행스러운 통증이다. 쉬어주면 나아지니까.
걱정스러운 카톡에 괜찮다는 답을 하였지만, 괜찮은 것이 아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프다"는 것은 '괴롭다'는 의미라던데, 나는 지금 괴로운 것일까? 휴식을 취하면 나아지는 통증, 그 외에는 일상생활에 큰 무리가 없다. 다만 행동이 꽤 조심스러워지긴 하였지만 말이다.
"저 손 씻고 올게요."
수업을 하다 한 학생이 손을 든다. 코피가 손에 묻었다는 말을 한다. 유심히 살펴봐도 딱히 핏자국이 보이지는 않지만, 건조해지면 종종 코피가 나던 학생이라 화장실을 보내준다. 돌아온 학생의 얼굴이 깨끗하다. 코피가 났다기에 화장지로 코피를 막고 오리라 생각했는데, 별다른 조치가 없다. 건조해진 점막에서 살짝 피가 배어 나왔던 것일까.
마저 수업을 진행하려는데, 학생이 연신 손으로 코를 비벼댄다. 너 그러다가 코피 또 터지겠다- 내 말에도 몇 번 더 코를 비비더니 결국 또 코피가 터져버렸다. 호다닥 달려가는 학생의 뒷모습에 에휴, 작은 한숨이 새어 나온다. 손을 탁탁 털어대며 오는 학생의 얼굴이 또 깨끗하다.
"화장지로 코 안 막아도 되겠어?"
"네?"
고개를 갸웃거리던 녀석이 고개를 숙이자 코피 몇 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화장지를 접어 주었더니 코에 살짝 걸치듯 끼워 넣는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니 툭- 바닥으로 떨어진다. 평소에는 저 혼자서 잘하더니, 왜 오늘은 다시 어린애가 되어 버린 걸까. 깊이 넣어야 안 떨어지지- 그제야 코에 화장지를 잘 끼워 넣으며,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수업을 마저 진행하고 쉬는 시간에 가볍게 허리를 펴 준다. 문득, 오늘 하루 '괜찮냐'는 말을 들은 것이 메시지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음을 깨달았다.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면서도, 괜찮느냐는 질문을 듣지 않았던 것 같은데. 큰 아픔이 아니기에 딱히 서러울 것도 없긴 하다. 다만, '그게 아픈 거야'라는 문장이 계속해서 맴돈다. 그래, 크든 작든 '아픈 건' 아픈 거지.
코피를 흘리던 학생에게 괜찮느냐는 말을 건네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나의 작은 불편함에 나도 모르게 코피를 '고작'이라는 단어로 치부해 버렸다. 똑똑- 녀석을 찾아 다른 강의실을 찾는다. 아프진 않은지, 괜찮은지. 화장지는 코피가 다 멎고 버리라는 등 자잘한 잔소리와 함께 걱정을 건넨다. 그 걱정이 좋은 듯, 해맑게 아이가 웃는다.
크든 작든, 아픔에 대한 괜찮냐는 말. 작은 걱정들은 잔향을 남긴다. 고마움과 함께 베풀 수 있는 마음으로 전해지니까. 그러니까, 아픈 건 아픈 게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