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랑거리며 넘기는 손길은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다. 시 한 편, 한 편을 눈으로 가볍게 훑어내려 가다 몇몇 시를 표시하고선 조금 시간을 들여 읽어 내려간다. 머릿속에 떠올렸던 큰 줄기를 생각하며 선택한 시를 필사하고 각 연마다 떠오르는 키워드들을 나열한다. 생각에 푹 빠져드는 시간이다. 시의 주제와 어울릴 때도 있지만, 그저 시의 분위기만을 끌어 오기도 하면서 나름대로의 글의 맥락이 잡혀간다. 이제 나열된 키워드들로 글의 구조를 짜 내려가면 되는데, 손이 멈춰버린다. 쓰고 싶지만 쓰기 싫은 글을 마주한 탓이다.
할머니. 단어를 내뱉을 때마다 아련하다. 미간을 찌푸리며 화를 내던 표정도, 나를 잔뜩 놀리고선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터트리던 웃음도, 누워있던 그 옆모습도. 장면들마다 여러 감정들이 뒤섞이며 올라온다. 약 30년 정도의 기간 동안 서로 데면데면하였다면, 고작 2년 남짓한 시간이 우리를 가깝게 만들어 주었다. 울고 웃고 화내던 시간들이 긴 시간을 뒤덮을 만큼 밀도가 높았기 때문이리라.
할머니와 함께 지내던 며느리, 나에게는 그 친척이 불편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를 싫어했기에 마주할 때마다 날카로운 말들이 상처를 남겼다. 나는 할머니를 보러 가는 것을 힘겨워했다. 자연스럽게 나와 할머니는 가끔 얼굴을 비추는, 나쁘지는 않지만 그다지 애틋하지 않은 조손 관계가 길게 유지되었다.
그 며느리의 독립, 그리고 할머니의 병환. 혼자 남은 할머니가 병원을 전전하며 어머니가 그 곁을 지켰다. 시작은 별거 아니었다. 그저 어머니 혼자 고생하기에, 작은 도움을 건네려 했었을 뿐인데. 어느샌가 주 간병인이 내가 되어 있었다. 병원에서의 시간들은 힘겨웠다. 혼자서 모든 것을 견뎌내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벅찼다. 하지만 그 시간들 사이마다, 처음으로 할머니와 손녀 사이에 작은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작은 감정을 소중히 여길 시간도 없이, 철없는 손녀의 투정과 짜증들을 마지막으로 할머니가 떠나갔다.
후회를 적어 내려가는 것이 힘들다. 힘들었던, 혹은 즐거웠던 시간들을 엮어나가는 것은 분명 즐거웠건만. 이별이라는 단어를 가리는 후회라는 감정이 손을 멈추게 만든다. 몇 년의 시간이 흘렀기에 괜찮을 줄 알았건만, 그 장면을 떠올리고 손을 움직일 때마다 울음이 터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걸까. 그럼에도 이별을 써 내려간다. 이기적이었던 나의 모습을 탓하면서도, 고마운 마음을 담아 잊지 않기 위함이다.
할머니와의 시간 이후로, 가족들 사이에 존재했던 원망과 같은 감정들이 변모한다.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전우애로 승화한다. 갑작스러운 이별은 아버지와의 끈을 붙들게 만들었다. 4번의 큰 뇌졸중을 견딘 아버지의 아픔은 이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그렇게 '가족'이라는 단어를 쌓아나가기 시작했다. 할머니와의 시간이 있었고, 아픔이 있었기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할머니의 사랑이 앞으로 나아가도록 등을 밀어준다.
묘제가 있던 날, 제부와 함께 조카를 안고 할머니가 잠든 묘소 앞을 찾았다.
"여기 왕할머니가 코- 자고 있어. 인사할까?"
조카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이의 눈에는 까만 비석일 뿐일 텐데. 그럼에도 꾸벅, 인사를 하는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나도, 제부도 눈시울을 붉힌다. 할머니 계셨으면 정말 좋아하셨을 텐데요. 짧은 시간이지만 손주사위로서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제부도 함께 할머니를 추억한다.
쓰기 싫지만, 그럼에도 써 내려간다. 더 색이 바래지기 전에, 할머니의 흔적을 남긴다. 화마에 휩싸인 불길에 사라진 사진들이 아쉽다. 얼마 남지 않은 흔적들을 통해 할머니를 추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