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엇이든 씁니다 Apr 17. 2020

포기

노출 콘크리트에 대한 집착

근 두 달간 노출 콘크리트만 생각했던 것 같다. 처음부터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거푸집을 떼어내고 콘크리트 면이 드러난 순간, 우리는 콘크리트를 그대로 노출하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설계하신 소장님들도 동의해주었고, 시공 소장님도 욕심이 난다며 흔쾌히 잘해보겠다고 했다.



거칠면 거친 대로, 상처가 있으면 있는 대로 마음에 들었다. 시공 소장님은 나중에 후회할까 봐 걱정이 되는지 여러 번 되물었다. 이렇게 거칠고, 울퉁불퉁하고, 얼룩덜룩해도 괜찮냐고. 우리는 곰보도, 얼룩도, 땜질도 모두 마음에 든다고 했다. 일부러 노출 콘크리트 인테리어를 하려는 게 아니라 정말 그냥 있는 그대로의 콘크리트를 노출하고 싶은 거라고 했다. 인테리어 효과도 있지만, 우리 집의 재료와 집 짓는 과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좋았다. 그때부터 우리는 노출 콘크리트에 초점을 맞춰 모든 것을 고르고 고민했다. 노출 콘크리트와 어울리는 씰링팬을 골라 주문해두었고, 싱크대와 주방 타일, 조명과 벽지, 계단 난간과 계단 발판도도 미리 생각해두었다.


그런데 노출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예산 때문이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노출 콘크리트에 대한 생각의 차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우리는 마감을 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이어지는 노출 인테리어를 기대했던 것이지 돈을 들여서 매끈하게 마감된 노출 콘크리트 인테리어를 원한 것이 아니었다. 인더스트리얼이니 빈티지니 하는 스타일을 일부러 연출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손만 보고 그대로 노출하기를 바랐다. 마지막 순간에 서로 생각하는 것이 다른 것을 확인했고, 서로 조정해볼 재정적 여유와 시간적 여유, 무엇보다 마음의 여력이 없어 과감하게 포기했다.


아쉬움과 허탈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그동안 노출 콘크리트를 고민하면서 설렘 반 두려움 반이었는데, 그 대상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시공 소장님과 같이 머리 맞대고 고민해주었던 친구들도 헛헛한 마음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남편은 어딘가 모르게 쓸쓸해 보였고, 그 모습을 보는 나도 마음이 갈 곳이 없었다. 어찌 보면 욕심을 부리고 집착한 마음의 결과였다. 빼기를 원한다면서 욕망을 더하고 있었다. 현장에 다녀온 남편이 이미 석고보드가 다 붙어 있더라는 말을 전했다. 미련이 남을 여지도 없이, 그간 고민해왔던 것들이 석고보드 속으로 사라졌다. 한편으로 서운하고, 한편으로는 홀가분하다.  


집을 짓는다고 하니까 친구가 해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버지가 1년 내내 열정적으로 집을 지었다고 했다. 설계부터 인테리어에 욕심을 내어 모두가 감탄하는 집을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집을 다 짓고 나서 우울증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토록 매달려왔던 것이 끝나고, 막상 살아보니 집은 집일 뿐이더라는 것이다. 이번 일은 나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집이 욕망과 집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이전 16화 지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