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들한 감각 너머로 냉기가 스며든다. 이른 아침의 공기가 바닥마저 차게 얼려버린 듯, 도톰한 수면 양말 너머로 발의 온기마저 빼앗기는 아침이다. 찬 물에 야채를 씻으며 시린 손 끝에 작은 신음이 배어 나올 것만 같다. 하- 하고 작은 한숨을 내뱉는다면 입김이 눈앞을 메워버릴지도 몰라. 한동안 포근했던 겨울 날씨였기에 갑작스런 추위가 더 시리다.
서툴게 손질한 야채들을 담아두고 올리브유를 집어 든다. 하얗게 응결된 덩어리들이 병 입구로 흘러내린다. 오일이 얼어붙었다. 체감상의 추위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출근길에 나서기도 전에 안전 문자들이 연이어 울린다. 강풍, 대설, 통제. 작은 난로에서 흘러나오는 온기를 두고 밖을 나서는 일이 두렵다.
하얗게 앞유리를 덮는 눈발에 핸들을 꼭 부여잡게 된다. 출발을 할 때만 해도, 그저 흐린 하늘이었건만 얼마 되지 않아 하늘을 하얗게 메워버렸다. 느슨하게 밟은 엑셀에 천천히 속도가 줄어든다. 갑작스레 부는 강한 바람에 차가 한차례 휘청인다. 잔뜩 긴장한 채 운전을 하다 보니 주차와 동시에 아이고-하는 소리가 절로 흘러나온다. 수업 시작도 하기 전에 운전에만 온 힘을 쏟아버린 듯, 녹초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수업은 어떻게든 해야지. 텀블러에 담아 온 커피를 홀짝이며 아이들이 오기 전, 미리 강의실의 난로를 켜둔다.
굳게 닫혀있는 창문의 틈새로 바람이 스며들어오기라도 하는 것일까. 온기를 가두어야 할 교실이 유독 차게 느껴진다. 낮게 울음을 울며 창틀을 흔들다가도, 진눈깨비가 창을 연신 두드린다. 어깨 위에 걸쳐놓은 숄을 몇 번이나 제대로 여며 매면서 창 밖의 소리에 계속해서 신경이 곤두선다. 입구에서 작은 울먹거림이 들려온다. 한 학생이 입구에서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젖어있는 바닥과 오래 신어 맨질맨질하게 닳아버린 크록스의 밑창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다친 곳은 없었다.
안 다쳐서 다행이다. 겨울에는 크록스를 신으면 쉽게 넘어질 수 있어. 바닥이 이렇게 닳으면 위험하거든. 내일도 눈 올 것 같으니까 꼭 운동화 신고 오자-
놀랐을 아이를 달래주며 난로 앞에서 함께 몸을 녹인다. 금세 넘어졌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듯, 내리는 눈에 눈을 반짝이며 소망들을 늘어놓는다. 이대로 눈이 쌓여서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고, 아빠랑 썰매도 타러 가고 싶다는. 초등학생 어린아이는 그저 기다렸던 눈이 온다는 사실이 기쁘기만 한 모양이다. 이야기를 들어주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슬그머니 한숨이 배어 나온다. 나는 오늘 퇴근을 못 하겠네-
바닥에 내려앉을 때마다 녹아내리던 눈송이들이 어느새 하나둘 자리에 안착하기 시작한다. 거센 바람에 밀려나가다가도 하나둘씩 내려앉아 세상을 하얗게 물들인다. 수업 중 간간이 내다본 풍경이 시시각각 바뀌고 있다. 세상이 얼어붙는 중이다.
우연찮게 들여다본 핸드폰에는 제부의 카톡이 도착해 있다. 서로의 직장이 그리 멀지는 않지만, 출퇴근시간이 서로 맞지 않았었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 이른 퇴근을 할 것 같다며, 나의 퇴근 시간을 묻는 연락이었다. 여러 차례 고마움을 표한 뒤, 수업이 끝난 후 학원 근처의 편의점에서 제부를 기다린다. 주차장에 세워둔 내 차 위에도 소복이 눈이 쌓여 있다. 내일은 데리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려나.
무언가 고마움의 표시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마땅한 것이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문득 여동생이 제부가 좋아한다며 구입하던 초콜릿이 눈에 들어온다. 이런 날씨라면 따뜻한 음료를 사는 것이 맞겠지만, 불만족스러운 따뜻함보다는 만족스러운 차가움이 낫지 않을까. 벨소리가 울리자 급히 계산을 하고 편의점을 나선다. 히터에서 나오는 후끈한 열기가 피부에 와닿는다. 갑작스런 온도차에 손과 뺨이 저릿하면서도 천천히 녹아내리는 것이 느껴진다.
"버스 타고 빙빙 돌아서 가야 하나 했는데, 고마워."
"뭘요. 시간도 맞고 방향도 같은데요, 뭐."
"그래도. 고마운 건 이제 첫째랑 둘째한테 열심히 갚을게."
제부가 작게 웃는다. 두 달 정도만 있으면, 예쁜 둘째를 만나는 제부는 이야기만 들어도 웃음이 새어 나오는가 보다. 어느덧 얼어붙었던 손에서 온기가 돌고 있다. 창 밖으로 하얗게 물든 세상과 대조적으로, 포근한 퇴근길이다. 조카에게 사주고 싶던 옷을 보여주며 고민하던 여동생의 모습이 떠오른다. 오늘의 고마움은 예쁜 조카의 꼬까옷으로 갚아야지. 새 옷을 입고 신이 나 꺄- 소리를 지를 조카를 떠올리니 내 입에서도 슬쩍 웃음이 새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