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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질투는 무섭다.

이해는 하지만, 내 탓은 아닌데.

by 연하일휘 Mar 15. 2025

"어제 손주덕에 엄마 기분 좋았다매?"


오랜만에 바깥에서 식사를 하고 싶다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식당으로 향한다. 얇은 빗방울이 하늘을 가득 메우며, 따스했던 공기가 식어버렸다. 조금 얇은 외투 탓에 몸을 움츠리던 어머니는 손주 얘기가 나오자 얼굴에 가득 환한 웃음을 띄운다. 


"애기가 할머니 보자마자 엄청 좋아했다 하던데."


"야, 원래 할머니 좋아했거든?"


타박하듯 대답하는 어머니의 말에 그저 씁쓸함이 섞인 미소가 배어 나온다. 분명 맞는 말이기는 한데, 얼마 전에 있었던 일 덕분에 속 시원히 맞장구를 치기가 어렵다.




언니가 병원에 좀 다녀와야겠다며, 어머니께 조카를 잠시 부탁한 날이었다. 며칠간 울음보가 터져 전쟁과도 같은 시간을 보냈다며 언니는 외출 전까지도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하지만 저를 한없이 예뻐해 줄 할머니를 알아보기라도 한 걸까. 아직 100일도 되지 않은 조카는 할머니 품에서 방긋방긋 웃으며 울음 한 번을 터트리지 않았더란다.


"엄마 아빠가 거짓말쟁이네~"


너무 울어대니 혹시 어디 아픈 걸까, 병원이라도 가려했다는 언니는 복잡한 표정이었다. 할머니 품에서 잘 지내는 모습이 다행스럽기도 하지만, 정반대의 모습에 놀라움과 섭섭함이 섞여 있었다. 아마 날궂이를 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던 어머니는 그 조그만 녀석의 할머니 사랑에 흠뻑 빠져버렸다. 그날 저녁, 손주 하나를 보니, 다른 손주가 또 보고 싶어 졌다며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주차를 하고 뒤늦게 들어간 집의 분위기가 묘하다. 조카가 어머니에게 삐져 있다. 평소라면 할머니가 왔다며 품에 안겨 제 장난감을 잔뜩 자랑하고 있을 텐데, 오늘은 뽈뽈거리며 할머니에게서 도망을 다닌다.


"엄마가 오자마자 자기가 아니라 강아지 먼저 안아서 그래."


동생이 태어날 시기가 다가오자 질투가 폭발하는 조카는 강아지를 안고 있는 모습만 봐도 엉덩이를 들이민다. 자기만 품에 안으라는 뜻이다. 그런데 할머니가 자기보다 강아지를 먼저 챙기니 단단히 삐져버렸단다. 손주의 할머니 사랑을 잔뜩 느끼고 싶었던 어머니는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여동생의 말에 손주의 행동을 이해는 하지만, 그렇다고 섭섭하지 않은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뒤늦게서야 할머니 품에 안기는 조카와 놀아주다, 잘 시간이 다가오자 작별 인사를 건넨다.


"할머니 빠빠, 이모한테도 빠빠해- 이모도 갈 거야."


할머니에게 그 자그마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던 녀석이, '이모가 간다'라는 말을 듣자마자 내 바지를 붙잡고 '아니. 아니'라는 말을 반복한다. 방학 내내 이모와 붙어있다, 요즘 만나는 시간이 줄어드니 슬그머니 이모 집착 모드가 고개를 내미는 탓이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듯한 조카의 표정과 대조되어 어머니의 표정이 굳어진다. 느낌이 좋지 않다.



PixabayPixabay



어머니를 모셔다 드리고 집으로 들어서자 벨소리가 울린다. 어머니다.



"야, 너는 언제까지 남의 애만 예뻐할 거야?"


"뭐가?"


"네가 시집가서 애를 낳아야지, 언제까지 조카만 예뻐할 거야. 나이가 찼으면 시집을 가야지."


"............."


"엄마가 틀린 말 했어? 왜 대답을 안 해?"



