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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Mar 13. 2020

지붕

비로소 집이 되는 순간

가뜩이나 지하철을 좋아하지 않는데, 마스크 때문에 숨이 턱턱 막히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던 때 카톡! 소리와 함께 반가운 사진이 날아왔다. 현장소장님이 보내온 우리 집 지붕이 올라가는 모습이다. 비로소 집이 되는 순간이다. 토목공학 전공이던 옛 남친 피셜, 토목과 건축의 차이는 지붕이 있고 없고의 차이라고 했다. 지붕이 있어야 집이라는 건축물이 된다. 우리가 손으로 집을 표현할 때 두 손을 모아 지붕을 만들지 않나. 지붕이 덮혀야 비로소 집의 모양이 완성된다.


지붕은 우리 집의 가장 높은 곳이다. 그래서 지붕 위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을 볼 때 아슬아슬하다. 그래도 서까래가 쭉쭉 뻗은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시원시원하다. 콘크리트 벽의 매력에 한참 빠져 있었는데, 이제 나무의 매력에 빠질 차례인가 보다.


우리 집 지붕


우리 집은 비대칭 박공지붕이다. 25도 정도 경사각을 가진다. 남편은 사선 지붕도 생각해본 모양이지만, 난 처음부터 박공지붕이었다. 눈비에 강해서도 그렇고, 보기에도 편안하다. 두 손을 맞대어 박공지붕을 만들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은 저절로 행복해질 것만 같다. 그리고 애정 하는 빨강머리 앤 집의 지붕이 초록색 박공지붕 집(green gable)이다. 처음 설계에 컬러강판으로 되어 있던 것을 예산 문제로 이중 그림자 슁글로 바꿔야 했는데 나는 크게 서운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반가웠다. 빨간 머리 앤의 초록 지붕 집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새하얀 환희의 길을 지나, 반짝이는 호수에게 굿나잇 인사를 하고, 모퉁이를 돌아 붉은 언덕에 올랐을 때 '우리 집'이라고 느꼈던 그 집이 초록 지붕 집이었다. 그 집의 지붕이 실제로 같은 재료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렇다고 생각하며 살 것이다. (슁글이 북미에서 많이 사용하는 재료임을 감안하면 매우 가능성이 높다고 믿고 있음) 정말 그린 게이블 집이 되도록 지붕 색깔을 초록으로 하고 싶었지만, 남편은 우리나라에서 초록색은 촌스럽다고 뜯어말렸다. 우리 집 지붕은 녹회색인데 세월에 빛이 바래면서 녹색이 나타날 거라고 믿는다.


Anne of Green Gables


비 안 새면 좋은 집이다.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 들었던 그 말의 의미를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비 안 새는 집을 위해서는 지붕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우리 집은 콘크리트 구조에 목구조 지붕이다. 이질적인 재료가 만나고 있어서 매우 높은 수준의 기밀성이 요구된다. 하지만 그리 걱정하지는 않는다. 집을 짓다보니 사람을 보면 느낌이라는 게 있는데, 목수분들 만나 뵈었을 때 걱정이 사라질 만큼 단단한 내공을 느꼈다. 지붕이 마무리되면 상량식을 할 예정이다. 역시 나는 모든 종류의 '식(ceremony)'을 싫어하지만, 집 짓는 동안에는 모든 신들에게 매달려야 하는 형편이다. 그때 막걸리 한 잔 따라드려야겠다.


빨간 지붕 집에서 보이는 우리 집 지붕과, 저 멀리 북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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