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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이고 가는 것들

by 연하일휘

소중한 이가, 큰 일을 대신 지고 가 준다면 고마움을 표현해야 하겠지. 하지만 홀로 품에 안고 보지 못할 곳으로 떠나버렸을 때, 밀려오는 이 감정은 과연 미안함일까 고마움일까.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통증은 문지르는 손길만으로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오른쪽 허리부터 종아리까지 원인 모를 고통이 찾아왔다. 전날에는 목과 어깨에 내려앉은 근육통에 고생을 하였건만, 허리가 다음 차례인 모양이다. 진통제나 근이완제를 찾아 약통을 뒤적이지만, 유통기한 지난 약들을 정리하며 치워버린 상자가 떠오른다. 아이고- 절로 새어 나오는 곡소리에 조카가 어눌하게 따라 하던 '아이고' 소리가 떠오른다.


조카를 안아주러 갈 때쯤에는 근육이 놀란 듯, 뻐근한 정도의 불편함이었다. 무릎에 앉혀 책을 읽어주고, 안아서 서성거리다 통증의 강도가 심해진다. 집으로 와 마사지기와 파스를 이용해 보지만, 누워있는 것마저 불편하다. 애교를 부리며 얼굴로 달려드는 강아지를 간신히 달래며 조심스레 스트레칭을 시도한다. 허리 통증이 다리까지 이어지면 디스크일 수도 있다던데. 이미 아버지와 할머니가 허리 디스크로 고생했던 모습을 봐왔었기에 걱정이 밀려온다.


아침에 일어나며 오른쪽 다리를 움직였을 때, 밤새 괴롭히던 통증이 가라앉아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왼쪽으로 뻐근한 근육통이 찾아온다. 전날에 비해 통증이라 하기에도 애매한, 작은 불편함을 안겨주는 정도의 증세다. 이모를 찾는 조카를 안아 들며 통증의 변화과정을 이야기하니, 여동생의 꽤 합리적인 짐작이 답으로 돌아온다.



"저번에 사고 날 뻔했을 때, 언니 근육들이 놀라긴 했었나 보다."



여동생과 조카와 함께 드라이브를 나갔던 날, 크게 교통사고가 날 뻔했었다. 직진 차선에서 줄을 이은 차들이 순서대로 삼거리를 지나갈 때, 갑작스럽게 좌회전을 하는 차량이 끼어들며 급정거를 했었다. 아슬아슬하게 부딪히지는 않았지만, 배 뭉침이 잦아져 조산방지제를 먹고 있던 여동생이 꽤 크게 놀랐던 사건이다. 문제는 조카가 손에 쥐고 있던 장난감을 떨어트려 칭얼대는 중이라, 장난감을 줍기 위해 제대로 앉아있지 않던 내가 급정거와 함께 앞 좌석에 꽤 강하게 몸을 부딪혔다. 이래서 뒷좌석에서도 안전벨트는 단단히 매고 있어야 했는데, 잠깐이면 괜찮으리라 생각했던 순간에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다행히도 여동생도 조카도 다친 곳 하나 없이,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그날 새벽, 부모님께서 키우시는 강아지가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여동생이 말을 꺼낸다. 건강하던 강아지의 급사는 큰 일을 대신 가져가기도 한다고. 울음을 터트리는 어머니에게 말을 전한다. 이런 사고가 날 뻔했다고. 그런데 여동생도 조카도 멀쩡하고, 나만 부딪히며 근육통이 왔다고. 꽤 크게 날 뻔한 사고였다고. 어머니는 말을 끝까지 다 잇지 못하셨다. 그래서, 그래서. 이리 급히 갔나 보구나. 애들 대신해서. 어머니에게 상처가 될지, 혹은 갑작스러운 이별에 대해 위로가 될지. 후자이기를 바라며 전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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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개들은 귀신이나 저승사자와 같은 존재를 본다 했던가. 그래서 집으로 찾아온 이들을 쫓아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들었었다. 때론 찾아오는 변고를 대신 이고 가기도 한다고. 검은 개들은 그런 이들과 친구이기에, 종종 친구의 밥을 빼앗아 먹느라 제사상 음식을 잘 탐낸다는 이야기도 함께였었지. 하얀 몰티즈였던 녀석은, 저 혼자 무엇을 다 이고 간 것일까. 어머니에게 전한 말처럼, 여동생과 조카, 그리고 뱃속의 아가에게 올뻔했던 나쁜 일들을 이고 간 걸까.


그 작은 강아지 한 마리의 부재가 거실을 더 넓게 만든다. 그 작은 몸이 거실을 온통 다 메우던 울음소리가 허전하다. 며칠간의 고생이 지나가며 달라붙어 있던 통증들이 사라졌다. 그날이 겹치면서 찾아온 허리 통증과 더해지며 조금 더 심한 근육통이 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저 혼자 다 이고 간 녀석이 남긴 것이 슬픔만이 아니기를 바란다. 남아있는 기억들이, 갑작스러운 이별까지도 슬픔만이 아닌 고마움이 되기를 바란다. 어머니의 눈물이 너무 오래 지속되진 않기를, 아픔으로만 남지 않기를, 못 해준 것들에 대한 기억들로 미안함이 너무 많이 차오르지 않기를 바라며. 떠난 녀석을 떠올리는 날.





boho-art-7374559_1280.jpg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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