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집에 머무를 때
주말엔 집에 머물러 달라."
주말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되고 질병관리본부장의 간절한 호소가 있었다. 안 그래도 우리는 집에 있을 계획이었지만, 방역에 협조한다는 특별한 마음가짐을 더해 집콕을 했다.
원래 늦잠꾸러기인 나는 새집으로 이사 와서 새나라의 어린이가 됐다. 아침 일찍 저절로 눈이 떠진다. 일어나자마자 여름이 산책을 시키고 마당 수돗가에서 어푸어푸 세수를 한 뒤 툇마루에 걸터앉아 모닝커피를 마셨다. 뒤늦게 일어난 남편은 커피를 내리고 쌓아두었던 쓰레기를 버리고 어수선한 집 주변 정리를 시작했다. 나도 옆에서 거드는 시늉을 했다. 남편이 갑자기 주섬주섬 뭘 챙기더니 빔프로젝트를 설치했다. 때마침 놀러 온 동네 아이들과 함께 빈 벽에 쏘아 올린 영화를 봤다. 갑자기 새까맣게 비가 쏟아져서 어둑어둑해진 덕분에 암막도 필요 없었다. 당근 마켓으로 사고 싶었던 스텐 대야를 5천 원에 득템 하여 마당 수돗가에 두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자랑을 했다.
일요일 아침에는 일어나자마자 그동안 미뤄두었던 2층 침실을 재배치했다. 침대와 책장 위치를 바꾸니 채광과 통풍, 여러 가지로 만족스러운 배치가 나왔다. 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침대에서 낮잠을 잔 후 냉장고 털이로 대충 테이블 세팅 없이 냉장고에서 꺼낸 반찬통과 함께 끼니를 때우다가 일요일 저녁에는 초밥을 사 와 집에서 외식을 했다. 더위가 끝난다는 처서라서 그런가, 부쩍 시원해진 밤공기를 맞으며 온 가족+반려견이 동네 산책을 다녀왔고, 벌써 코스모스가 한창인 것을 발견했고, 그 아래에서 마음에 드는 둥근 자갈을 몇 개 주워 마당에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다. 남편이 TV를 보다 "저기 달 좀 봐" 했고, 딸은 망원경으로 초승달을 감상하며 그레이터가 선명하게 보인다고 좋아했다. 제일 일찍 일어난 나는 제일 먼저 잠이 들었고, 남편과 딸은 일요일 저녁 최애 프로그램 시청을 마친 뒤 잠이 들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지만 평화로웠고, 충만한 주말이었다.
나는 본디 역마살이 있어 싸돌아 다니고 떠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집 짓느라 통장 잔고가 바닥 나서, 또 코로나 19로 여행이 어려워지면서 집콕 생활을 하고 있다. 집콕 생활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다행히 아직까지 좀이 쑤시지 않는다. 아마도 마스크 없이 산책해도 사회적 거리가 자연히 유지되는 동네(그린벨트) 주택에 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루에도 몇 번씩 동네 산책을 나서지만 사람을 마주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조금 더 걸어가면 논두렁 길을 만나고, 베라산이라는 작은 산에도 오를 수 있다. 우리 집은 베라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서 창에는 나무들이 가득 차고, 나무가 품고 있는 새소리, 풀벌레 사운드가 서라운드로 집안을 가득 메운다. 구름은 이름을 짓기도 전에 시시때때로 변신술을 자랑하고, 바람 역시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서향으로 크게 난 창 덕분에 해가 뉘엿뉘엿 지는 풍경을 볼 수 있고 곧 달이 차오르는 풍경도 볼 수 있다. 이런 일상은 얼마나 축복인가. 팬데믹 시대에 많은 시간을 보낼 집과 동네의 중요성, 일상의 소중함을 진하게 느끼고 있다. 어디론가 떠나지 않아도, 특별한 이벤트 없이도 일상 그 자체로 충만한 그런 삶이 더욱 절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