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보다 즐거움이 더 컸기를 바라.
짧은 다리가 쉴 새 없이 땅바닥을 박차며 앞으로 나아간다. 동네 놀이터에서 누나나 형들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조카에게 사 준 엄마, 아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제 빛을 발하는 날이다. 아직 어린 아가가 앉아서 타다가, 조금 더 크면 안장을 펼쳐 손잡이로 사용할 수 있는 킥보드다.
여동생이 병원에서 조리원으로 옮겨가는 날, 아침부터 바쁜 제부를 위해 어머니와 함께 조카를 돌보기로 했다. 키즈카페라도 가볼까. 짧은 고민을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버렸다. 종종 친구네 아기와 함께, 혹은 여동생과 조카와 함께 가 본 주말의 키즈카페는 아이들과 어른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감기에 걸리기 딱 좋다는 환절기, 혹여 감기라도 걸릴까 조금 넓은 곳으로 향한다.
오전의 탑동은 한산하다. 놀이터와 공원과는 달리 넓게 펼쳐진 공터에 조카가 멈춰 서 버린다. 조카가 앉은 킥보드를 잡고 이모가 옆에서 천천히 끌어주니 금세 흥이 난 듯,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그러다 간간히 멈춰 서는 조카의 시선은 아빠와 함께 전동 자동차를 타는 형에게 꽂혀 있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아이라서, 그래서 계속 눈길이 가는 것일까. 하지만 뒤이어 아빠와 달리기를 하는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는 뒤통수가 안쓰럽다. 어쩌면 아빠와 함께 놀고 싶었을지도 모르는, 이 작은 아이의 마음을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한 시간가량을 실컷 뛰놀더니만, 그늘에서 쉬고 있는 할머니에게 도도도 달려간다. 할머니 손을 잡고 손으로 이마트를 가리키며 '까까, 마트'라는 단어들을 반복한다. 아빠가 챙겨준 아기 가방에 있는 간식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탑동으로 오는 내내 손도 대지 않았다. 할머니 손을 꼭 잡은 채, 똘망한 눈동자로 빤히 바라보는. 그 애교에 녹아내리지 않을 할머니가 어디에 있을까. 조카를 번쩍 안아 들고선 어머니는 별다른 말도 없이 차로 향한다.
이제 막 개점시간이건만, 이마트에는 벌써 사람들이 가득하다. 어머니는 바로 유아 과자가 있는 코너로 가서는 한참을 고민한다. 평소에 잘 먹던 과자 몇 개, 그리고 가장 좋아한다는 동결건조 딸기 몇 개. 딸기를 보더니만 신이 난 조카는 손에 쥐어주는 다른 과자들은 카트 안으로 던져버리고 딸기를 품에 꼭 안는다.
천천히 둘러보며 아이 쇼핑이나 하려던 찰나, 뽀로로 음료수들이 매대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는 작은 비명을 내지른다. "뽀뽀- 뽀로-!!!!" 옆에 있던 할머니 옷자락을 쥐고 다리를 연신 흔드는 모습에 저절로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한다.
"엄마, 차라리 그 생수 사줘. 다른 건 너무 달 것 같은데."
워낙 잘 먹는 아기라서 여동생네는 간식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밥을 잘 먹고 포동포동하니 살이 오르는 것은, 금세 키로 쑥 가는 중이니 큰 걱정이 없다. 하지만 설탕이 잔뜩 든 간식들은 성장에 도움은커녕, 악영향을 미치다 보니 더욱 민감해진다. 특히 혈압과 당뇨, 그리고 심장질환이 할머니부터 아버지까지 이어진 가족력이니, 소아비만에 대해 더 신경을 쓸 수밖에.
뽀로로 모양의 투명한 생수병 하나를 쥔 조카는 이미 쥐고 있던 딸기를 뒤로 휙 던져 카트 안으로 쏙 넣어버린다. 아무 맛도 나지 않을, 그냥 물인데. 뽀로로 캐릭터를 이용해 음료수인 것 마냥 작은 거짓말을 한 것 같아 양심이 콕콕 찔려온다. 그래도 다른 간식 많이 사니까. 방긋 웃는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함께 웃음을 주고받는다.
차로 돌아온 조카는 손에 뽀로로 생수를 꼭 쥔 채, 얌전히 카시트를 매는 것까지 기다려준다. 딸칵- 소리가 나자마자 까줘-라며 이모에게 물병을 건넨다. 투명한 물이 찰랑이는 것을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입을 대고 꿀꺽, 꿀꺽- 두어 모금을 삼킨다.
"마시따."
맛있다는 단어는 또 언제 새로 배운 건지, 그 놀라움을 표하기도 전에 그저 물 한 모금이 맛있다는 조카가 귀여워 그대로 껴안아주고 말았다. 집에서 가져온 물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을 텐데. 이모와 할머니가 함께했던 시간들에서 온 즐거움에서 우러난 '맛있다'는 말인 것만 같아서. 동그란 머리통에 몇 번 뽀뽀를 해 주고는 운전을 시작한다. 혹여 흘릴까 옆자리에 앉아 노심초사하는 할머니와 달리, 조카는 계속해서 뚜껑을 열어달라 한다.
즐거움 하나만으로도 물이 맛있을 나이. 비록 엄마 아빠가 곁에 없어 속상했을지라도, 즐거운 추억들로 남았을 하루가 되기를 바라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