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할 때 누릴 수 있는 것

- 황선미, 『칠성이』를 읽고

by 여노

눈 앞에 놓인 영광의 길은 거친 폭풍을 지나고서야 밟을 수 있다. 폭풍 속 고난을 견디지 못하면 영광은 빛을 잃고 몰락과 패배의 길만이 남는다. 가늠할 수 없는 폭풍이 잠잠해질 때까지 자신을 단련시켜야만 영광은 그의 빛을 널리 내뿜는다. 때론 거친 바람 탓에 두려움에 갇히더라도, 때론 멈출 때를 몰라 외딴 섬에 머물지라도, 빛은 어둠이 있어야만 제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


보살핌을 벗어나 축축한 그림자가 드리운 도축장에서 칡소는 어둠만을 맛보았다. 그는 이름도 없이, 죽음의 공포에 저항하며 생을 갈구했다. 황 영감은 성난 소가 쉭쉭 내뿜는 생의 의지를 느꼈다. 다행히 칡소는 이름을 얻었고, 산 채로 도축장을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름의 대가는 녹록지 않았다. 싸움소로 거듭난 칠성이는 싸움소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코뚜레와 뿔 교정기는 황 영감의 따스한 손길과 달랐다. 소는 가축. 그의 삶을 선택할 최소한의 의지조차 허락되지 않는, 인간에 의해 길들여진 짐승. 처음부터 칠성이에게 소의 삶은 없었다. 고기가 되느냐, 싸움소가 되느냐, 죽은 채 이용되느냐, 산 채 이용되느냐만이 있었을 뿐. 제 앞에 놓인 운명의 길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칠성이는 영감의 너그러운 눈길에 젖어들었다. 칠성이는 황 영감이 말대로, 천수를 누리길 빌었을 것이고, 자신이 정말 황 영감이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황 영감의 극진한 보살핌 덕분에 칠성이는 기세등등하게 첫 출전했다. 그러나 칠성이는 넘치는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태백산의 숨통을 끊어버렸다. 계류장에서 마주친 천하를 보고 흥분했기 때문이다. 칠성이는 천하의 압도적인 힘에서 도축장의 두려움을 다시 느꼈고, 왠지 모를 분노에 휩싸였다. 황 영감은 범소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뜻하지 않게 벌어진 앙갚음에 고통스러워했다. 황 영감에게 범소는 자식 같은 존재. 범소의 죽음으로 받은 상처를 칠성이로 달랬건만 칠성이는 그 상처에 소금을 들이붓고 말았다. 칠성이는 멈추어야 할 때를 몰랐던 것이다. 영광의 길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멈추어야 할 때를 알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조차 잊고 두려움과 공포에 휘둘리기 때문이다. 칠성이에게 어린 시절 죽음의 공포는 빼낼 수 없는 가슴 속 유리조각과 같았다. 움직일수록, 애쓸수록, 유리조각은 가슴 깊숙이 파고들 뿐이었다. 황 영감은 이를 알았기에 칠성이가 미우면서도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결국 황 영감은 실의를 거두고 칠성이를 산에서 특수훈련 시켰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칠성이는 자신의 한계이자 기회와 직면하게 되었다. 천하를 꺾으면 칠성이는 더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승자가 된다. 노련한 천하에게 칠성이는 만만한 상대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칠성이는 자신을 믿어주는 황 영감의 손길이 좋았고, 도축장의 두려움에서 외려 삶의 강렬함를 느꼈다. 두려움은 멈추어야 할 때를 잊어 흔들리게 만들지만, 도전을 뛰어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칠성이는 자신에게 천수를 누리게 해주겠다던, 자신을 자식이라던 황 영감을 사랑했고, 그의 사랑에 보답하고 싶었을 것이다. 칠성이가 다칠까봐 전전긍긍하면서도, 싸움터로 내모는 황 영감의 마음을, 칠성이는 알았다. 그래서 보란 듯이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여 황 영감의 걱정도 덜어주고 싶었다. 결국 천하가 무릎을 꿇었다. 단단한 한계가 허물어졌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다고 여겼던 벽이라 할지라도, 나를 지지해주는 이와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얼마든 뛰어넘을 수 있다. 영리하고 우직한 덩치, 칠성이처럼.


진정한 승리에는 정당한 영광이 따른다. 고난을 견딘 도전 끝에 성장한다면 영광의 길에 도달할 것이다. 두려움에 패배하여 도전의 기회를 놓친다면 결코 자신의 삶을 기회로 바꿀 수 없다. 이때 절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멈추어야 할 때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적당한 때를 모르면 아무리 좋은 기회마저 몰락으로 뒤바뀌고 만다. 그리고 자신을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의 진심을 알아야 한다. 혼자만의 힘으로 승리하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한 걸음 한 걸음 진심을 다 한다면, 어느 덧 영광의 길목에 걸린 태양을 마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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