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하고 싶은 걸 그만두게 할때

흔들리는 부모의 마음

by 무엇이든 씁니다

몇 개월 동안 딸이 몇몇 친구들과 같이 해오던 책모임을 오늘부터 가지 못하게 했다. 얼마 전부터 나는 그만두자고 했고, 딸은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 모임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가 듣기 싫었고, 딸은 그 이유에 대해서 동의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만두더라도 당장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판단이 섰을 때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오~좀 멋진 걸! 딸의 대답에 반해서 나는 갑자기 전의(?)를 상실했다. 그래, 그러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코로나 때문이었다. 작년 상반기 코로나 때문에 전면 등교 중단이 되자, 딸은 우울감을 보였다. 인생이 허무하다며, 자기는 뭐 하는 존재냐며, 우울하다고 했다. 학교를 못 가서 답답하다고 했다.


딸은 학교를 좋아한다. 학교를 좋아한다기보다 학교에서 친구 만나서 노는 걸 좋아한다. 그렇게 좋아하는 학교를 못 가게 됐다. 피아노 개인 레슨 말고 다른 학원을 다니지 않기 때문에 학교는 딸의 전부나 다름없다. 가뜩이나 원래 살던 곳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오는 바람에 나의 도움(라이드)없이는 친구를 만나기가 힘들다. 바로 옆집에 같은 반 아이가 살고 있고 사이도 좋지만, 다른 친구들도 만나서 놀고 싶다고 했다.


마침 비슷한 처지의 딸 친구 아빠에게 연락이 왔다. 애들이랑 같이 책 모임이라도 하고 싶다고. 우리 집에서 그 집까지는 차로 30분 거리, 왕복 1시간이라는 라이드 부담 때문에 못하겠다고 거절했다. 하지만 우리 학교 최고 열정+추진력을 보유한 친구 아버님께서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라이드는 본인이 어떻게든 해결해보겠다면서 일단 딸에게 의사를 물어봐 달라고 했다. 할래? 딸은 놀고 싶지 공부하는 건 싫다고 했다. 내가 성의 없이 물어본 걸 알아챈 딸의 친구와 그 친구의 아빠는 딸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고, 공부는 싫다던 딸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번 가보자고 했다.


같은 반 아이들 일곱 명이 일주일에 한 번 만나, 한 번에 두 시간씩, 같은 책을 읽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쪽 방면에 전문성이 있는 친구 아빠가 이 모임을 이끌어주고 있다. 그 사이 회사를 그만두고 시간이 생긴 책이나 사주고 라이드를 해주고 있다. 뭐 대단한 거라고 해주는 양 딸에게 생색을 내면서 지금까지 왔다.


결과적으로 이 모임은 딸에게 오아시스와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학교를 못 가던 시기에 하필 사회적 욕구에 매우 목말라 있던 딸은 그 모임에서 애들을 만나고 오면 숨통이 트이고 생기가 돌았다. 가서 뭘 하는 게 중요하지 않았다. 우울감이 해소된 것만으로 만족스러웠다.


마음 한 켠에는 약간의 귀찮음, 불편함이 있었다. 라이드가 귀찮았다. 그 시간에 뭘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팬데믹 상황이 길어질수록 다른 아이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런 모임에 끼어서 어찌어찌 지나가고 있는데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많을 게 뻔했다. 당장 주위에도 학교와 부모의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해 어려운 아이들이 있었다. 내가 뭘 해줄 수도 없으면서 마음만 그랬다. 이 시기를 겪으면서 학교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뼈저리게 느꼈다. 학교가 사회의 불평등을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더라도 불평등의 격차를 줄일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가 모두에게 필요한 게 아닐 수 있어도, 학교가 꼭 필요한 아이들이 있다. 전면 등교만이 답이라고 생각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의견을 피력해왔다.


다행히 학교의 문이 열렸다. 딸아이 학교는 1학년 1 반인 작은 학교여서 5일 전면 등교를 하고 있다. 아싸! 이제 그만 둘 타이밍이다. 당연히 그만둔다고 항 줄 알았다. 아니었다.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그 모임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고 했다. 새로운 질문, 새로운 과제를 받는 게 재밌다고 했다. 처음엔 헬렐레하고 놀러 갔지만 하다 보니 다른 재미를 알아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애들 만나러 간 거지만, 하다 보니 그 공부 자체가 재미있어진 것이다. 이건 또 다른 문제였다. 뭔가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개학 직후 이 모임에 속하지 못해 소외감을 느끼는 아이들이 있다, 이 모임이 전체 아이들의 관계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소위 공부 잘 하는 애들만 모여서 한다는 말을 들었다. 내 마음은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밤잠을 설칠 정도로 속이 시끄러웠다. 그런 소리 듣기 싫어서, 솔직히 욕 먹기 싫어서 빨리 그만두고 싶었다. 그러다가도 우리 아이만 보면 아이가 이렇게 원하는데 이 정도도 못해, 하는 이기적인 마음도 불쑥불쑥 일어났다.


