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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해보고 싶다.

<스피릿 핑거스>

by 연하일휘

나쁜 사람들은 개과천선하거나 벌을 받고. 착한 사람들은 언제나 해피엔딩을 맞는 것처럼. 그리고 현실에선 상상조차 못 한 사랑 이야기들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면. 우리의 현실이 드라마나 만화와 같다면 좋겠지만, 현실의 벽을 뛰어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서 해피엔딩인 작품들을 보면서도 역시 픽션이니까,라는 씁쓸한 현실인식이 튀어나오곤 한다.


<스피릿 핑거스>.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다. 현실에서 실제로 만날 수 있는 사람들, 갈등들이 얽혀 있지만 나쁜 사람들은 개과천선하고,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해 내며 결국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작품을 읽으며 두근거림을 느끼고 희열을 느끼지만, 한 편에서는 '현실에서는 이게 불가능하지...'라는 씁쓸한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읽은 누군가가, 혹은 비슷한 작품을 읽는 누군가가 아주 약간의 변화를 겪게 된다면 그 또한 나비효과처럼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의 '성장'을 다룬 작품들은 이런 작은 희망을 품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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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작가 한경찰 블로그(https://blog.naver.com/hedaa2002/221232661756)




날씬하거나 예쁜 것과는 거리가 멀다. 공부는 제법 잘 하지만 서울대를 다니는 오빠와 영재 소리를 듣는 남동생 사이에서 온전히 예쁨을 받지 못하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자신감 없는 평범한 고등학생인 '송우연'이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우연이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서로의 모습을 크로키하는 '스피릿 핑거스'(줄여서 스핑)에 가입하게 되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에 대해 배우며 점차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성 간의 사랑, 나를 사랑하기, 부모의 욕심과 자녀의 삶, 친구의 의미, 형제자매, 가부장적인 가정.

고등학생의 삶 속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이 등장하고, '이상적인 방향'으로 문제들이 해결되어 나간다. 현실의 문제들이 이렇게 해결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 '이상적인 방향'의 문제해결이 결코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기에, 이 작품이 던져주는 울림이 참 커진다. 단 한 마디, 그리고 약간의 생각의 전환. 이러한 것들도 실제 우리 현실에서 큰 의미가 될 때가 있으니까.


정말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기'이다. 특히 청소년 아이들에게 '나의 장점을 말해봐'라고 이야기한다면, 대다수의 아이들이 '단점을 말하면 안 돼요?'라는 반응으로 돌아온다. 어른들 역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물어본다면, 그렇다고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으니, 삶을 살아가며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주인공인 우연이 역시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한 아이였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크로키를 하는 시간 동안 '특별한 나'를 만나기 시작하며 점차 변화가 시작된다.


"그....그게....빨간색은 입어본 적이 아예 없어서...."
"너무 튀거나 어울리지 않을거라고 생각했구나?"
"네...좀 창피해서...."
"흐음? 그렇게 따지면 지난 주에 우리야말로 창피했던거 아닌가? 서른도 넘은 나이에 어울리지도 않는 교복이나 입고...."
"아니예요!! 절대 그런 생각 한 적 없어요! 언니 오빠들 보면서 진짜 개성있고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다들 멋지신데 저는 너무 평범하고 못생...."
"거기까지! 우리도 평소엔 평범한 학생이고 직장인이야. 일주일에 한 번 그림 그릴 때 만큼은 특별해지고 싶을 뿐이지. 그러니까 여기선 남의 눈치 보거나 그러지 않아도 돼. 오늘만큼은 우연이 너도 평범한 여고생이 아니라 아주아주 스페셜한 베블핑거니까!"
- <스피릿 핑거스> 22화 中



스핑 멤버들은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색깔을 고르고 이름 대신 각자의 색으로 지칭한다. 평범한, 평소의 '나'가 아닌 그날 하루만은 '나만의 색'을 드러내는 '나'가 된다. 첫 모임의 드레스코드는 '교복'. 그리고 두 번째 모임의 드레스 코드는 '빨간색'. 자신에게는 빨간색이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이 없던 우연이는 빨간 머리고무줄을 하고 간다. 하지만 '특별해지고 싶은 하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 언니들의 이야기를 듣고 대변신을 시도한다. 빨간 마술모자, 빨간 원피스와 별모양 요술봉, 그리고 빨간 메리제인 슈즈까지. 그날 하루는 평범하고 자신감 없는 송우연이 아닌, 베이비 블루 핑거가 된다.


