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존재

코로나19와 아이들

by 무엇이든 씁니다
이러고 노는 아이가 대한민국에서 몇 명이나 되겠니. 넌 정말 행복한 아이야."


주말에 놀러 온 손님이 (아직 아무 정비도 하지 않은 모래)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살림을 차리고 놀고 있는 딸을 보며 말했다. 딸은 의기양양해져서 대꾸했다.

"역시, 선생님은 작가라서 제 감수성을 이해하시네요. 엄마는 축축한 바닥에서 이러고 논다고 잔소리를 했거든요.”

뭔가 엉뚱한 일을 꾸밀 때마다 말로는 타박하면서도 속으로는 다행으로 생각한다. 연초부터 어디 여행을 가는 것은 꿈도 못 꾸고 일주일에 한 번 가던 학교도 그나마 못 가게 되었는데 마당에서 뭔 짓을 벌인다 한 듯 나무랄 수 있을까.


방수포로 만든 워터파크


작더라도 마당은 소중하다. 온라인 수업 중에도 잠깐 뛰어나와 콧구멍에 바람이라도 넣을 수 있는 공간이다. 그것도 마스크 없이. 특별한 놀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보통은 아침에 일어나 반려견과 산책하고 놀고, 저녁 먹고 반려견과 밤 산책을 하는 수미쌍관 하는 일상이다. 그런 일상이 너무 못 견디겠을 때 아이들은 다른 꿍꿍이를 꾸민다. 버리려고 했던 배드민턴 채를 끄집어내 치고 집안에 나뒹구는 씨앗을 마당에 심고 물 주면서 매일 같이 들여다본다. 그러다가 점점 대범해진다.


너무 더웠던 어느 오후 수영장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코로나 때문에 안 된다고, 코로나 끝나면 가자고 달래 놓고 들어와 일을 하고 있는데 딸이 나와보라고 불렀다. 짜잔, 나갔더니 없던 수영장이 순식간에 생겼다. 딸과 옆집 아이는 남편이 다용도로 사다 놓은 커다란 방수포를 어찌 알고 찾아내서 자기들만의 수영장을 구축하고 있었다. 우산과 의자, 온갖 살림살이들이 수영장 구축에 동원되고 있었다. 너무 기가 막혀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아이들이 나를 재난대책본부장으로 임명한다며 둑이 무너지는 곳을 막아달라고 했다. 하긴 필요하지 않았으면 나를 부르지도 않았겠지. 그나마 호명되어 이런 기상천외한 수영장을 구경이라도 할 수 있는 게 어딘가. 수영장에 못 가면 수영장을 만들어내겠다는 발상과 일단 만들고 수습하면서 맨땅에 헤딩하는 도전의식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의 소쿠리


또 하루는 심심해 죽겠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옆집 아이와 집을 나갔다. 동네 한 바퀴 돌고 오겠지 했는데 1시간이 넘도록 소식이 없어서 슬슬 걱정이 되려는 찰나 아이들이 돌아왔다. 땀에 흠뻑 젖은 채, 언제 들고나갔는지 모를 소쿠리에는 청고추, 홍고추와 쪽파, 깻잎 몇 장이 담겨 있었다. 어디서 서리한 거 아니냐고 했더니 맹세코 서리는 아니며 태풍에 떨어진 고추와 길거리에서 뿌리내린 쪽파를 뽑았다고 했다. 어디까지 갔다 왔는지 듣고는 깜짝 놀랐다. 1시간 이상 걸리는 꽤 먼 곳까지 갔다 왔는데 처음 가는 길인데 어떻게 찾아왔는지 물었더니, 어찌어찌 물어 물어 왔다고 했다. 둘이면 이렇게 용감해지는가. 역시나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났지만, 아이들이 서리를 해왔다고 해도 뭐라고 나무랄 수 없었을 것이다. 얼마나 심심하면 이러나 싶으면서도, 이렇게 심심하니 이런 일도 벌어진다 싶다.


아이들은 노는 존재다. 아이들은 놀 때 존재감이 뿜뿜이다. 재미있게 잘 놀기 위해 장난감이 필요하지 않다. 역설적으로 놀잇감이 빈곤하면 놀이가 더 풍요로워지기도 한다. 없으면 없는 대로 어떻게든 놀 거리를 만들어내고 정 없으면 놀 거리를 찾아 길을 떠나는 것이 아이들만의 재능이고 특권이다. 다만 이렇게 놀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이 모든 아이들에게 허락된 것은 아닐 것이어서 그게 마음이 쓰인다. 코로나 시기에 아이들의 학습 격차가 심화된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나는 아이들의 놀이력 또한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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