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랑으로 덧대어 주는 시간
장난감 하나를 손에 꼭 쥔 채, 안방으로 달려간다. 엄마 아빠의 침대를 보고 멈칫, 그 자리에 멈추어 서더니 이모 품으로 달려든다. 시무룩하니 눈가가 내려간 채, 이모의 옷자락을 잡으며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무서워. 무서워."
조카는 바깥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속삭이듯 말을 한다. 창 너머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가 무서운 것일까, 창틀을 흔드는 바람 소리가 무서운 것일까. 두 팔로 조카를 꼭 껴안은 채 눈을 마주친다.
"깜깜이 무서워?"
"응."
"밖에서 소리가 나네. 무슨 소리일까? 자동차가 부릉부릉 하는 걸까. 오토바이가 두두두두 하는 걸까. 쿠우(비행기)가 쿠우우우 하며 날아가나?"
조카가 좋아하는 단어들을 의성어와 섞어가며 계속 말을 걸어준다. 이젠 꽤 또랑또랑한 발음으로 이모의 말을 따라 한다.
"아니면 통통배가 뿌우우우-소리를 내나?"
"배? 배? 뿌우?"
고개를 갸웃거리며 배시시 웃음을 짓는다. 가까운 곳에 부두가 있어 엄마, 아빠와 혹은 이모와 드라이브를 하면서 보았던 큰 배들을 떠올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는 단어들과 몸동작을 통해 배를 봤던 이야기들을 꺼낸다.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쳐 주는 사이, 시무룩하던 눈매에 다시 웃음기가 배어든다.
곧 잠이 들 시간이다. 조리원에 있는 엄마와 둘째를 보러 아빠가 잠시 외출을 하며 이모와 할머니가 이 작은 것을 돌봐주는 시간. 거실에 있는 작은 등을 켜고 큰 불을 끄고 나면, 조카는 늘 무섭다며 이모 품으로 안겨든다. 엄마와 아빠가 없는 어둠이 많이 무서운 걸까. 저 혼자 외로움과 두려움을 품고 있을 조카가 안쓰러워 안고 있는 두 팔에 더 힘을 주게 된다.
"바다 무서워. 바다 무서워."
"이모랑 바다 봤을 때 무서웠어?"
"무서워."
주말에 어머니와 함께 탑동으로 놀러 갔을 적, 조카를 품에 안고 방파제 너머의 바다를 보여준 일이 있었다. 푸른빛이 넘실거리며 넓게 펼쳐진 모습이 가까이에 다가오자, 이모를 잡은 두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바다가 무서워? 다시 공원으로 향하며 건넨 질문에 아이는 '무서워'라는 단어를 처음 익혔다. 너에게 '무서워'라는 단어는 '두렵다'는 뜻일까. 혹은 '낯설다'는 뜻일까. 이후로 조카는 간간이 '무서워'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엄마와 아빠가 없는 저녁이면, 품에 안기며 가장 많이 하는 단어가 되었다.
조카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도 안방으로 달려갔었다. 만삭이 되며 몸이 아프기 시작한 엄마는 이모가 올 때면 침대에 누워 쉬곤 했었다. 조카는 이모와 놀다가도 엄마 얼굴을 보고, 엄마에게 뽀뽀 한 번을 해 주기 위해 작은 발소리를 내며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엄마가 동생을 낳기 위해 집을 비운 요즘에도, 습관처럼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다시 되돌아 나오는 행동들을 반복한다. 작은 서글픔이 눈에 서려있다. 그럼에도 엄마를 찾으며 울지 않는, 그 의젓함이 안쓰럽다.
아빠가 출근을 할 때면, 터진 울음을 쉽게 그치지 않는 아이였다. 이모까지 찾아와 안아 들고 달래주어야만 삐죽거리며 눈물을 멈추던 녀석이, 엄마를 보러 간다는 아빠에게 작은 손을 흔들며 인사도 해준다. '엄마, 아기, 삐뽀삐뽀.' 아빠의 외출이면 이 세 단어를 자주 입에 담는다. 엄마가 아파서 삐뽀삐뽀(병원)에 갔다고. 엄마는 아기와 함께 있다고. 단어들의 나열로 서툰 문장을 만들어낸다.
며칠새 쑥 커버렸다. 커버렸다는 단어 이상으로, 의젓해져 버렸다. 너의 성장은, 아니 변화는 무엇에서 우러난 것일까.
동생이 태어나며 저가 오빠가 된 것을 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린이집에서 '형아 반'이 되면서 자기보다 어린 동생이 있다는 것을 자랑스레 이야기하곤 한다. 엄마와 영상통화를 할 때면, '아기 안아'라는 단어를 자주 내뱉는다. 아기를 꼭 안아주어야 함을 알고 있다는 듯이, 질투보다는 아기를 안아주라는 말을 많이 하는 조카다.
혹은 아픈 엄마를 기다리는 의젓함일 수도 있다. 병원에 간 엄마가 아프지 않을 때까지,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제 엄마와 아빠가 슬프지 않도록, 씩씩하게 견디는 것일지도 모른다. 엄마의 아픔을 이해하는 이 작은 것의 마음을 추측할 때마다, 시큰거리는 콧잔등에 조카를 더 품 안 가득히 안아주고 만다.
무섭다며 품에 안아 든 조카를 토닥이며 대화를 나눈다. 지금쯤이면, 엄마와 함께 침대에 누워 소곤거리며 대화를 나눌 시간이다. 그제야 눈치를 챈다. 의젓하게 기다리고 견디던 조카가, 잠이 들어야 할 시간에 엄마와 아빠 둘 다 없다는 사실이 두려웠던 것임을, 그제야 깨닫는다. 엄마나 아빠가 곁에 있어야만 잠이 드는 조카는 잠이 들 시간이 되어서야 엄마와 아빠를 찾는다. 그리고 '무서워'라는 말로 엄마 아빠가 없다는 외로움과 두려움을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조금 늦게 도착한 아빠의 표정은 미안함이 가득하다. 비명을 지르며 아빠가 온 것에 반가움을 표하던 조카는 아빠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옷자락을 두 손으로 꽉 쥐고 있다. 아빠의 팔이 헐거워질 때면, 잔뜩 울상을 지으며 '아니'라는 단어를 반복하는 그 모습에서 조카의 감정을 전해받는다.
"제부, 애기가 잠들 시간인데 엄마아빠 없으니까 불안했나 봐."
제부의 눈에 안쓰러움이 배어든다. 미안해, 아빠가 앞으로 더 빨리 올게- 아빠의 사과를 받아주는 것마냥, 조카는 아빠의 품에 얼굴을 부빈다. 의젓함 속에 자리 잡은 작은 불안감에 아빠의 눈시울도 붉어진다. 아이를 안은 두 팔에 힘이 들어간다.
눈에 밟히는 첫째 덕분에 조기 퇴소를 고민한다. 사진을 전해받는 여동생은 며칠새 쑥 커버린 아이의 모습에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표한다. 떨어져 있는 동안, 더 애틋해져 가는 부모자식 간의 애정을 잠시동안 덧대어주는 시간. 엄마 금방 온대. 비록 엄마, 아빠만큼은 아닐지라도 이모의 사랑이 불안감을 덮어주기를 바라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