"왜? 내가 어디가 어때서?"
"헐. 진심이세요 님아?"
"흥! 물론이지! 왜냐면 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베블핑거니까!"
"뭐야! 너 이런 캐릭 아니었잖아!!"
"사람은 원래 이런 모습도 있고 저런 모습도 있는거야~ 한 가지 캐릭터에 갇혀 살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잖아?"
- <스피릿 핑거스> 27화 中



스핑 멤버들은 누군가의 옷차림에 평가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서로의 그림도 '잘 그린다', '못 그린다'를 평가하지 않고 그림 본연의 느낌, 그리고 의도만을 파악한다. 다 큰 어른이, 그것도 3-40대의 어른들이 드레스코드에 맞춘 옷을 입고 단 하루, 스페셜한 '나'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10대, 20대의 도전과는 또 다른 도전이다. 사회의 규격에 맞춰 살아가던 이들이 '고정관념'을 버리고 나 자신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심심하던 삶 속에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서로에 대한 평가가 아닌, '나 자신'만을 바라보는 그 모임은 현실 속에서의 그들을 찾아 나서고 싶어 지게 만든다.


"근데 왜 안 해? 너도 안경 벗고 화장하면 진짜 이쁠 텐데!"
"알아. 나도 내가 화장하면 이쁠 거 안다고."
"뭐죠, 이 자신감은?"
"근데 난 지금도 좋아~ 뾰루지도 없고 눈도 맘에 들고~"
"뭐야 쏭? 언제부터 이렇게 관대해진 거야? 우리 같은 쭈구리였잖아!"
"크큭~관대해진 게 아니라~ 그냥 내 모습 그대로 봐주는 사람들이랑 지내다 보니까 나도 변했나 봐."
- <스피릿 핑거스> 72화 中


누군가를 온전하게 바라보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그 사람의 가족, 직업, 친구, 사회적 위치 등, 그 사람을 형성하는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필터가 되고, 고정관념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배제하고 그 사람만을 바라보았을 때, 그 사람의 모습은 이전과는 다르게 다가온다. 내가 만든, 그리고 사회가 만들어 놓은 모습이 아닌 그 사람 그 자체를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우연이는 이러한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익힌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된 이후부터 자신의 꿈을 찾고, 꿈을 위한 노력이 시작된다. 이전이었다면 부모님의 말만 잘 듣는 '착한 아이'였을 테지만, 이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연이의 변화에 발맞춰 오빠 역시 우연이에게 다가오고, 우연이를 돕기 시작한다.


'나를 사랑하기'


너무나 힘든 일이다. 하지만 나를 사랑하게 될 줄 알기 시작하면서, 큰 변화들이 뒤따라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단지 나 자신을 그대로 바라봐주고 응원해 주고 애정 어린 말을 건네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우연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현실에서는 어떠할까. 현실에서도 쉽지는 않지만,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사랑해 주는 이를 만날 수 있다. 여러 고정관념들이 아닌, 나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바라봐 주는 사람. 아마 대체로 친구들이 그런 존재로서 내 곁에 머무르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종종 친구들의 말을 우리는 흘려보내버린다.


'얘는 나를 좋아해 주니까, 이렇게 좋은 말을 해 주는 거겠지.'


내가 그 친구를 좋아하는 만큼, 그 친구도 나를 좋아하니까. 친구의 칭찬, 친구가 나를 꿰뚫어주는 말. 이런 말들의 진심보다는 그 친구의 애정을 먼저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종종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그런 말들을 너무 가볍게 흘려보내버린다. 분명 그 진심이 담겨있음에도, '애정'이란 필터만을 먼저 믿어버리게 된다.


조금 더 귀를 기울여보자. 단순히 나에 대한 애정으로만 하는 말이 아닌, 나를 온전히 바라봐주는 한 사람의 말일테니. 그 말들을 조금 더 가슴에 담아두게 된다면,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이 조금은 쉬워지지 않을까. 현실 속에서 '스핑'을 만나고 싶어진다. 하지만 만날 수 없다면, 적어도 온전한 나를 바라보는 이의 말이라도 흘려보내지 말자.


조금씩 천천히, '나'를 사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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