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취미생활

코코젤리 장인의 탄생

by 무엇이든 씁니다

기나긴 팬데믹을 지나며 딸이 장인 정신으로 갈고닦은 취미 생활이 있으니 바로 ‘코딱지 파기’ 되시겠다. 그 전에도 코를 파긴 했으나, 이토록 가열차게 파진 않았다. 심심하거나 한가할 때 그냥 가볍게 후비는 정도가 아니다. 후비다, 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코로나 19로 집콕 생활, 혼자만의 시간이 압도적으로 늘면서 확실히 더 많이 파고, 더 깊이 파고, 더 오래 파고, 열심히 판다. 아주 무아지경이다. 코피 정도가 아니라 코에 구멍이 날까 봐 걱정될 정도다. 다행히 아직까진 코피도, 구멍도 나지 않았지만, 콧구멍은 확실히 넓어지고 콧방울이 탱탱해진 것 같다.


남편은 딸이 코딱지 파는 모습이 별로인가 보다. 코 좀 그만 파라며, 코 파지 말고 코를 풀라며 타박한다. 그럴 때마다 난 콧방귀를 뀐다. 당신 코 안 파 봤어? 코딱지 파기는 만국 공통, 인류, 아니 영장류 공통의 유희야! 얼마나 재미있는데, 그 재미있는 걸 말린다고 그만 파겠어? 사람은 말리면 더 하고 싶다. 앞에서 못하게 하면 뒤에서 숨어서라도 한다. 코로나에 학교도 못 가고 여행도 못 가고 1년째 집콕하는데 저것도 못하게 하면 안되지, 코 파기를 장려할 필요는 없지만, 말릴 수도 없다는 게 내 입장이다.


정확히 말해 딸이 파는 건 코딱지가 아니다. 완전히 말라서 딱딱한 고체가 되기 전 꾸덕꾸덕하게 덜 마른 상태의 코딱지다. (편의상 코반죽이라고 부르자) 최상급의 재료를 발굴하려면 타이밍이 중요하다. 말라서 굳어버리기 전에 긁어 모아야 한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코속을 탐색한다. 코반죽을 발굴해서 엄지와 검지로 동글동글 정성스럽게 돌리다 보면 진짜 젤리처럼 쫄깃하고 찰진 상태가 된다. (명품 경지에 이른 그것을 ‘코코젤리’라고 부르자) 코코젤리를 만드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정성스럽게 집중하는지 장인 정신이 느껴진다.


보통 코딱지를 파면 먹기도 하는데, 딸은 섭취 부분에서는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자긴 코코젤리의 탄력과 점성이 주는 촉각을 좋아하는 거지, 먹는 걸 즐기는 건 아니라고 한다. 자신이 하는 행동,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면에서 쾌락을 느끼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을 볼 때 단순한 코딱지 파기가 아니라 덕후 반열에 올랐다는 생각이 든다.


더 웃긴 건, 코딱지를 먹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고, 저장한다는 사실이다. 딸이 머리를 감고 나왔는데도 머리에 비듬이 붙어 있는 걸 보고 머리 감는 법을 다시 제대로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에 욕실에 들어갔다. 샴푸를 헹구다가 거품이 코에 들어가자 딸은 무의식 중에 코를 풀었고, 거무튀튀하고 동그란 뭔가가 손에 뚝 떨어지는 걸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앗, 이거 뭐야? 코딱지야? 그 돌발 상황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순식간에 코딱지, 아니 코코젤리를 주워서 자기 코에 다시 밀어 넣는 게 아닌가. 에이, 그냥 버려! 하지만 딸은 완강했다. 얼마나 공들여 만든 건데 아직 버리면 안 된다며, 천연덕스럽게 말하는데 현웃터짐. 그래, 인정인정! 장인정신 인정인정! 이렇게 코로나에 딱히 갈 곳 없이 방황하던 순발력과 집중력이 코코젤리 만들기에 기가 막히게 발휘되고 있다는 웃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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