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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Apr 20. 2020

넓이

환대하는 삶

딸이 매일 밥 먹듯 드나드는 집이 있다. 그 집이 우리와  워낙 막역한 사이여서 그렇긴 하지만, 너무 심한 것 같기도 해서 주의를 주었다.


"아무리 친해도 허락 없이 마음대로 막 들어가면 안 되는 거야."

"그런가? 다른 집에는 안 그러는데, 유독 윤슬이네만 그런단 말이야. 그런데 음... 그건 집을 너무 잘 지어서 그래."

엉뚱한 핑계를 대는 듯하여 되물었다.

"집을 잘 지어서 그렇다는 게 무슨 말이야?"

"집이 좋아서 그런다고."

"집이 좋다는 건 무슨 뜻이야?"

"일단 집이 너어무 크고, 마당도 넓고, 동물도 많고..."

그 집엔 현재 세 마리의 동물이 살고 있다. 터줏대감 윤식이, 유기묘 레오, 최근에 어찌어찌 오게 된 유기견 쿠키까지. 동물들이 많아서 좋은 건 알겠는데, 집이 크다고?


친구 집 마당


친구의 집은 크다기보다 아담한 편이다. 바닥 면적이 12평에 2층 집으로 다락방이 있고, 작은 마당이 있다. 딸이 잘 지었다, 좋다, 크다... 삼중 칭찬을 늘어놓은 이유가 궁금해서 꼬치꼬치 따져 물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개, 고양이를 보러 가는 것이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개방성에 있다. 그러고 보니 딸만 그런 건 아니고, 우리도 그런다. 딸이 매일이라면, 남편은 이삼일에 한번 정도 맥주 한 잔 하러 가고, 나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지나가다 들른다.


제 집 마당인 듯 들어가 있는 딸


개방성은 단지 물리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집의 대문이 늘 열려 있기도 하지만, 그 집 가족들이 아이들을 환대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환대한다는 것은 뭘까? 흔쾌히 자기의 공간으로 사람이 들어오게 하고, 그 공간에 편안히 머무르게 하며, 그 공간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한다. 환대는 이토록 무조건적이다. 아이들에게 대가나 보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입장료를 받으라고 하지만 농담이다. 환대는 평등하다. 집주인과 손님의 위계가 없다. 집주인이라고 생색내는 법도 없고, 손님이라고 집주인 눈치를 보지도 않는다. 물리적인 장벽은 물론이고, 심리적인 장벽도 없다 보니 딸아이는 그 집을 넓다고 느끼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집을 넓게 지을까, 어떻게 하면 넓어 보일까 고민하던 나 자신이 참 부끄러워졌다. 집을 넓게 짓는다고 집이 넓어지는 게 아니다. 면적이 넓다고 해서 사람들이 넓다고 느끼는 게 아니다. 내가 어떻게 살고, 사람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가 훨씬 중요하다. 딸이 가끔 뼈 때리는 말을 하는데, 오늘도 제대로 맞은 기분이다. 오늘도 딸에게 한 수 배우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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