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과 함께 자라는 인간

-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고

by 여노

몸이 자라듯 마음도 자란다. 우리는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 끊임없이 성장한다. 성장이란 좁은 틀에서 벗어나 넓은 세상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틀이 깨지면서 진통을 겪고, 넓은 세상의 강렬한 빛을 보면서 고통에 눈이 먼다. 이때 자신을 지키며 혼란과 위험을 이겨낸다면 내적 성장을 이룰 수 있다. 협소한 마당이 광활한 대지와 바다로 변모하는 것이다. 위험을 무릅쓴 모험 속에서, 허크는 어느덧 무럭무럭 자라있었다.


허크는 위험을 재미로 받아들이는, 모험을 즐기는 소년이다. 안전한 삶보다 갱단에 참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고, 엄격한 규율을 온몸으로 거부한다. 그는 세상의 질서를 어지럽히려는 악동인 셈이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어지럽히기 전에 이미 그의 세상은 어지러웠다. 유일한 가족은 울타리가 되어주긴 커녕 허크를 궁지로 몰고가고 있었다. 한 마디로 허크는 무방비하게 위험에 노출된 것이다. 이런 허크를 보고 어른의 역할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허크에겐 오히려 숨통을 조이는 듯 했고, 사람들의 노력은 혈육이란 굴레를 끊지 못했다. 아버지의 학대에 지친 허크는 기지를 발휘하여 자신의 죽음을 위장하고, 새롭게 태어났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꿈꾸는 흑인 노예 짐을 만나게 되었다. 짐은 뉴올리언스에 팔려갈까봐 몰래 도망쳐나왔다. 이런 짐을 보고 허크는 당황했다. 당시 흑인 노예는 소유물이자 재산이므로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옳은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가출한 가축 또는 잃어버린 지갑과 다를 바 없었다. 허크는 마을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으므로, “옳은 행동”은 잠시 미뤄두기로 하고 짐과 함께 모험한다.


하지만 짐과 소통할수록 허크는 혼란에 빠졌다. 사람들은 흑인이 열등하고 미숙하며, 동물과 같다고 했으나 가까이서 바라본 짐은 어딘가 달랐기 때문이다. 허크가 짐을 한낱 흑인 노예로 볼 때, 짐은 어른의 눈으로 허크를 돌보았다. 짐은 보통 사람들처럼, 더욱 정확히는 ‘백인처럼’ 가족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이를 진심으로 살피며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이었다. 사회는 도망친 흑인 노예는 잃어버린 물건이므로 주인에게 돌려주는 행동이 도덕적이라고 했으나, 허크는 짐에게 사랑과 연민을 느끼고 말았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고민에 빠졌다. 흑인 노예를 돌려주지 않으면 노예제 폐지론자라 비난받을 것이나 돌려주자니 마음이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성장통이었다. 허크는 관습적 규약과 연민 사이에서, 천국으로 가는 길과 지옥으로 가는 길 사이에서 선택해야만 했다. 그의 머리는 짐을 돌려주라했으나 그의 가슴은 짐을 자유롭게 하고 싶었다. 결국 허크는 내면의 소리에 따라 지옥으로 가겠다 결심한다. 흑인 노예인 짐이 백인과 같은 인간이라는 깨달음은 허크의 좁은 세계를 산산히 부쉈다. 덕분에 허크는 편견이었던 사회 통념을 벗어나 더 넓은 세계를 보게 되었다.


허크가 깨달음을 얻고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타인과 진정으로 소통했기 때문이다. 허크와 짐이 소통했던 강은 관습과 규율에서 벗어난 공간으로, 법이 닿지 않는 만큼 위험도 가득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위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웠다. 미시시피 강 위의 뗏목은 도덕의 탈을 쓴 부당함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그래서 허크와 짐은 서로를 민낯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자유를 갈망했으나, 자유를 탐한다는 사실 하나로 이어진 관계였다. 허크는 학대 또는 엄격한 보살핌을 거부하며 자유롭고자 했고, 짐은 한낱 사물이 아닌 인간이 되어 자유를 누리고자 했다.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고자 했던 마음이 일치했다. 허크와 짐은 사회 속에 들어갈 수 없었던, 변두리에 머문 인물들이다. 그들이 기존의 터전을 떠나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변두리를 전전했을지 모른다. 허크와 짐은 이 아픔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진정한 친구가 되었다. 흑인 노예와 백인 소년이 친구가 된다는 설정은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다. 이 설정은 작가인 마크 트웨인이 독자가 허크의 눈을 통해 이 통념의 부당함을 인식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적 통념에 맞도록 흑인을 미숙하게 묘사하되, 허크와 짐을 친구관계로 이어주면서 동시에 사회 깊숙이 스며든 노예제가 비인간적 차별임을 폭로했다.


언제든 위험이 찾아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네 삶은 모험 그 자체다. 우리는 모험 속에서 성장하고, 타인과 소통하며 인격적 성숙에 도달한다. 이때 진정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가장 귀기울여야 하는 것은 외부 사회가 아닌, 내면의 목소리다. 올바름이 무엇인지 의문을 갖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자신의 마음이 일러주는 목소리를 받아들여야만 가치관의 충돌에 휘말리지 않는다. 허크가 마음이 가는대로 짐을 대한 것은 당시 통념이 놓친 인간성에 대한 고찰이자 진정한 올바름을 향한 발걸음이었다. 이처럼 우리가 깨달음을 받아들여 내적 성장을 이룰 때 사회도 함께 성장한다. 모험을 통해 성장할 때 우리는 더욱 인간다운 자신을 발견하는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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