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허무하다는 딸에게 농구 공을 던져 주었다
_엄마, 인생이 참 허무한 것 같아..
뭐, 뭐라고? 아니, 여보세요. 몇살이신데, 벌써 허무함을 운운하시나요. 허무함이 뭔지 알기나 하나요...라는 말이 튀어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피식 어이없는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나오려는 것도 잘 방어했다. 코로나 19로 학교에 가다 말다를 반복하고, 온라인 학교로는 채워지지 않는 욕구불만에 익숙해질 무렵 딸아이 입에서 인생이 허무하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럴 수 있지, 별 일 아닌 듯이 표정관리하면서 차분하게 대꾸하기는 했지만 속으로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딸아이가 정신적으로 성숙한 축에 속하고, 자기감정 표현을 풍부하게 잘하는 편인 데다 요즘 자기 입으로 사춘기가 온 것 같다고 하긴 했지만, 그래도 열두 살의 입에서 인생이 허무하다니...당황스러웠지만 침착하고 세상 의연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_아, 그렇구나. 그럴 수 있지. 그래, 어떻게 하면 좋겠어? 엄마가 뭘 도와줄까?
자기도 모른단다. 하긴, 알면 그런 말을 하지도 않았겠지. 처음엔 비웃었던 남편도 걱정이 돼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나한테 물었다. 난들 아나. 일단 그 허무함의 실체를 파악해야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전혀 내용은 다를 수 있다. 최근에 내 책도 함께 보기 시작하면서 어휘력(특히 추상어)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어디선가 본 말들을 어떻게든 써먹으려 하는데, 상황과 안 맞는 경우도 꽤 많았다. 이점을 감안하고 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결과, 몇가지 문제를 발견했다.
첫 번째는 너무 많은 자유시간이다. 온라인 학교를 성실하게 한다고 해도 오전이면 다 끝났고, 끝나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학교 수업 말고 딸이 규칙적으로 하는 건 일주일에 피아노 한 시간뿐이었다. 그나마 일주일에 한 번 친구의 아빠를 따라 놀러 가던 레고 작업실도 코로나 19로 중단되었다. 일체의 학습지나 학원을 다니지 않는 딸에게 자유시간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학교를 다닐 때 나름 자신만의 계획으로 알차고 알뜰하게 유지되었던 딸의 일상이 흐트러져 있었다. 매일 놀 시간 없다고 했던 딸에게도 너무 많은 시간은 공황에 가까운 상황을 불러온 듯 했다. 생활이 방만해지고 루틴이 깨져 있었다. 뭔가 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니고, 공허한 느낌이 들만 했다. 생활을 리듬감 있게 만들어줄 무엇이 필요했다.
두 번째는 너무 부족한 소통이다. 학교를 다니면 다양한 친구를 만나면서 역동적인 관계가 발생한다. 물론 지금도 옆집에 친구도 있고, 늘 옆에 있는 엄마도 있지만 딸에게는 충분하지 않은 듯 했다. 절대적으로 많은 대화가 소통의 질을 담보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생활이 단조로워지면서 대화 역시 단조로워지고 있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누군가를 찾아야 했고,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그 누군가로 바로 옆에 있는 남편을 지목했다. 남편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남편과 딸은 TV와 영화라는 공통점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대화도 많이 하는 편이었지만, 즉각적인 요구를 해결할 뿐 서로의 감정과 저 너머의 욕구에는 근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무엇으로는 나는 슬램덩크를 선택했다. 슬램덩크가 둘의 관계와 소통을 질적으로 향상시켜줄 구체적인 수단이자 둘 간의 매개체가 되어주길 바라면서 통 크게 슬램덩크 한 질을 사들였다. 책을 좋아하는 데다 만화책은 더더욱 좋아하는 딸과 책을 좋아하지 않지만 만화책은 좋아하는 남편의 공통분모로 만화책을 선택한 것이다. 역시 책이 오자마자 딸은 숨가프게, 거침없이 빠져들어갔다. 남편도 옛날 소년 챔프 시절 추억이 돋는지 같이 빠져들어갔다. 결과적으로 아빠와의 소통과 감정 교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밥상머리에서도 늘 슬램덩크 이야기였다. 오히려 내가 소외될 정도였다. (난 이런 소외감이 좋다. 나도 좀 쉬어야지.) 딸아이는 슬램덩크의 갖가지 명대사를 쏟아냈고, 남편이 맞장구를 쳤다. 남편은 다양한 포즈를 취해가며 소싯적 자신의 농구실력을 자랑하면서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이 말을 딸아이가 덥석 물었다. 농구를 가르쳐달라고 졸라댔다. 아차 싶었는지 남편은 그제서야 한발 뒤로 빼며 공이 없어서 안된다고 했다. 하지만 자식을 누가 이기랴. 새 농구공을 사주자니 과연 얼마나 할까 싶어서 선뜻 사주지 못하고 당근에서 농구공을 키워드로 등록해두고 기다렸다. 남편은 꼭 스팔딩 농구공을 고집했다. 속으로 농구 못 하는 것들이 꼭 장비빨을 내세우더라...라고 생각했지만, 딸내미한테 농구 실력 좀 보여주겠다는데 장비빨 좀 세워주고 싶었다. 하지만 스팔딩 농구공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오랜만에 놀러 온 내 친구가 그 사연을 듣고 금빛 찬란한 스팔딩 농구공을 선물로 사주었고, 딸은 신이 나서 곧장 농구코트가 있는 공원으로 달려갔다.
운동 젬병에다 키가 작아서 농구는 더더욱 시도해보지 않았던 나와 달리 딸은 골대를 보자마자 거침없이 농구공을 투척해댔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던진 것 같은 공이 신기하게 바구니 속으로 쏙 들어갔다. 만화책으로 배운 농구가 이 정도라니 놀라웠다. 틈만 나면 혼자서도 농구코트로 달려가고, 주말에는 눈만 뜨면 농구하러 가자고 남편을 들들 볶아댄다. 그 덕에 나도 고등학교 체육시간 이후 처음으로 농구공을 만지고, 여러번 던져보면서 골 맛도 좀 보았다. 이렇게 우리 모두 농구에 빠지는 사이 인생이 허무하다는 소리는 쏙 들어갔다. 아니, 테스 형 인생의 허무함이 왜 이래요. 아니면 슬램덩크가 대단한 것인가. 농구가 대단한 것인가. 난 슬램덩크도, 농구도 몰라서 어떤 지점에서 인생의 허무함이 무릎을 꿇었는지, 잠시 종적을 감춘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는 요즘 틈만 나면 농구하러 간다. 딸내미의 허무함 타령도 잠재우고, 한 발도 안 걸으려고 하는 남편을 움직이게 하고, 운동과는 담 쌓은 나도 꼼지작거리게 만든 농구, 더 나아가 슬램덩크는 복합적으로 기특해서 칭찬에 인색한 나도 칭찬하지 않을 수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