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 아름다움을 피하지 않을게.
살구빛 털 끝에 맺힌 작은 물방울이 손등에 닿는다. 다물어진 작은 입의 어느 틈새에서 새어 나온 것인지, 침방울들이 계속해서 흘러내린다. 빨갛게 물든 귀와 맨질한 배에서 느껴지는 열감이 녀석의 아픔을 대변한다. 들릴 듯 말 듯, 배어 나오는 작은 신음소리에 조심스럽게 강아지의 몸을 쓰다듬는 일밖에 하지 못한다.
간식을 달라며 품 안으로 달려든 것이 불과 한 시간 전인데, 물려준 개껌을 제 쿠션 위에 뱉어놓고 힘없이 늘어졌다. 15살의 노견이라 종종 제멋대로인 식욕에 일희일비하지 않았지만, 아픔을 견디는 녀석의 모습에는 무너지고 만다. 작은 아픔이라도 가시기를 바라며 쓰다듬는 손길 사이마다 통증의 원인을 찾으려 조심스럽게 탐색한다. 오늘 구토도, 설사도 하지 않았다. 별다른 상처나 혹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마 다시 치주염이 재발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미 적막으로 채워진 새벽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저 해가 뜨기까지, 병원 진료시간까지 통증 속에서라도 잠시 잠을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쓰다듬는 행위뿐이다. 바로 달려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나 역시도 병원예약이 잡혀 있는 날이다. 축 처진 아가를 쓰다듬다, 토닥이다 힘없이 눈꺼풀이 잠길 무렵, 나도 짧은 잠을 청한다.
두 시간 정도의 수면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다. 지금 먹는 약들이 졸음을 유발한다 적혀 있었는데, 그 덕분에 부족한 잠이 더 몸을 끌어내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안해, 누나 금방 갔다 올게. 동물병원보다는 조금 더 일찍 연다는 핑계 하나로 강아지의 아픔보다 나의 아픔을 우선시해 버린다. 진료가 끝나고 다급히 집으로 돌아오니, 집 곳곳에 아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작은 침방울들이 누나가 오기를 기다리며 서성거린 동선을 그려낸다. 그 끝에 조용히 잠든 강아지가 있다. 아가를 품에 안고, 동물 병원으로 향한다.
주사 두 대를 맞고, 가루약을 처방받으며 강아지를 위한 캔을 함께 구입한다. 며칠간 치아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사료를 물에 불리거나, 가루를 내 먹여야 하는 까닭이다. 품에 안긴 녀석은 지친 듯, 품 안에 늘어져 있다. 8.6kg. 반년 사이 몸무게 0.5kg 정도가 줄어있다. 심장에 문제가 생겨도 체중이 감소한다던데. 작년 5월 검진에서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었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것은 어찌할 수 없나 보다.
"올해는 4월쯤에 검사하고 스케일링도 받아야 할까 봐요."
부모님 댁 강아지를 갑작스레 보낸 것도 알고 계신 병원 사모님이셨기에, 조심스럽지만 담담하게 위로를 건네신다.
"원래 우리 나이가 되면, 나이가 들면 병원에 의지하고 약 먹으면서 그렇게 버티듯이 살아. 원래 그런 거야."
많은 눈물을 터트렸던 공간이었다. 밤 10시의 늦은 시간에도, 혹은 일요일에도 강아지가 아파 연락을 드리면 기꺼이 나와 진료를 봐주시는 원장님이 계셔 긴 시간을 다닌 공간이기도 하다. 노화의 흔적들 앞에서 내쉬는 한숨마다 위로가 돌아왔었다. 이 나이에 이 정도면 정말 건강한 거라고. 노화는 네 잘못 때문이 아니라고.
1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행복했던 만큼 쌓인 후회가 가슴을 짓누른다.
"이별이 무서워서, 나는 동물은 못 키우겠어."
친구의 말이 되새겨질 때마다 아프다. 이 녀석을 보낸 뒤에는 나도 다시는 다른 생명들을 품에 안지 못할 것 같아. 대체하지도, 대체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아니까. 주사를 맞으면서도 아픈 티 하나 내지 않는 녀석이 대견해 품에 안은 채, 뺨으로 머리를 부드럽게 부빈다. 제 앞다리로 누나의 팔을 단단히 붙잡은 채, 잘 보이지 않는 눈을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핀다.
담 너머로 높게 솟은 앙상한 가지마다 꽃망울들이 맺혀있다. 며칠새 따스해진 봄기운에 한가득 생기를 품고 금세라도 터질 듯 통통하다. 팔 위로 작은 심장박동이 전해진다. 한껏 만개한 꽃의 지는 모습을 보기 싫다고 그 아름다움을 피하지 않는 것처럼. 이별 후의 아픔이 두렵다고 벌써 슬픔으로 너를 대하지는 않을게. 그때는 후회의 아픔보다도 더 큰 행복이 나에게 남았다고, 많이 울더라도 행복했다는 말을 하도록. 순간을 함께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