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그레한 뺨이 안쓰럽다.
빗방울이 얽히며 만들어낸 무늬들이 어느새 사라졌다. 와이퍼의 거친 소리를 깨달았을 때에서야 비가 그쳤음을 깨달았다. 약 13km, 왕복으로 26km 정도의 거리를 오가는 날, 멀지는 않지만 언니와 조카를 보러 자주 찾아가기에는 가깝지만은 않은 거리다. 어머니는 손자와 언니를 위해 준비한 음식과 선물들을 장바구니에 가득 채운 채 설레는 표정으로 차에 올라탄다. 자주 찾아가지 못하는 만큼 볼 때마다 그 애틋함이 더해지는가 보다.
"벌써 애가 한 달이 되었다니, 시간 너무 빠르네."
산부인과에서 면회 한 번, 조리원에서 퇴소하는 날 한 번, 남동생과 함께 한 번. 이번이 네 번째로 손자를 보러 가는 어머니는 언니가 보내준 영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가족톡에 온 영상이라 나도 받아보았지만, 어머니는 누군가에게라도 자랑을 하고 싶은 모양이다. 적당한 추임새를 넣다, 목의 붓기에 작게 인상을 찌푸리게 된다. 저번에도 감기 때문에 얼굴만 보고 나왔었는데, 오늘도 눈인사만 마주치고 나와야 하는 날이다.
"언니랑 형부가 사진을 못 찍네. 애기 왜 이리 더 예뻐졌어?"
"아무리 찍어도 사진이 안 나와."
언니도 속상하다는 반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진으로는 매일 같은 얼굴이더니 오랜만에 본 조카는 더 동글하니 귀여워졌다. 얼굴도 못 보고 가면 섭섭할 것 같아서 잠깐만 들렀어- 3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잠깐 조카의 얼굴만 들여다보다 언니와 짧은 인사만 주고받고 먼저 집을 나선다.
조금 더 손자와 시간을 보내고 있을 어머니를 기다리며 좌석에 몸을 깊이 누인다. 혈육에 대한 애틋함인지, 통증과 피로로 인한 몸의 반응인지 얼굴에 열이 오른다. 새벽에서야 잠이 들었건만, 소아과 예약을 위해 4시간도 채 못 자고 하루를 시작한 덕에 몸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조카가 감기에 걸려버렸다. 어제 어린이집 하원 무렵부터 미열이 오르더니, 저녁 무렵에는 목이 아예 쉬어버렸다. 미안함과 애틋함에 울컥, 눈물이 새어 나올 뻔했다.
"미안, 나한테서 감기 옮았나 보다. 열 많이 나면 안 되는데-"
한동안 조카가 많이 아파 병원을 전전하며 고생을 했던 사실을 알기에 미안한 마음이 더 커지고 만다. 여동생은 또 기관지염에 걸린 것일 뿐이라며 옮은 것이 아니라고, 신경 쓰지 말라 이야기를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아직 둘째가 나오기까지 두 달 정도 남았건만, 여동생에게 조산기가 나타났다. 산부인과에서도 여동생의 몸에 크게 이상이 없기에, "조산 위험성이 있을 리가 없는데?"라며 몸이 피로한 탓일 거라 진단을 내렸단다. 힘이 넘치는 아들을 키우며 무리를 한 탓일 수도 있지만, 아픈 조카를 챙기느라 몸과 마음 모두 고생을 했던 것도 한몫을 하지 않았을까. 잠 못 이루는 밤이 길어졌던 그때였는데.
제부가 쉴 수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육아휴직을 위한 인수인계에 휴일 없는 출근이 이어졌다. 다행스럽게도 방학이라 시간적 여유가 생긴 내가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덜컥, 내가 감기에 걸려버렸다. 병원에서는 편도염과 후두염이라는데.
"나는 컨디션이 괜찮은 편인데. 옮길까 봐 걱정이야. 너 괜찮다고 하면 마스크 끼고 가서 애기 돌보는 거 돕고, 아니면 나 다 낫고 보러 갈게."
여동생의 괜찮다는 대답을 듣고, 도톰한 마스크를 낀 채 조카를 돌보러 내려갔었다. 이모 얼굴에 있는 마스크를 열심히 벗겨내려는 조카와 씨름을 하다 몇 번이나 안경을 빼앗기기는 하였지만. 조카의 뺨에 불그스름하게 열이 오른 모습을 보니 죄책감이 밀려온다. 여동생은 몇 번이나 내 탓이 아니라고 이야기는 하지만, 탓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렵다.
"언니도 무리하면서 애기 봐준 거 아는데. 진짜 괜찮다니까, 이번에 별로 심하게 아프지도 않잖아."
아픈 조카는 짜증과 칭얼거림이 늘었다. 그래도 더 어릴 적처럼 울기만 하는 것이 아닌, 다른 장난감들을 이용해서 기분을 풀어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책을 읽어주는 동안, 여동생이 잠깐만 쉬겠다며 방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규칙적인 숨소리가 이어진다. 어젯밤, 혹여 열이 더 오를까 아이를 살피느라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던데, 이럴 때에서야 잠시나마 몸을 쉬는 모습이 안쓰럽다.
미안하고 애틋한 오늘. 비록 일찍 퇴근한 아빠를 보자마자 이모를 거부하며 아빠에게 칭얼거리기 시작한 조카의 모습에 조금 섭섭해질 뻔도 하였지만, 적어도 많이 아프진 않아 보여 다행이다. 조금만 아프다가 낫자. 짜증도 칭얼거림도, 다 받아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