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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도 아빠가 보고 싶네.

게으르게 뒹굴거리는 시간에 대한 욕망

by 연하일휘

베에- 조카가 샤워기의 물줄기로 계속 혀를 갖다 댄다. 해줄까, 말까. 오르락 거리며 닿을 듯 말 듯, 물방울이 튀는 것이 재미있다는 듯 맑은 웃음이 터져 나온다. 물장난을 좋아하는 조카에게는 목욕 시간이 즐거운 놀이 시간으로 변모한다. 감기가 심해질까 바쁜 엄마의 손놀림과는 달리 장난감을 쥐고 잔뜩 신이 난다.


"내일 오전에 우리 집에 없을 거야."


"어디 가?"


"애월에 가고 싶던 카페 다녀오기로 했어."


육아휴직 준비로 인수인계에 바쁘던 제부가 드디어 주말에 휴일을 받았다. 이를 기념하듯, 오랜만에 가족나들이를 간다는 여동생은 즐거움과 피로가 뒤섞인 복잡한 얼굴이다. 아파서 요즘 찡찡이 모드인 조카를 돌보느라 진이 쏙 빠져 쉬고 싶은 마음과 함께 출산 전에 즐거운 시간을 더 쌓고 싶은 마음이리라.


"나 제부 있으면 잘 안 내려오잖아."


"그래도 언니 보고 싶다면서 내려오니까 말하는 거지."


아기 수건으로 조카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듯 닦아내다 몸으로 손이 옮겨지니, 조카가 뒤로 쏙 돌아서는 제 엄마 품으로 파고든다. 이그- 옷 다 젖겠네. 익숙하다는 듯 그 상태로 조카를 수건으로 둘둘 말고서는 품으로 안아 올린다.


한동안 주말에도 출근을 하던 제부를 대신해 여동생과 함께 조카를 돌보는 중이었다. 둘째가 태어나기까지 딱 한 달이 남은 지금, 조산방지제 덕분인지 틈틈이 몸을 쉬어준 덕분인지 다행히도 여동생의 몸에 큰 문제가 발생하진 않고 있다. 다만 넘치는 힘으로 온몸으로 떼를 쓰는 조카를 달래주는 이모가 나날이 지쳐간다는 것 정도? 열이 나지 않는 것은 다행스럽지만, 막힌 코와 기침가래에 몸이 많이 힘겨운 듯, 조카의 이유 없는 땡깡이 늘어났다.


방학 기간이 되며 오전 수업으로 바뀌었건만, 내 퇴근 시간과 조카의 하원 시간이 딱 맞물렸다. 집 앞에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면, 어찌나 절묘하게 어린이집 하원 차량이 집 앞에 도착을 하는지. 차에 둔 가방을 챙길 새도 없이 조카 돌봄이 시작된다. 요즘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달려오는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먼저 도착을 하면서, 집에 가방을 두고 옷을 갈아입을 시간을 챙기는 꼼수가 생겨나긴 했지만.


미안해하는 여동생에게는 "얘가 내 신경안정제잖아. 보고 싶어서 오는 거야."라는 말을 하지만, 가끔씩은 부모의 위대함에 감탄을 하게 된다. 내가 도와준다 해도 극히 일부의 시간인데, 하루종일 애를 보는 체력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사랑스럽다는 말로도 부족한, 예쁜 아이지만 그 예쁨이 모든 피로를 회복해주지는 않더라. 조카가 잠이 든 이후 집으로 돌아오면 강아지와 함께 이불속을 유영한다. 그러다 스르르 잠이 들기도 일쑤인, 조카 수면제 덕분에 불면증이 치료되는 고마우면서도 피곤한 요즘이다.


목욕을 마친 조카의 몸에서는 아기 냄새가 폴폴 풍긴다. 물론 신생아 시절의 분유와 젖의 냄새와는 다른, 아기 목욕 용품이나 로션의 냄새지만 그 보들한 냄새에 뽀얀 조카를 더욱 꽉 안아주게 만든다. 품에 앉혀 책을 읽어주는 사이에 엄마는 네블라이저를 이용해 호흡기 약을 조카의 얼굴에 바싹 갖다 댄다. 어린이집에 다니며 감기만 걸렸다 하면 기관지염으로 고생하는 손자를 위해 어머니가 사 준 기기를 유용하게 사용하는 중이다.


책에 푹 빠져있는가 싶더니만, 슬슬 졸리기 시작한 지 이유 없는 짜증이 시작된다. 조카를 안아 들고 집안을 어슬렁거리며 등을 토닥인다. 그러다 거실에 걸린 여동생네 결혼사진을 가리키며 아빠라는 단어를 반복하며 칭얼댄다.


"그래, 그래- 아빠 보고 싶었어?"


히잉거리며 어깨에 고개를 파묻는다. 바쁜 아빠와 놀 시간이 얼마 없었기에, 많이 보고 싶은가 보다. 근데 있잖아. 이모도 가끔은 너희 아빠가 빨리 집에 오면 좋겠다. 비록 아빠가 온 순간부터 이모 품에도 오지 않겠다며 아빠 바라기 모드가 장착되기는 하지만. 게으른 이모에게 조카 돌보기는 생각보다 더 부지런한 일인지라, 게으르게 뒹굴거리는 시간에 대한 욕망이 솟아난다. 아빠가 오면, 이모는 좀 많이 뒹굴거릴 것 같아. 그래도 너 안 사랑하는 거 아니니까, 삐지지는 말자.


졸린 탓에 서러움이 극에 달했는지, 엄마를 서글프게 부르기 시작한다. 조카의 침대를 정리하던 여동생의 품에 조카를 안겨주자, 잔뜩 웅크린 채 제 엄마의 품속으로 파고든다. 조용히 방 문을 닫자, 뒤늦게 '미모, 이모'하는 조카의 목소리가 전해진다. 아마 자기 전 '빠빠-' 인사를 하지 못했다는 의미의 부름일터다.


집으로 올라와 뜨끈한 전기장판 위에서 잠을 청하던 강아지를 품에 안으며 이불속으로 파고든다. 이번 주말은 제부가 집에 있는 날, 여유로이 집에서 뒹굴거리며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날이 이틀이나 생겼다. 그런데 왠지 나는 주말에도 조카를 품에 안고 있을 것만 같은 이 예감은 뭘까. 여동생의 말마따나 보고 싶은 마음에, 조카를 안으러 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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