약간 톤이 높아진 목소리, 평소와는 다른 말투다. 웃음을 섞기는 했지만, 그 속에 공격적인 어투가 배어 있다. 결혼 잔소리를 한다고? 나한테? 약 10년의 시간 동안 나와 어머니는 함께 병원에서 먹고 자며, 울고 웃으며 지냈었다. 때론 일을 그만두고, 간병에 매달렸었다. 어머니도 나의 20대와 30대,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을 위해 보냈음을 알기에 결혼에 대한 말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넌지시 꺼내는 정도였다.


가끔,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실 때, 아버지 살아계실 때 너 결혼해야 아버지도 마음이 편하지 않겠냐는 말. 혹은 가족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마다, 나도 누군가와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말 정도. 잔소리보다는 부모로서의 소망이 담긴 말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평소와 다르다.



"혹시 지금 애기때매 섭섭해서 나한테 잔소리하는 거야?"


"당연히 섭섭하지. 섭섭하니까 이러지."



한숨을 푹 내쉰다. 응, 나도 잘 알지. 그 조그만 녀석덕분에 행복한 만큼, 섭섭함도 크다는 것을 내가 제일 잘 알지. 조카와 그 긴 시간을 함께 했기에, 나 역시도 자주 느낀 감정이다. 자식들이 어른이 되어 늙어가는 만큼, 부모들은 어린아이가 되어 간다는 말을 체감한다. 조카가 이모를 더 좋아하는 게 이모 탓은 아닌데, 조카에게 차마 섭섭함을 티 낼 수는 없으니, 그나마 제일 가까운 딸내미에게 섭섭함을 담은 잔소리를 퍼붓는 어머니의 마음도 이해는 한다. 다만 차라리 대놓고 왜 너만 좋아하느냐고 투정을 부렸으면 좋았으련만, 이런 공격은 나도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섭섭함을 인정한 어머니는 그제야 툴툴거리며 잔뜩 투정을 부리다 전화를 끊는다. 짧은 통화 한 통에 기력이 쏙 빠져나간 느낌이다. 욱-하는 성질에 어머니와 싸우지 않으려 참을 인자를 수없이 속으로 새긴 탓이다. 둘 다 예민하고 날카로운 성격이라 쉽게 부딪힌다. 자잘한 말싸움들이 가득한 여느 엄마와 딸의 관계이지만, 서로 강약조절을 하며 싸운다. 10년이란 시간동안 가장 힘든 시기를 같이 하며, 암묵적으로 그어진 선 안에서 이루어지는 다툼이다. 하지만 다툼이 아닌 일방적인 화살들이 쏘아지기도 한다. 다툼으로 이어지지 않은 채, 어떤 날은 나의 날카로움을 어머니가 포용해주고, 어떤 날은 내가 어머니의 예민함을 조용히 받아주는 날이 있다.


오늘은 내가 받아줘야 하는 날이다. 섭섭함에 격앙된 어머니의 화살이 자칫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면, 지나치게 큰 싸움으로 이어질 터였다. 만약 그 작은 분노를 누르지 않고 어머니와 싸웠다면, 조카에 대한 섭섭함이 몇 곱절로 늘어나며 둘째 딸에 대한 섭섭함으로 변모할 것이 분명하다. 하루이틀로 끝나지 않을 그 냉전을 내가 견디지 못하니, 어떻게든 참는 것이 결국 답이다.


PixabayPixabay




얼마 되지 않은 일이건만, 어머니 머릿속에는 방긋 웃는 조카의 얼굴만 가득한 모양이다. 어머니는 손주를 안고 동네를 산책했던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기분좋은 어머니의 목소리에 남아 있던 씁쓸함을 털어버린다. 맞아, 원래 할머니 많이 좋아했으니까. 뒤늦은 맞장구에도 어머니는 손주 이야기를 잔뜩 이어나간다. 이야기를 듣던 아버지도 작은 미소를 띄우며 조카 사진이 새겨진 방향제를 쓰다듬는다.


어쩔 수 없지. 아마 나는 이해하지 못할, 할머니의 손주사랑일 테니. 그저 좋으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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