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사랑니는 꽤 닮은 꼴이네.
까만 화면에 부스스한 머리칼의 내 얼굴이 비친다. 버튼을 눌러봐도 묵묵부답인 핸드폰의 하단이 허전하다. 갈 곳을 잃은 충전 케이블이 저 혼자 바닥에 늘어져 있다. 그제야 케이블을 연결해 주고, 충전 중 표시가 뜬 것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래된 폰이라서 그런 걸까, 유독 방전된 이후에는 충전이 느리다. 나도 방전되었나 보다. 자고 일어난 이후에도 무거운 몸은 움직임을 더디게 만든다. 아마 깊은 수면을 방해하는 통증들이 원인일 테다.
묵직하게 아랫배를 짓누르는 생리통과 욱신거리는 치통이 잠기운을 몰아낸다. 하루쯤 참았으니, 행동을 옮겨야만 하는 날이다. 천천히 올라오는 짜증스러운 감각들에 머리카락을 한차례 헝클어트리고선 자리에서 일어난다. 단순히 피로와 생리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지며 잇몸이 부은 것이라면, 통증이 이리 오래갈 리가 없다. 한동안 지겹게 다니다 해방을 외친 것이 얼마 되지 않았기에 가야만 하지만, 더 가고 싶지 않은 병원이다.
"염증이 생겼네, 사랑니도 흔들리겠고. 아-해보세요."
부은 잇몸 부근의 치아를 툭툭 건들던 선생님의 결론이 명쾌하다. 사랑니 뽑읍시다. 내일 와서 뽑아요. 결국 사랑니 발치 판정을 받고 말았다. 뿌리 쪽에 염증이 생겼다. 요 녀석은 처음 났을 때, "예쁘게 나고 있으니 굳이 안 뽑아도 돼요."라는 말을 듣고 꽤 기뻐했었는데. 뒤늦은 말썽을 부린다.
순탄한 사랑니가 없다. 수능 준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던 시절 나기 시작한 아래 사랑니 두 개는 인접한 어금니를 깨버렸다. 스무 살이 되면 아르바이트하며 병원 다니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결국 양쪽 어금니 하나씩을 잃게 되는 결말을 맞이했다. 다행스럽게도 적당한 각도로 제 존재를 드러내는 녀석들은 어금니 역할을 대신해 주는, 병 주고 약 주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번에는 순탄한가 싶더니만, 결국 말썽을 부리며 떠나가는 사랑니다. 사랑을 시작할 때쯤 나기 시작한다더니만, 30살이 넘어서야 얼굴을 빼꼼 내민 녀석이 당혹스러웠다. 사랑을 배울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 똑같긴 똑같다. 괜찮다 싶다가도 종종 말썽을 부리는, 그러다가도 안정감이 생기는. 아픔을 동반하는. 사랑이란 녀석이랑 사랑니가 닮은 꼴이다.
"많이 아프겠죠...?"
"사람마다 다른데.... 매복이 아니라서 그래도 좀 괜찮으실 거예요."
얼음팩을 뺨에 대고 퉁퉁 부은 채 수업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아찔하다. 받아온 약을 툭 던져놓고는 이불 위로 몸을 던진다. 병원 한 번 다녀온 것인데, 방전된 몸의 충전이 필요하다. 강아지가 뺨에 제 얼굴을 부빈다. 부드러운 털 너머로 닿는 애교 섞인 움직임조차 통증을 더해간다.
요 작은 이빨 하나의 존재감이 어마어마하다. 평소라면 매달마다 찾아오는 생리라는 녀석의 물리적, 심리적 고통들을 줄일 방법만 찾으면 되었는데 오늘은 쉽지가 않다. 서로 다른 통증들이 더해지며 부정적인 시너지를 일으킨다. 몸의 통증이 감정을 요동치게 만든다. 사랑니, 그리고 사랑. 사랑이라는 녀석도 그러더라. 작은 상처 하나가 일상을 뒤흔들곤 한다. 그러다 별거 아닌 것들에도 눈물을 끌어내버린다. 아직 꼭꼭 숨어있는, 마지막 남은 사랑니의 존재가 두렵다. 오지 않은 미래에 지레 겁을 먹게 된다. 괜찮을 줄 알았지만, 결국 아픔과 함께 작별하게 되는 요 녀석과도 같을까 봐.
그래도 아픔을 준 뒤에도 제 역할을 해 주는 사랑니와 비슷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는다. 아픔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작별의 통증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마지막 작별이었기를, 그리고 마지막 작별이기를 바라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