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정생,『몽실 언니』를 읽고
인간의 손이 빚어낸 전쟁과 가난은 모든 이에게 잊을 수 없는 생채기를 남긴다. 전쟁의 생생한 현장에 있는 이는 전우와 적의 죽음을 목격하고, 전쟁의 변두리에서 생을 이어가는 이는 언제 죽음이 다가올지 알 수 없어 늘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전쟁은 별 볼 것 없는 삶마저 통채로 앗아간다. 가난했던 이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목숨을 겨우 유지하는 것만이 일생 최대의 희망이 된다. 이런 삭막함 속에서도 가슴에 따뜻한 사랑을 간직하는 사람이 있다. 몽실이는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상처난 시대를 어루만진다.
몽실은 가난으로 얼룩진 삶을 묵묵히 견딘다. 하지만 모두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몽실의 어머니인 밀양댁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정씨 몰래 김씨에게 새시집을 든다. 김씨가 몽실이를 반길 리 없었고, 사실을 안 정씨가 나타나자 몽실이를 내던져 버리기까지 한다. 몽실은 배고픔을 면하고 싶었을 뿐이지만 되려 절름발이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몽실은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몽실에겐 가난도 장애도, 모두가 ‘팔자’다. 절름발이는 단순한 장애가 아니라, 시대의 아픔이자 평생 숨길수 없는 고통이다. 정씨가 나타나지 않아 김씨를 자극하지 않았더라면, 아니 어머니가 새시집을 가지 않았더라면 따위의 가정은 무의미하다. 몽실이는 제 어머니인 밀양댁의 삶이 어떤지 알고 있었다. 굶주림은 견디기 어려웠고, 굶주림만큼 아버지의 폭력 또한 견디기 어려웠다. 인간이라면 이를 피하기 위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몽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새로운 가정을 선택한 어머니가 아니라 그런 어머니를 손가락질하며 욕하는 사람들이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남성은 전쟁터로 끌려갔고, 여성은 먹고 사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다. 당시 여성에게 허락된 기회가 거의 없었던 데다 전쟁으로 인해 상황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남은 여성들은 남성에게 의존해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의존했기 때문에, 수많은 멸시와 혐오를 온몸으로 견뎌야만 했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들이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몽실은 달랐다. 몽실의 가슴 깊숙이 강인한 생명력이 그를 움직이고 있었고, 그만큼 몽실이는 생의 강렬함을 알았다. 그래서 북촌댁도, 금년이 아줌마도, 안쓰러운 우리네 가족이었다. 그러나 사회는 냉정했다. 전쟁은 따뜻한 정을 식혔고, 사람들은 살기 어린 눈빛으로 약자를 내몰았다. 비참할수록 약자에 대한 폭력은 더욱 살벌해지기 마련이다. 살기 위해 다른 선택을 했으나 그로 인해 핍박받는다면, 그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으리라. 그래서 몽실은 시집가지 않겠다며 단호히 마음먹었다.
몽실은 자기의 길을 자기가 알아서 간다.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는 사람들의 선긋기에 가담하지 않는다. 그는 한 민족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이 비극 속에서도, 누구든 악한 이로 규정하지 않고 그 속에 숨은 착한 마음을 들여다본다. 몽실은 아버지인 정씨가 국군임에도 인민군을 적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의 순수한 삶을 지켜주고자 했던 몇몇 인민군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사랑을 느낀다. “짐승 같은 사람들이 일으켜 놓은 전쟁” 속에서도, 인간은 짐승이 아니라 인간임을 몽실은 알았다. 인간은 모두가 존귀하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인간의 생명을 함부로 끊을 수 없고, 끊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몽실은 이 마음 하나로 난남이도, 영순이도, 영득이도 모두 등에 업고, 이름 모를 검둥이 갓난아기도 제 가슴에 품었다. 생명의 소중함과 타인의 고통을 끌어안는, 절름발이의 사랑이다. 죽음을 가까이서 보았기에 절절히 느꼈던 생명의 강인함이다. 어려움에 부딪힐수록 더욱 강하게 일어서서 견뎌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몽실은 절름발이로 살아가며 사람들이 아픔을 서로 보듬도록 이어주는 고귀한 존재로 거듭난다.
사랑으로 모든 걸 짊어지고 묵묵히 세상을 걸어간 절름발이. 단 한 번도 맘놓고 지내본 적 없는 삶이라면 원망을 제 곁에 두기 쉽지만 몽실이는 사랑을 가까이한다. 스스로 희생과 헌신을 선택하여 시대적 아픔 속에서 잃었던 인간다움을 지켜낸 것이다. 몽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어난 모든 일을 팔자로 받아들이며 부지런히 세상을 걸어갔다. 몽실이 살았던 때는, 몽실과 같은 사람이 잃었던 빛을 붙잡을 수 있었다. 달라진 지금, 우리는 몽실이 남긴 족적을 따라 잃었던 인간의 따스함을 되찾되 우리만의 방식으로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절름발이가 되어 서로를 보듬는다면 인간에 대한 사랑이 제 자리를 굳건히 지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