친구가 딸에게 내 고민을 솔직하게 말해보라고 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딸은 내가 말한 이유들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논거들을 제시했다. 그만두고 싶은 나의 마음과 계속 하고 싶어하는 딸의 마음이 팽팽했다. 잠도 오지 않았다. 우리 딸만 그만 두면 이 문제가 해결되는 걸까? 당연히 아니다. 학교에서 생활하는 딸의 판단을 믿고 존중할 수는 없는 건가? 정말 그러고 싶었다. 기다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잠을 못 자니 예민해졌고, 예민해지니 나의 이기심이 승리했다. 그냥 그만두자! 딸에게 통보했다. 그것도 그 모임이 있는 당일 아침 학교 가려고 나서는 애를 붙잡고!(나도 참...)


오늘 당장? 응, 오늘 당장! 나의 단호함에 딸도 그러자고 했다. 사실 학교에서 애들 만나니까 그 모임에 안 가도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끝까지 엄마의 이유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면서 학교에 갔다(이 와중에 딸의 그런 고집 쫌 멋있다!). 가고 싶다는 애를 못 가게 해놓고 나는 진짜 말 그대로 맴찢이었다. 애가 하고 싶다는데, 엄청난 것도 아니고, 이것도 못하게 하는 내 마음은 정말 괴로웠고,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무엇보다 문제를 제기하고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나의 미숙함과 게으름에 대해서 깊은 아쉬움이 남았고, 많은 생각거리를 남겼다. 이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또 다른 문제의 시작이었다.


딸에게 미안해,라고 했다. 딸이 씩, 웃으면서 그 말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엄마가 미안해하지 않으면 서운할 뻔했다고. 근데 가끔은 좀 이기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도 필요하다면서 다음부터는 좀 그러자고 한 수 가르쳐 주신다. 이쯤 되니 내가 아이를 키우는 건지, 아이가 나를 키우는 건지 정말 헷갈릴 지경이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찝찝함, 서운함, 아쉬움, 그리고 무엇을 잃었는지 정확히 말하긴 어렵지만 어딘가 구멍이 뚫린 것 같은 상실감 등이 밀려왔다. 마음이 헛헛해진 나와 딸을 위로하기 위해서 남편은 새로 생긴 초밥집에서 초밥을 사 왔다. 나는 초밥을 맛있게 먹고, 며칠 만에 두 다리 쭉 뻗고 잤다. 다음 날 초밥집 개업 기념으로 준 초밥 인형을 가방에 달고 신이 나서 학교에 갔다. 6학년이 1학년때부터 매던 핑크 가방에 초밥 인형을 달고 학교에 가실 정도로 해맑으시다...


너 때문에 웃는다ㅎㅎㅎ


가끔 우리는 그런 얘기를 한다. 애들은 알아서 잘 하고 있는데 어른들이 문제라고. 딱 내가 그렇다. 딸은 너무나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매일매일 흔들린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고 했지. 나 좀 흔들려도 되는 거겠지? 이렇게 흔들리면서 애를 키워도 큰 문제없는 거겠지? 올봄 봄바람과 정반대 방향으로 나 좀 많이 흔들리고 있다.



오늘의 결론은,

- 자식이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할 때 부모 마음이 찢어진다. 진짜 맴찢...이건 약과일 테고, 앞으로 더 큰 게 많겠지요?;;;

- 부득불 못하게 할 때는, 서로의 사정과 서로의 마음 상태를 솔직하게, 충분하게 나누는 게 좋다. 숨기거나 포장해도 애들은 다 알게 되고 더 꼬임;;

- 그 과정에서 나오는 아쉬움, 서운함, 불만, 상처 등등 부정적인 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게 좋다.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 이럴 때 맛있는 무언가가 도움이 된다. 물론 효력은 잠깐이지만~~그게 어디냐!!~~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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