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보다

팬데믹 시대, 초등학생과 사는 법

by 무엇이든 씁니다

TV를 보고 있었다. 나는 소파에 기대어 거실 바닥에 앉아 있었고, 그 옆에 딸은 소파에 반쯤 누워 테이블에 두 다리를 떡하니 올려놓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 눈높이는 얼추 딸의 다리와 비슷했는데 딸이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통에 그쪽으로 자꾸 시선을 빼앗겼다. 그때 뭔가 낯설고도 익숙한 것이 내 눈에 포착되었다. 에이, 설마, 설마 설마 하며 목을 길게 빼고 눈을 한껏 찡그려 흐릿한 무언가에 초점을 맞춰가며 목표물에 다가갔다. 발목 복숭아 뼈 반경 10cm 정도 광범위하게 퍼져 흐릿한 것은 바로 ‘때’였다.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나기도 하고, 그 옛날 땟국물 줄줄 흐르던 시절을 소환하여 반갑기도 했다.


초등 5학년인 딸이 씻지 않은지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것 같다. 딸은 샤워를 하면 꼭 커다란 샤워타월을 쓰는데 일주일간 하나도 배출되지 않았다. 그나마 띄엄띄엄 가던 학교를 아예 못 가게 되면서 루틴이 다 깨져 버렸다. 당연히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9시에 임박해서 겨우 겨우 몸을 일으켜 컴퓨터 앞에 앉는다. 아침에 당연히 씻을 시간이 없다. 이해한다. 나도 아침잠이 많아서 세수 안 하고 출근해서 회사에서 씻은 적도 많으니까. 그래도 책상에 앉아 있는 게 어딘가. 오전에 그렇다치고 오후엔 시간이 주체할 수 없이 시간이 많다. 온라인 수업은 늦어도 12시면 끝나고 오후에는 아무 일정 없으니까. 그래도 씻지 않는다. 나갈 일이 없으니까 씻을 이유를 못 느끼는 듯 하다. 미용실에 간지 까마득해서 머리는 치렁치렁하다. 안 그래도 주체할 수 없는 숱에 머리를 감지도, 빗지도, 묶지도 않아서 산발이고, 안에는 비듬과 기름기를 가득 보유하고 있어서 접촉사고라도 날까봐 무서울 정도다. 아무리 사랑하는 딸이라도 머리에서 나는 쉰 옥수수 냄새와 눈가루처럼 소복한 비듬은 견디기가 힘들어서 집안에서도 사회적 거리가 유지되고 있다. 그래도 그냥 놔두고 있다. 원래가 웬만해서는 터치하지 않는 게으른 엄마이기도 하고, 그 좋아하는 학교도 못 가고 집콕하는 신세가 불쌍한데 괜히 잔소리해봤자 서로 피곤할 거 같아서 그냥 내버려 두고 있다.


올 한 해 정말 딸의 컨디션은 오락가락했다. 등교 일정이 왔다갔다 하면서 생활도 흐트러지고 요동쳤다. 한참 인생이 허무하다는 둥 약간의 우울감을 보이기도 했다. 다행히 주 3회 등교가 실시되고 어느 정도 안정화되면서 새로운 리듬을 찾았고, 좋아하는 농구에 빠져서 활력을 되찾았었다. 그러다 다시 전면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된다고 발표가 났을 때 딸보다 내가 더 두려웠다. 딸이 힘들어하면 나도 힘들어질 거 같아서. 게다가 내가 수행하는 역할도 폭증한다.딸의 보조교사가 되어야 하고, 컴퓨터나 프린터에 문제 생기면 빠르게 조치하는 테크니션이 되어야 하고, 남는 시간에 놀아주는 친구도 되어야 한다. 삼시세끼 급식과 간식도 챙겨야 하고, 콧구멍에 바람이라도 넣어주려면 간단한 산책도 시켜야 한다.

가장 힘든 게 친구 역할이다. 그런 줄 알고 있었지만, 코로나 19로 더욱 분명하고 확실하게 드러난 사실은 딸은 매우 사회적이고 사교적이라는 거다. 학교에 가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친구들과 만나서 놀기 위해서다. 하필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친구 관계가 넓어질 뿐만 아니라 깊어지고 있던 때, 이성 친구에 대한 호기심(지는 극구 부인하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봤을 때)이 발동할 때, 야구, 농구, 축구와 같은 집단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상승할 때, 학생회 활동에 대한 관심과 욕구가 복합적으로 폭발한 이때 하필 학교를 못 가게 됐으니 답답하고 미칠 노릇이겠지.

등교 중단과 함께 몇몇이 모여서 하던 레고 워크숍도 중단되었고, 실내가 아닌 밖이라서 괜찮겠지 하면서 삼삼오오 모여서 했던 농구도 중단되었고, 1대 1 피아노 레슨도 중단되었다. 그나마 수업 끝나고 남고 싶은 아이들이 남아서 줌으로 마피아 게임, 라이어 게임이라도 하고 잡담을 할 수 있긴 하다. 전화, 카톡 등으로 부분적으로 연결도 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고 한다. 하루에 충족해야 하는 수다 총량이 있는데 온라인 수업으로는 충족이 안 된다고 했다. 딸은 툭하면 '이건 만나서 얘기해야 하는데...'라면서 연결(connect)이 아닌 직접 만나면서(contact) 이루어지는 관계의 역동성을 굉장히 그리워하고 있다.이 빈곳을 대신하는 역할이 나에게 요구되는데 굉장히 후달린다. 팬데믹 시대에 초등학생의 사회적 욕구불만은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궁여지책으로 우리 가족 안에서 어떻게 충족할 수 있을 것인가, 팬데믹 시대에 사춘기를 맞은 초등학생과 함께 사는 나에게 굉장한 숙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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