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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내가 그럴 줄은 몰랐지.

그 퉤는 되지만 이 퉤는 안돼.

by 연하일휘

"이제 일어났어. 좀 이따가 내려갈게."


두툼한 이불이 짓누르는 무게가 몸을 단단히 고정한다. 추운 날씨도 아니건만, 이불을 걷어내지 못하는 것은 온전한 피로 덕분이다. 새벽녘에서야 감긴 눈에 아침이 힘겹다. 주말이라는 늦잠의 특권이 오늘은 적용되지 못하는 날, 제부의 부재로 힘든 여동생이 도움을 요청했다.


부스스한 머리를 동여매고, 앞머리를 정돈해 보려 하지만 도통 가라앉질 않는다.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 하나를 걸친 채 여동생네 집으로 향한다. 해맑게 과자를 흩뿌리는 조카와 강아지들이 주워 먹을세라 주섬주섬 다시 정리를 하는 지친 여동생의 모습에 웃고 말았다.


이모 안아- 이리 와. 두 팔을 벌려 조카를 부르지만 신이 나 뛰어다니는 통에 결국 쫓아가 품에 안아버린다. 잔뜩 장난기가 넘쳐나는 조카의 숨소리마다 가릉가릉거리는 소리가 섞여있다. 토닥토닥, 가래가 내려가길 바라며 등을 두드려주지만 별다른 차도가 없다. 좋아하는 과자를 몇 입 먹다가 장난을 치다가, 비어버린 봉투를 손에 쥐어주더니 장난감통 앞으로 뛰어간다.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들을 쓸어 담으며 지친 여동생과 담소를 나눈다.



"목이 아파서 그런지 잘 안 먹네."



아침도 반 정도 먹다 남기고, 좋아하는 빵도 먹다가 뱉어버린단다.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잘 먹지 못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병원에서 받아 온 먹는 수액을 빨대컵에 담아 물 대신 먹이는 것으로 걱정스러운 마음을 조금씩 달랜다. 허리까지도 오지 않는, 요 조그만 게 아플 데가 어디 있다고. 엄마아빠만큼은 아니겠지만, 이모의 마음도 편치 않다.


쿨럭거리는 소리가 심상치가 않다. 몇 번의 기침으로 가래가 튀어나온 듯, 침과 섞여 옷 위로 흘러내린다. 손수건을 찾으려 두리번거리던 중, 조카의 기침이 다시 시작된다. 입안에 가득한 가래를 삼키려는 듯 찡그려진 얼굴에 나도 모르게 손이 먼저 나간다.



"퉤. 퉤. 뱉어도 돼. 옳지."



하얀 거품 섞인 가래가 끈적거리며 손 위로 흘러내리다, 주르륵 노란빛이 섞인 액체가 뒤를 잇는다. 격한 기침에 토가 함께 나온다.



"괜찮아. 옳지, 잘했네. 마저 퉤 하자. 퉤."



등을 토닥여주지만, 조카가 놀란 듯 뒷걸음질을 친다. 여동생이 조카를 품에 안으며 마저 등을 쓸어내려준다. 잘했어, 괜찮아. 이건 뱉어도 되는 거야. 조카의 눈에서 눈물 몇 방울이 떨어진다. 울음을 터트릴 듯 히잉거리는 소리를 몇 번 내다가, 엄마와 이모의 괜찮다는 말에 안심을 한 듯 동그란 눈으로 제 흔적을 빤히 바라본다.


물티슈로 급히 바닥을 닦아내는 사이, 여동생은 조심스레 젖은 옷을 벗긴다. 신생아 시절에야 몇 번 게워낸 적이 있었다지만, 토를 한 적은 없던 조카다. 혹여 많이 놀랐을까, 조카를 달래며 옷을 갈아입힌다. 퉤. 퉤. 토했던 장소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을 하는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다시 한번 잘했다며 칭찬을 해 준다. 많이 놀라고, 지쳤던 듯 방싯거리며 웃던 조카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 꾸벅거린다. 여동생의 품 안에서 몇 번의 토닥임 이후, 금세 잠이 들어버린다.



몇 번 손을 씻어냈지만, 시큼한 냄새가 배어버린 듯 쉽게 냄새가 가시질 않는다. 그래도 어린 아이라 그런지 크게 냄새가 심한 것도 아니라 다행스럽다. 아픈 만큼 조금 더 길게 낮잠에 들었다면 좋았으련만, 막힌 코가 불편해 금방 깨어난 조카는 칭얼거림이 심하다. 안고 어르며 달래 보지만, 나가자며 떼를 쓰는 조카를 말릴 수 없어 갑작스러운 드라이브가 결정되었다.


커피 한 잔을 사 마시며 해안도로를 향하는 길, 바다에 떠 있는 배를 바라보며 '통통 배!'라며 발을 동동 구른다. 쉬어버린 목소리가 안쓰러워 머리를 쓰다듬으며 맞장구를 쳐 준다.



"나는 언니가 그럴 줄은 몰랐어."


"나도 내가 그럴 줄은 몰랐지."



맨 손으로 가래를 받으려 했던 행동에 여동생도 꽤 놀란 모양이다. 나도 모르게 나간 행동이라, 나도 놀라긴 놀랐다. 평소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인데, 어린 아이라 깨끗하게만 느껴진 탓인지, 사랑하니까 나온 행동인지.



"근데 생각해 보면, 나도 간병하며 할 건 다 해봤잖아."



할머니와 아버지의 간병 기간 동안 기저귀를 갈고, 엉덩이를 닦는 일 들이 익숙해졌었다. 아마 그때도 처음에는 거부감이 있었겠다만, 어느샌가 익숙해져 있던 나였다. 한동안 병원 생활을 하지 않았기에 잊고 있었던 것이지,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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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남짓, 드라이브를 즐긴 조카는 기분이 다 풀어진 듯 집 안을 뛰어다닌다. 빨대컵에 담아 둔 수액을 한 손에 들고, 한 손에는 좋아하는 공룡 인형을 들고 집안을 웃음소리로 가득 메운다. 그러다 주르륵, 입안에 물고 있던 수액을 바닥으로 뱉어버린다.



"언니, 그거 장난치는 거야. 컵 뺏어도 돼."



몇 번 더 입에 머금은 수액을 뱉는 행동에 안돼-라며 컵을 뺴앗으니 조카가 퉤! 퉤! 라며 칭찬을 해달라는 반응을 보인다.



"아냐, 가래는 퉤 해도 괜찮은데. 이건 퉤 하면 안돼."


"안돼? 안돼?"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조카가 말을 따라 한다. 말을 하고 반성했다. 저 퉤는 되고, 이 퉤는 안 된다니. 두 돌도 안 된 애기가 그걸 또 어떻게 이해해. 금세 흥미가 식은 듯 강아지에게 도도도 달려간다. 끄응거리는 큰 녀석의 소리를 들으며 바닥을 닦는다. 흠. 대체 뭐라 설명해야 '퉤'를 이해시키지. 의아해하던 조카의 모습에, 그리고 큰 강아지를 껴안으며 웃는 그 모습에 그저 웃음으로만 마무리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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