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독서력의 비결: 요행은 없다.

김수미, 『성적 초격자를 만드는 독서력 수업』을 읽고

by 여노

저자는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책을 썼다. <성적 초격차를 만드는 독서력 수업>은 흥미를 이끌어 동기부여하고, 발달단계에 맞는 학습법과 지도가 중요함을 강조하면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대안을 보여주는 책이다. 그래서인지 독자의 의구심을 유발하는 구석도 있다. “7세에 한글을 익혀도 충분하다”거나 “음독이 중요하다”와 같은 조언이 그럴 것이다. 이 조언은 모두 참말이다. 나는 저자만큼 길지는 않지만, 십수 년은 학원가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발음과 맞춤법의 상관관계를 지적하는 부분은 내가 영업비밀처럼 말하곤 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나는 아이들에게 소리내어 글을 읽도록 하고, 아이들이 의미 단위로 글을 끊어서 읽는지, 발음은 정확한지 점검하면서 파악하곤 했다. 모국어 습득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도 맞는 말이다. 언어는 사고를 표현하는 수단이므로 모국어로 생각을 풀어내지 못하면 외국어 구사도 한계가 있다.


이외에 이 책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미지 리터러시’를 독서와 잇는 것이다. 이미지를 이해하고, 이미지로 상상하고 언어로 묘사하는 활동은 간과하기 쉽지만 이 활동 없이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우기는 어렵다. 요행이란 없다. 꾸준히 애쓰지 않는 한 얻어지지 않음이 요지가 아닌가 한다. 나라면 ‘요행을 바랄 바엔 욕심을 버리세요’라고 말할 것 같지만, 저자는 끝까지 독자를 응원하며 진짜 알짜만을 책에 담아냈다. 그러니 <걸리버여행기>를 추천하면서 완역본이 아니라 아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출판사 책을 언급한 것이다. 나라면 비룡소 출판사에서 나온 <걸리버여행기>를 추천했을 것이다. 저자의 안목이 옳다. 쉬운 책으로 먼저 본 다음에 내가 추천한 책을 읽어야 그나마 이해할 수 있을테니까.


똑똑한 아이들일수록 맹목적으로 성적에 집착하는 상황을 못 견딘다. 소위 명문대를 가더라도 인생이 순조로울리 없다는 것을 지나치게 잘 알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생에서 돈이 제일 중요하죠”라고 자본주의 사회가 주입한 가치관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아이들을 한심하게(때때론 경멸하듯) 바라본다. 종종 영재라고 불리는 이 아이들은 사고와 감정이 따로 가지 않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놓칠 뿐, “돈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본능적으로 그 말이 정답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현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공란으로 남겨두면, 보호자의 바람대로 ‘명문대’에 진학하더라도 그 다음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꾸준한 독서와 글쓰기가 입시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법인 것은, 오래 방황하지 않고 제 인생을 정립하도록 돕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저자와 마찬가지로 어려운 책을 찾거나 문제집 풀기에 집착하는 학부모를 숱하게 보았다. 나는 저자가 하고 싶어하지만 도서의 성격상 하지 않았을 것 같은 말을 해야겠다. 유행에 따라 성과에 연연하면 아이는 인생을 살아낼 것이지만, 읽고 쓰며 단단하게 자기를 다진다면 아이는 인생을 살아갈 것이라고. 언제든 침참할 내면을 관조하고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인간이 되려면 홀로 읽고 쓰는 활동이 있어야만 하는 게 인간이란 동물이라고. 그에게 고독할 기회를 달라고. 읽고 쓰는 행위는 삶의 재미를 하나 늘리는 것이다. 저자가 말한 ‘사고력, 지구력, 의지력’을 갖춘 아이들은 글 한 편에 대여섯시간을 쏟고, 학부모님은 이를 우려하며 내게 상담을 요청했다. 나는 ‘믿고 지켜보시라’고 말했다. 어차피 그렇게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을 표현하는 일은 그 자체로 값지다. 만족할 만한 입시결과는 그야말로 ‘덤’이다.


나는 샛길로 돌아다니다가 어영부영 인생을 사는 사람이다. 삶의 밀도가 지나치게 높거나 느슨한 나날을 살았다. 익숙하게 수용하는 ‘사회적 기준’을 잣대로 삼아 평가한다면 ‘그저 그런 인간’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얼굴이 없어도,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나를 순간이나마 사랑하게 만들 수 있다. 그것은 상상으로만 포착할 수 있는 무언가를 꺼내는 데에 주저함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달리 말하면, “어쩌라고”라는 태도가 묻어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개의치 않는 이에게 이끌리기 마련이니까. 유유상종이라더니, 나와 친한 친구들도 죄다 “어쩌라고”라는 태도로, ‘샛길로 돌아다니다가 어영부영 인생을 사는 사람’으로 보일 만한 시기를 보냈다. 실상 치열하게 살면서 결국은 해낸 사람들이다. ‘내세울 게 하나도 없어’라며 연민을 구하려고 해도 하나쯤은 있는 인생을 산다. 우리의 공통점은 하나다. 그 양이 많든 적든 늘 책을 읽었고, 읽은 내용을 말이나 글로 풀곤 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교육의 목표가 “해내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라고 밝혔다. 나는 얼마 전에 일기를 쓰다가 “나는 해내는 인간이군”이라는 답을 스스로 얻었는데, 그 기초를 독서와 글쓰기가 다졌다는 데서 통했나보다. 삶이 흔들리게 만드는 물음은 “나는 문제인가?”이다. 나의 언행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이 그 자체로 문제인가 - 내 존재가치에 의문을 던지게 만드는 고민이 일상을 엎어버린다. 이상적 모델을 참고하자니 그 누구도 ‘이상적 인물’이었던 적이 없고, 이상을 따져보면 이상적이라기보단 괴이하다는 결론만 뒤따를 뿐이다. 그러니 취향과 안목이 있어야 “네가 문제로군”하고 말할 용기가 생긴다. 나는 자서전이나 에세이, 또는 하워드 가드너의 <열정과 기질>처럼 다양한 인생을 다룬 책을 읽으면서 용기를 얻곤 했다. 내 취향과 안목을 다지는 데에도 지지와 응원이 필요하고, 그 원천은 읽기와 쓰기에 있다. 취향과 안목을 갖춘 사람이 의외로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저자의 응원이 아이의 독서와 쓰기, 나아가 당신의 독서와 쓰기로 이어지길 바라며 그의 응원에 나도 마음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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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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