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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커피 샀어?

고마움을 담은, 작은 표현

by 연하일휘

마스크 너머로 간간이 새어 나오는 기침 소리에 미간이 찡그려진다. 불편함일까, 미안함일까. 운전대를 잡은 남동생은 입을 열려다 다물고 만다. 목소리를 조심스레 가다듬는다. 부은 목의 통증이 꽤 불편하다. 조수석에 자리 잡은 햇빛이 따스하게 몸을 데우지만, 으슬거리는 한기를 쫓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남동생에게 인쇄와 복사를 해야 할 일이 생겼는데, 나와 남동생 모두 프린터기가 고장 난 상태다. 낱장 인쇄라면 주민센터를 이용하겠다만, 장수가 많아 무인 인쇄소를 찾아간다. 굳이 나까지 따라갈 일은 없지만, 평소 인쇄나 복사기를 사용할 일이 없던 남동생이 부탁을 한다. 복합기와 씨름하는 것이 일상이니, 나도 처음 가 보는 곳이겠지만 남동생보다는 익숙하겠지. 오전 수업이 없는 날, 오랜만에 함께 외출을 한다.



"아직도 감기 다 안 나안?"


"몰라, 퇴근하고 병원 가려고. 낫질 않네."



나 감기 옮으면 어쩌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을 꺼낸 동생은, 아픈 누나를 끌고 가는 일에 미안한 기색이 가득이다. 그저 웃음기 어린 말 몇 마디를 주고받으며 목적지를 향한다.


분명 복사실 옆에 주차장이 있다고는 했는데, 만차 상태다. 내부에는 사람이 없어 보이는데. 작은 한숨과 함께 주차 자리를 찾으러 동네를 빙빙 돌고 만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찾은 딱 한 자리, 조금 걸어가야 할 텐데 괜찮아? 남동생이 미안한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차 안에서 푸근하게 품어주던 햇빛의 무게감이 가로수에 의해 덜어진다.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 한복판에서 집에서 입던 편안한 옷차림이 시선을 끄는 것인지, 간간히 아주머니들이 돌아본다. 바로 옆에 주차하고 바로 들어갈 줄 알았지. 사람들은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다지만, 아닌 경우도 꽤나 많은 모양이다.


처음 사용하는 기계에 조금 헤매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사용법이 단순했다. 남동생은 괜히 같이 왔다며, 혼자서도 할 수 있었겠다는 말로 미안함을 전한다. 괜찮은데. 그렇게까지 아파 죽을 정도는 아닌데. 오히려 아픈 누나를 대신해 요즘 부모님을 대신 챙겨주는 남동생에게 고마운 마음이 더 크건만, 차마 입 밖으로 쉬이 나오지 않는 말이다.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이런 말들에 인색해지면 안 된다고 아이들에게 그토록 강조를 하는데, 선생님으로서 반성해야 하는 날이다.



starbucks-1281880_640.jpg Pixabay



커피 한 잔을 사겠다는 남동생의 말에 자주 가는 카페로 향한다. 어플로 미리 주문한 커피 두 잔을 들고 차로 돌아와 하루의 일정을 공유한다. 오전에는 아버지 모시고 식당을 다녀오고, 오후에는 어머니와 보건소에 다녀온다는. 쉬는 날임에도 온전히 자기 시간을 사용하지 못하면서도 별다른 불만을 표하지 않는 남동생이 대견하면서도 고마워진다. 물론 어떤 날은 막둥이 특유의 찡찡거림을 잔뜩 표출해 내며 작은 다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서로에게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집으로 들어선 뒤, 따스한 이불속으로 파고든다. 몸이 아프니 체력이 금방 닳아버린다. 이 좋은 날, 반짝거리는 햇빛 아래에서 산책이라도 가야 하지 않겠냐는 강아지의 주장을 온몸으로 받아주며 잔뜩 게으름을 부리는 금요일 오전. 결국 얼굴 위로 올라타는 강아지의 애교가 막힌 코와 어우러지며 호흡곤란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제 계획이 성공했다는 듯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꼬리를 흔들어대는 녀석을 보니 웃음이 새어 나온다.



"왜 누나가 커피 산? 고생시켜시난, 내가 사야 하는디."


"너 요새 엄마아빠 챙기느라 고생하니까. 고마워서 그냥 내가 샀지."


"무신. 알았어, 고마워."



뒤늦게서야 남동생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아무 말 없이, 커피 한 잔에 고마움이 전해지기를 바라기는 했었지만,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도 참 감사한 일이다. 알고 있지만, 표현하지 않는 것과 직접 말로 표현하는 것은 그 감정의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품 안으로 파고드는 강아지에게 목줄을 채워주며 산책을 나선다. 며칠간 끙끙거리며 오전 출근을 하는 누나덕에 산책을 가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미워하지 않고 사랑을 전해주는 강아지에게 미안함을 담아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감사하면서도, 미안한. 그리고 고마운 오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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