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뚝-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

잘하려 노력하는 아이, 잘하려 노력하는 선생

by 연하일휘 Mar 14. 2025

"계획이 뭐예요?"


"네가 앞으로 할 일들을 미리 정해 놓는 것을 계획이라고 해."


틀린 문제를 함께 고치다 아이의 손이 멈춰 버렸다. '답사 계획서'에 대한 질문에서 '답사'의 뜻은 기억하지만, '계획'의 뜻이 잘 떠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간략하게 단어의 뜻을 알려주었어도, 아이의 연필은 계속해서 오답으로만 향한다. 계획이란 단어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걸까?


"엄마랑 네가 오늘 같이 저녁 식사를 만들기로 했어. 그러면 먼저 계획을 세워야겠지? 무엇을 만들까?"


아이는 저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나열하면서, 마트에 간다거나. 요리를 한다거나 등의 대답을 다채롭게 내놓는다. '맛있는 거'에다가 좋아하는 '엄마'가 들어갔으니, 신이 나 재잘거릴 만도 하다.


"그러면 문제! '저녁 계획'은 저녁밥 먹기 전에 세울까, 아니면 저녁밥 먹은 다음에 세울까?"


"먹기 전에요!"


"그렇지! 그러면 '답사 계획서'는 답사하기 전에 세울까, 아니면 답사한 다음에 세울까?"


"어...... 아!! 답사한 다음에요!"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만, 너무나도 당당하게 오답을 외치는 모습에 멍하니 아이의 얼굴을 바라본다. 해맑게 웃더니만, 아닌가? 맞는 거 같은데. 저 혼자 머리가 바쁘게 돌아간다. 내가 뭘 잘못 설명했나. 너무 어렵게 설명한 건가?


"그럼 다시! '저녁 계획'은 저녁밥 먹기 전에 세울까, 아니면 저녁밥 먹은 다음에 세울까?"


"에이, 당연히 먹은 다음에 세우죠."


뚝-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라 했던가. 실제로 '뚝'과 같은 소리는 아니지만, 잠시 생각의 끈이 멈추며 일순간의 정적이 뇌를 스쳐 지나간다. 장난일까. 아니면 진짜 이해를 못 하는 걸까. 아이의 표정은 오묘하다. 가끔 장난인 줄 알았건만, 정말 몰라서. 혹은 기본적인 단어를 몰라서 아예 개념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도 있었었기에, 터져 나오려던 외침을 잠깐 멈춘다.


"너 진짜 모르는 거 맞지?"


"뭐를요?"


눈치를 보는 녀석을 보아하니, 정말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다. 장난이었다면, 저 작은 얼굴에 숨길 수 없는 웃음기가 가득했을 테니 말이다. 결국 칠판에 '식사 계획서'를 함께 작성한다. 날짜, 준비물, 역할 분담 등. 그리고 몇 가지 계획서의 예를 더 들어준다. 주말 계획서를 작성할 때는, 놀러 가고 싶었던 장소들이 잔뜩 튀어나온다. 한참 계획에 대한 설명을 하고 나니, 이제야 이해가 된 걸까. 문제를 함께 풀자는 말에 당당하게 외친다.


"답사 계획서는 답사 가기 전에 세워요!"


그렇지! 드디어 튀어나온 정답에 답답하던 가슴이 뻥 뚫린다. 이후로도 줄줄이 틀렸던 '답사 계획서'에 대한 문제들을 완벽하게 고치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오고 만다. 넌 잘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아직도 쌤이 가늠을 못 하겠어. 분명 못하는 아이라기에는, 종종 고난도의 문제를 곧잘 풀어내곤 한다. 그렇다고 잘하는 아이라 칭하기에는, 가끔씩 엉뚱한 답이 튀어나온다.



Pixabay



사실 잘하는 아이는 아니다. 잘하려 노력하는 아이다. 처음 만났을 땐, 공부하기 싫다며 바닥에 드러눕기까지 했던 아이가 어느새 쑥 자라 노력이라는 단어를 제 것으로 만들었다. 아직 어린 나이라 집중하는 시간이 길지 않아, 엉뚱한 모습이 툭툭 튀어나오긴 하지만 말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얘를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한숨이 끊이지 않을 때가 있곤 한다. 특히 이 아이는 모든 학생을 통틀어 가장 크고 많은, 그리고 긴 스트레스를 주었던 학생이기에 변화한 모습이 감개무량하다. 하지만 때때로 마음 한 편에서는 내가 더 능력이 있었다면, 전문적이었다면 조금 더 많이 성장하지 않았을까. 그러한 생각에 스스로의 부족함을 탓하게 된다. 


그래, 아이만 성장하고, 아이만 잘하려 노력할 줄 아는 것은 아니지. 아이의 모습에서 노력이라는 단어를 배워간다. 나도 잘 가르치려, 잘 지도하려 노력하는 선생이 되어야지. 부족함 속에서 하나의 다짐을 되새긴다. 내일은 더 나은, 즐거운 수업이 되기를 바라며.

매거진의 이전글 노화는 네 잘못이 아니라고.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