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프카디오는 사람이 아니다

- 쉘 실버스타인, 『총을 거꾸로 쏜 사자 라프카디오』를 읽고

by 여노

평화롭던 정글 하늘은 총성 한 발에 무참히 찢어졌다. 사자들은 혼비백산하며 뿔뿔이 흩어졌다. 사자들이 흩어질수록 총성은 집결되었다. 그속에 어리둥절 주변만 둘러보던 어린 사자가 있었다. ‘으르렁’이나 ‘크흥’같은, 그렇고 그런 이름을 지닌 어린 사자. 사냥꾼의 방심이 아니었다면 양탄자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어린 사자. 어린 사자는 총을 집어들고 무리로 돌아왔다. 무엇인지 모르나 달콤한 향을 품은 듯한 ‘마시멜로’란 단어를 품은 채 어린 사자는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이제 ‘으르렁’이나 ‘크흥’이 아니라, 작은 영웅이 되었다. 늙은 사자의 사자답게 살아야 한다는 말은 영웅에게 어울리지 않는 사소한 잔소리였다. 어린 사자의 맞사격 덕분에 사자들은 안전하게 생존했고, 게을러졌다. 어린 사자에게 총은 문명 세계로 가는 첫걸음이었다. 총은 그 자체로 폭력적 문명을 뜻했지만 어린 사자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서커스 단장의 방문으로 시작된 도시의 삶이 마시멜로처럼(비록 그것이 무엇인지 그때도 몰랐지만) 그저 달콤하고 또 달콤할 거라 믿었다. 총이 그에게 작은 영웅의 자리를 선사했듯, 더욱 황홀한 장소로 데려다 줄 것이라고. 이렇게 어린 사자는 야생에 작별을 고하고 문명에 발을 들였다.


위대한 명사수, 라프카디오의 삶에 막이 올랐다. 사람들은 인간보다 더욱 훌륭한 라프카디오의 사격 솜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라프카디오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그럴수록 사자와 멀어졌다. 처음엔 서툴러서 “으르렁” 한 마디로 소통했으나 인기가 높아질수록 인간 흉내는 능숙해진 것이다. 그는 말끔하게 이발하고 양복을 항상 차려 입었고, 네 발과 이빨, 꼬리로 동시에 여섯 번 싸인하다가 더욱 ‘인간답게’ 보이도록 오른쪽 손(발)만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세계 곳곳 여행을 떠났고, 수많은 취미생활을 즐겼다. 드높은 명성과 명성만큼 높게 쌓인 부 그리고 끊이지 않는 칭송. 야생을 버리고 교양과 문화를 택한 대가였다. 하지만 라프카디오는 행복에 빠져서 나날을 보낼 수 없었다. 갑자기 공허함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왜 울어야만 했을까. 라프카디오는 사자를 사자답게 만드는 “으르렁”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그리고 꼬리를 감추고 감추어 사자의 모습을 지웠으나 결국 인간이 되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라프카디오는 신기한 사자일 뿐었고, 단장에겐 부와 명예를 안겨주는 수단에 불과했다. 라프카디오, 오직 그를 위한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불안과 공허가 그를 엄습했다. 발끝에서부터 물음표가 피어올랐다. “나는 누구인가?”


라프카디오는 단장의 권유로 사냥을 떠났으나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갈 길을 잃은 자기 자신이었다. 덮어두고 모른 체 했던 자아정체성 문제를 직면했던 것이다. 라프카디오는 조금 더 즐거운 일을 찾으면 다시 행복해질 것이라 믿었다. 엘리베이터와 마시멜로가 그를 기쁘게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사실 엘리베이터와 마시멜로우는 사자에게 필요 없는 것으로, 편리함과 달콤한을 추구하는 인간 탐욕의 산물이다. 사자는 네 발로 걷거나 달리고 불필요한 식사를 하지 않는다. 따라서 라프카디오가 아무리 인간 문명을 즐기더라도, 완벽한 인간이 될 수 없었다. 그는 태생적으로 정글에 속했던, 야생의 본능에 따랐던 사자. 남다른 호기심과 추진력은 어린 사자가 라프카디오가 되도록 했으나, 사자가 인간이 되도록 만들 순 없었다. 결국 라프카디오는 사자와 인간 사이에서 큰 혼란에 빠져 헤매고 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어쩌면 정글을 떠나기로 결심한 그 순간부터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그는 어린 사자였다. 죽음의 생생함을 몰랐기에 가질 수 있었던 막연한 호기심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순 없다. 성장하는 과정이라면 누구나 그런 호기심은 가질 법하기 때문이다. 달리 보면 잘못된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도 할 수 있다. 총을 쥐었기에 무리는 한동안 안전했고, 도시로 떠났기에 새로운 경험을 했다. 비록 자신이 누구인가란 자아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해 혼란에 빠졌으나, 정글의 삶이 도시에서 그를 특별하게 만들어주었 듯, 도시의 삶도 그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다. 따라서 라프카디오는 영원히 헤매진 않을 것이다.


자아정체성에 혼란이 찾아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세상은 언제나 변하고, ‘나’도 늘 변하기 때문에 모든 변화를 의연하게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도 결코 잊어선 안되는 것이 있다. 바로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다. 나의 역할, 나의 위치, 나의 의미를 모르면 휘몰아치는 바람에 금방 촛불처럼 꺼지고 만다.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면 혼란이 찾아와도 중심을 잃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 <총을 거꾸로 쏜 사자 라프카디오>의 주인공 라프카디오는 이 중심을 바로 잡지 못해 혼란에 빠져 결국 떠나고 말았다. 만약 라프카디오가 인간과 사자의 역할을 모두 거부하고 부정적인 감정에 빠진다면, 그는 쇠퇴할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라프카디오는 어린 사자일 때부터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독자적인 길을 만들어왔다. 그리하여 어린 사자는 작은 영웅이, 작은 영웅은 라프카디오가 된 것이다. 오히려 커다란 벽처럼 다가온 혼란은 라프카디오를 더욱 성장시켜 새로운 이름으로 탄생할지 모른다. 자아정체성의 혼란은 ‘나’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하지만 ‘나’에 의해 확립된다. 스스로 중심을 바로 잡고 다듬는 일만이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길을 걸어가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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