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풍요
아침 산책을 나갔다가 나는 제비꽃 한 움큼을, 남편은 두릅을 한 움큼 따왔다. 제비꽃은 산에 흔하지만 자잘해서 모으기가 힘들고, 두릅은 존재 자체가 귀하고 봄나물 중 몸값이 최고다. 그 귀하신 몸이 제 발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매일 다니는 산책길에 떡하니 피어 있었다. 봄이면 두릅을 찾아 눈을 희번덕거리며 산속을 헤매는 남편도 가까이 두릅은 못 봤던 것이다.
오늘 점심메뉴는 제비꽃 비빔밥이다. 꽃은 생으로 먹고 줄기와 잎은 살짝 데쳐서 멸치액젓과 참기름만 넣고 조물조물 무쳐서 깨소금을 솔솔 뿌리면 제비꽃 나물이 된다. 줄기가 워낙 가늘고 미끈해서 섬세하게 은은하게 쌉싸름한 맛이 나서 먹는 사람의 감각도 미세하게 살아난다.
배 고프다고 밥 달라고 꿀꿀거리는 딸에게 제비꽃 비빔밥을 한 그릇 해다 갖다 바쳤더니 입을 삐죽 내민다. 보기엔 그럴싸하지만 모르는 음식이라 경계를 한다. 나 먹기도 바쁜데 억지로 먹일 생각 없다. 그렇지만 몰라서 안 먹는 것과 아는데도 안 먹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한 입만 먹어보고 맛없으면 안 먹어도 된다고 꼬셨더니 마지못해 한 입 받아 입을 오물오물거리더니 작은 눈이 커지며 맛있다며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한 그릇 더 달란다. 거봐! 안 먹어봤으면 평생 이 맛 모를 뻔했지?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현대인의 사회적, 심리적 특성 중 많은 부분이 수렵채집인으로 살던 고대에 형성된 것이고 우리의 뇌와 마음이 그 생활에 적응해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수렵 채집을 할 때 더없이 평화롭고 풍요롭고 행복하다고 느낀다.
수렵채집인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사는 지역과 자연, 계절에 대한 마음속 지도가 필요하다. 무엇을 언제 어떻게 먹을지 더 넓고 깊은 탐구와 배움이 필요하고, 더 많은 관찰과 고민과 실험을 필요로 한다. 그로 인해 결국 더 많은 가능성에 접근할 수 있고 더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된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매우 실존적이고 실용적이며, 매우 자연적이고도 예술적인 그런 날이었다.