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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부고(訃告)를 전하다.

떨림이 눈물 방울이 되어 너를 애도한다.

by 연하일휘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은 차창으로 전해지는 햇빛 때문이다. 눈시울이 화끈거리는 것도 눈을 찌르는 햇빛 때문일 것이다. 하늘이 맑다. 청량했을 공기가 햇빛에 갈려 날카로운 송곳마냥 폐부를 찔러댄다. 부신 눈을 몇 번 비벼대지만 화끈거림이 더해지기만 한다.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아마 이토록 가라앉는 이 마음만은 햇빛때문만은 아닐 거야.


어두운 방 안에 핸드폰에서 새어 나온 빛이 유일한 광원이 되었다. 방을 다 비쳐 보이진 못하지만, 잠을 깨울 정도의 불빛이 눈을 찌른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뜨인다. 핸드폰에는 알림창 하나가 떠 있다. 어머니께서 남긴 메시지다.


부모님이 키우던 강아지가 떠났다는, 작은 부고(訃告).


혹여 놀랄까, 여동생과 언니에게는 알리지 말라는 그 메시지에 뜨거운 숨이 왈칵 쏟아진다. 울음범벅이 된 어머니의 목소리는 떨림이 멎지 않는다. 퇴근 후 눈을 뜬 채 쓰러져 있는 아가의 눈을 감겨주었다는, 그 말에 작은 한숨을 토해냈다. 연락을 받은 남동생이 긴 새벽, 어머니와 함께 있었다. 어머니를 대신해 정보를 찾으며, 곁에서 자리를 지켜준 남동생의 존재에 떨리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다.


달칵-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여동생이 통화 내용을 들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여동생의 목소리에 어머니는 나중에 통화하자며 전화를 끊는다. 혹여 아버지께, 혹은 어머니께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는 여동생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조카의 진료를 위해, 이른 종합병원 예약을 하러 가는 길. 우리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주고받았다.



"건강하던 강아지가 급사하는 경우에는, 집에 일어날 변고를 미리 가져가는 경우가 있다더라."



하얀 개가 그렇다고, 아픈 주인이 있는 집에서 가끔 그렇게 대신 악운을 안고 가듯이 떠나는 아이들이 있다는 말을 꺼낸다. 여동생의 담담한 목소리와 달리, 내 목소리의 떨림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언니는,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아가가 있으니까. 그래서 겹쳐 보여서 그럴지도 몰라. 나의 떨림에 대해 여동생이 내놓은 조심스러운 추측. 명확한 이유를 찾지 못하는 떨림은, 그 작은 몸을 감싸며 눈물을 흘렸을 어머니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정말 그 녀석이 나쁜 일들을 안고 갔을지도 몰라. 할머니가 떠오른다. 그날의, 북소리 사이마다 흘러나오던 그 목소리가.


고운 길을 걸으며, 더 이상 아픔 없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펼쳤던 귀양풀이. 북소리를 이끄는 꽹과리소리가 다시 귓가에 어른거린다. 큰아들 아픈 거, 어멍이 다 안앙 갔져- 구슬피 흐르던 노랫소리가 천조각이 되어 흩날리다 감겨온다. 떠난 할머니의 눈물 어린 소망이 심방 어르신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 할머니의 마지막을 마주하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흔들리던 어깨가 바닥으로 쓰러진다.


(*귀양풀이 : 제주도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에 저승으로 잘 가도록 비는 굿.)



가라앉은 마음을 추스르며 출근길을 나선다. 목소리 사이마다 끼어드는 작은 상념들이 목을 메인다. 5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마음을 다잡지 못하던 아버지가 유기동물보호소에서 데려온 녀석과 함께한 시간이다. 고작 2-3살밖에 되지 않았던 녀석은 목줄에 매여 유기되었던 것인지, 산책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목줄을 거부하곤 했었다. 크기에 비해 너무 말랐던, 3kg 정도의 몸무게로 뼈가 만져지던 아이는 5년 동안 사랑을 먹으며 천천히 건강을 되찾았다. 가끔 부리는 말썽에 잔소리를 하던 어머니도 잠이 들 때면 한 이불속에서 체온을 나누며 쌓아온 시간들이었다.


안방 침대의 전기장판을 켜 둘 이유가 사라졌다.

소파에 놓아둔 전기방석의 주인이 사라졌다.

할인 전단지를 유심히 살피며, 강아지 용품을 살필 이유가 사라졌다.

말썽쟁이의 뒤처리를 할 필요가 사라졌다.

발치에서 느껴지던, 혹은 품 안으로 파고들던 작은 온기가 사라졌다.


잘 누르지 못하는 키패드를 누르며 눈물을 닦아냈을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린다. 늦은 퇴근에 살랑거리며 다가왔어야 할, 반가움에 짖는 소리가 사라진 새벽. 눈을 뜬 채 누워있는 아이를 바라보던. 그 눈을 감겨주던 눈물방울을 떠올린다.


할머니와의 이별의 아픔을 덜어주었어. 아버지가 쓰러지실 때마다, 그 큰 집을 홀로 지키며 돌아오는 것을 기다렸어. 아마 속상함을 토해내던 어머니 곁에서, 때론 눈치 없이 살랑거리며 그 아픔을 위로했던 것은 너였겠지.


이유 없던 떨림의 이유를 찾아낸다. 고마웠던 거야, 나는 네가. 네가 너무 고마웠던 거야. 그 고마움에 대한 보답이 보잘것없던, 함께 살진 않아도 가족이라며 반겨주는 너를 더 아껴주지 못했던. 고마움과 미안함이 떨림으로 이어졌던 거야.


너무나도 늦은 인사이지만, 마지막으로 너에게 전한다. 고마웠어. 네가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떨림이 눈물 방울이 되어 너를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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